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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신, 디오니소스

입력 : 2009-04-02 16:03:37 수정 : 2009-04-02 16: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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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소스는 아시다시피 주당(酒黨)들의 신(神)이다.  술의 신, 포도와 포도주의 신이다.  12신에 끼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한국에도  이 신(神)을 믿는 사람이 많다. 로마신화에서는 이 신을 박카스라고 부른다.  유사 이래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동아제약의 드링크 박카스의 상표명이 이 주신(酒神)으로 부터 유래되었다. 곡식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썩어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열매를 맺고 또 땅에 떨어져 썩어서 다시 움을 틔운다. 씨앗은 계속해서 부활을 한다. 바커스는 ‘싹’ ,‘움’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박카스라는 드링크제의 명칭에 계속 부활하라는 뜻이 담겨있다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디오니소스의 탄생은 풍요와 다산을 위해 틈만 나면 실천에 옮기는 제우스(Zeus)가 아름다운 연인 세멜레와  몰래 바람을 피워서 태어났다. 그러나 이 정사(情事)는 제우스의 본부인인 질투의 여신 헤라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다. 그녀는 질투의 여신이기도 하지만 가정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사실 질투심이 강해야 남편 단속을 잘할 것이므로 결혼의 수호신이라는 말이다.

제우스의 끓임 없는 바람기 만큼 늘 질투심에 불타는 헤라는 늙은 유모로 변신해서 세멜라에게 접근해 세멜라가 제우스에게 뭔가를 부탁하게 한다. 그 부탁은 제우스가 헤라 앞에 나타나듯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자기 앞에도 나타나달라는 것이었다. 세멜라는 ‘소원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무슨 소원이냐고 반문하는 제우스에게 ‘꼭 들어주신다고 약속하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못을 박는다. 무심결에 제우스 자신도 되돌릴 수 없는 스틱스 강에 맹서를 하고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세멜라의 이야기를 듣고 아뿔싸 제우스는 이내 후회하지만 세멜라의 말을 거두어들일 수 없었다. 결국  세멜라 앞에  제우스의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고 나타나자 그 광채를 견디지 못하고 세멜라는 타서 죽어버린다. 결국 사랑하는 연인을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죽게 한 헤라의 질투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제우스는 잽싸게 세멜라의 자궁에 잉태된 디오니소스를 거두어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넓적다리에 집어넣고 꿰매서 그의 목숨을 구한다.

부디 관용심이 넘치고 친절한 남자들이여!  “꼭 들어주신다고 약속하신다면 말씀 드릴께요’라는 세멜라식 여성의 소원에 절대 수긍해서는 안 된다. 혹, 사랑하는 여인을 재앙에 빠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백보 양보해서 그 소원을 들어주겠노라고 하더라도 신의 이름을 걸거나, 조상의 성을 걸거나, 스틱스 강에 맹세하고 수긍해서는 절대 안 된다.

디오니소스는 풍작의 신, 포도주 신, 술의 신이다. 그리이스 신화의 12신을 보면 <인간>의 감성적인 즐거움에 관여하는 신은 디오니소스 외에는 없다. 디오니소스의 역할은 바로 인간에게 내려와서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즐거움과 괴로움은 동전의 양면이고 결국 하나이다. 술이란 늘 흥진비래란 딜레마를 않고 있다. 술을 적당히 잘 마시면 우화등선(羽化登仙)하여 비상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만취하면 상대적으로 파괴적이고 광적이며 천박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디오니소스는 신들의 제왕 제우스와 아름다운 여인 세멜라 사이에서 태어난 만큼 신과 인간의 양면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리스 신화는 상징으로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신과 인간의 사이에 디오니소스가 있다. 신과 인간 사이의 매개체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술이다.

디오니소스의 열성적인 팬은 주로 여성들이었다. 여성들은 고대 아테네에서 제 3의 계급이었다. 이 디오니소스를 추종하던 여자들을  '메나드스(manads;‘미친’이라는 말에서 유래)라고 불리었다. 디오니소스는 이렇게 낮은 데로 임한 신이었다. 그리고 낮은 데로 임하였지만 다시 저 높은 곳으로 인도하는 신이 디오니소스였다.

곡식을 썩히고 발효시키는 것도 낮은 데로 임하는 것이다. 그러나 낮은 데로 임하지만 다시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간다.  썩고 발효된 것이 오래오래 익으면서 아주 투명하고 순도 높은 주정이 된다. 서양에서는 주정을 Spirit이라고 부른다. Spirit가 뭔가? 정신이다. 술을 마시는 것은 정신을 마시는 것이다. 정신은 고매(高邁)한 것이다.

썩히고 발효한 것을 충분히 익혀서 거른 다음 다시 증류기에 증류를 하여 그 농축된 것을 뽑은 것을 주정이라 한다. 주정(酒精)은 Essence 이고 Ester이다. 인간의 핵심(Essence)이 정신이다. 수곡지정기(水穀之精氣)의 Essence가 바로 술이다.

아폴로니안과 디오니시안

술의 한의학적 약성을 알아보자. 酒通血脈 消愁遣興 少飮壯神 多則殞命 <藥性歌>
「술은 혈맥을 통하게 하고 우수를 없애며 흥(興)이 나게 한다. 적당히 마시면 정신을 건장하게 하지만 많이 마시면 명을 손상시킨다」고 했다.

디오니소스와 연관된 것은 공통적으로 술에 관한 것은 물론 출산의 개념이 포함되어있고  대부분 식물 특히 포도나무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제우스의 본부인 헬라가  디오니소스에게 광기의 피를 집어넣었다는 설도 있다. 디오니소스는 늘 떠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신이라고 역설하고 그리스의 땅에 포도나무를 나눠주며 양조장을 세운 신으로 숭배를 받고 있다.

이후에, 프로이드에 의해서 그리이스 신화를 인용한 오이디푸스(Oedipus) 콤플렉스나 엘렉트라(Electra) 콤플렉스는  정신분석학 용어로 자리를 잡았듯이, 아폴로니안(Apollonian)과  디오니시안(Dionysian)이라는 말은 니체에 의해서 재정립되어 철학적 용어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Apollo 신에서 유래한 아폴로니안(Apollonian)은 ‘균형미 잡힌’, ‘고전미를 갖춘’이라는 뜻이다. 상대적인 디오니시안(Dionysian)은 상상했듯이 ‘질탕나게 마시고 떠드는'이라는 뜻이다.

디오니시안을 감정, 직관, 관능, 예술행위에 결부시켜 표현하였다. 아폴로니안은 이성, 합리, 객관, 과학의 의미로 이 둘은 서로 상대적이다. 

술과 축제 술과 제전은 의미가 있다.  술이 없는 축제, 술이 없는 제사, 술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인간은 술을 통해서 신의 세계를 맞볼 수 있는 모양이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기억할 때면 가장 강하게 와 닿는 느낌이  <축제와 제전>의 이미지이다.  디오니소스 축제를  ‘Dionusia’라 하고 로마식으로 말하면 바쿠스 축제로 ‘Bacchanalia’라고 한다.

차례(茶禮)라는 말은 신(神)에게 차를 올리는 의식이다. 불교가 국교이던 고려시대 제사에는 차를 올렸다. 고려는 시대적으로 조선보다 훨씬 더 자유분방해서 디오니시안인 요소가 많았지만, 차례(茶禮)는 다분히 아폴로니안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을 쓰면서 차를 올리는 것은 멀리하고 술을 올렸다. 성리학적인 조선 선비들의 삶은 너무 아폴로니안이었다. 형식과 법도가 까다롭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제사에 올리는 술도 술이지만 이런 따분한 아폴로니안식의  삶의 피로를 디오니시안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한 것은 아닐까?

사실 술은 신과 가까운 음식이다. 술을 통해서 신과 가깝게 갈 수 있기 때문에 술을 올린 것이다. 술은 지상에서 나는 음식을  비천하게 변화시킨 상황에서 가장 높고 가장 고양된 음식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술을 마시는 것은 ‘연꽃 속에 보석이여!’를 뜻한다는 옴마니반메훔과 비슷하다.  연꽃은 가장 더럽고 지저분한 뻘에 뿌리를 내리고 자양분을 흡수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그 꽃에는 아폴로니안의 향기가 품어져 나온다. 그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香遠益淸).  

술도 음식이 썩고 발효되었다가 가장 순도 높은 주정으로 변환한다는 점에서 연꽃과 비슷하다. 그 주정(酒精)을 조금 들었을 때는 아폴로니안이지만 점차 양이 늘어나면 디오니시안으로 변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김규만 (한의사)  transvil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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