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인간의 문명이다. 인간의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한 문명(the Civilization;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인 것이다. Civil은 시민이고, City는 시민이 사는 곳이며, Civilization은 문명이다. 인류는 문명과 함께 번성해왔지만, 자연은 문명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인간에게는 문명은 순기능이지만, 자연에게 문명은 역기능이었다. 인간중심의 사고, 인간본위의 종교, 과학, 사회 분위기 등이 중심이 되어 역사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문명에 환호하는 인간만 그 문명을 사모할 뿐이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自然은 문명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문명은 단일종인 인간의 중생(衆生)에 대한 독재이다. 동물에 비하면 초호화, 초귀족적인 삶을 살다 가는 것이 인간이다.
봉건시대에 ‘짐이 곧 국가’이던 절대왕정시절에 농노(農奴)나 동물(動物)은 큰 차이가 없었을 때도 있었다. 지배자들은 예술, 철학, 음악, 미학, 미식, 건축, 호사스런 수집 등에 열을 올렸지만, 그와 비슷한 인간의 문제에 대해서 별관심이 없었다. 그런 인간이 그렇게 핍박을 받고 투쟁하면서 현재의 인권을 찾았다.
그 때의 아픈 시절을 생각해서라도 핍박받는 중생(衆生)에 애정을 보여야 한다. 사람 목숨이 귀한 만큼 다른 생명도 귀하다. ‘미물을 밟을까 두려워 한다’ 했던 海月최시형의 말씀이 와 닿는다. 모든 만물은 존재의 이유가 있다. 우리는 다같이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서로간 상생과 상극을 하면서 생태계의 고리를 만들어 나간다.
지금 생태계의 균형은 이미 깨져 문명사회는 피임이 필요하다. 눈에 안보이면 잊어버리기 쉬운 게 인간사이다. 인간이 힘들고 배고프고 불편하고 가난하게 사는 삶을 두려워하면서 문명은 발전되었고 이러한 본능적인 우열(優劣)이 두드러지면서 중생과 자연의 처절한 비극이 시작됐다. 그 주체가 인간이고 수단이 문명이었다. 한 편에서 그러한 비극을 안겨다 준 그리스 문명의 흔적을 보러 우리는 가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문명을 보아야 할 것 같다.
신화와 역사와 현실의 공존-아테네
아테네는 유럽과 기후가 전혀 딴판인 것 같이 느껴진다. 지중해식 기후로 겨울에 비?내리고 여름은 메마르고 건조하다. 태양 빛이 너무 강하다. 남 이탈리아의 땅들은 건조하지만 붉은 토양 흙에 포도나무나 올리브나무 등이 심어져 기름져 보였던데 비해 이 땅은 도대체 척박해 보이는 것은 바위언덕과 오래된 석조물 때문인지 모르겠다.
에게해의 작은 섬은 푸른 바다와 하얀 건물, 바위산과 진초록 나무숲들로 명암이 분명한 것은 태양이 이 땅과 좀더 가깝기 때문인가? 이곳에는 유럽문명의 출발을 알려주는 유적들이 신화처럼 남아있다. 이곳은 분명 다른 곳보다 태양과 가깝기 때문에 신의 은총(?)을 많이 받은 땅인 모양이다. 날씨는 의식주가 빈약하던 고대인간에게 엄청난 특혜였고 큰 보너스였다.
신화와 역사와 현실이 공존하는 도시가 아테네이다. 2500년 전에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전쟁 때 아테네는 도시국가의 주장(主將)이었던 도시이다. 에게 해 수많은 섬에는 고대 그리스의 향수를 담고 있다.
미노아 문명을 꽃피운 크레타섬, 에게해의 장미라고 불리는 로도스섬, 미코노스섬, 사라진 대륙 아트란티스의 전설을 간직한 산트리니섬 등등 많은 섬들이 에게 바다에 떠 있어 3~5천년 전의 인간의 족적을 헤아리게 한다.
인간의 지식으로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신화가 숨쉬고 있다. 그리스는 신들의 나라였다. 에게 해의 태양이 너무 강렬한 탓으로 이곳에 지은 집들은 전부 하얀 집들이다. 원색을 바탕으로 흰 집의 풍광은 멀리서 보면 아주 이국적이고 서정시같다.
아테네의 펠로폰네소스 역(驛)에서 수많은 여객이 내린다. 펠로폰네소스역 바로 옆에는 라리샤역이 있는데 성서에 나오는 데살로니가전서의 지명, 테살로니키에서 들어오는 라인이다. 이 선은 유럽대륙의 철로와 연결이 된다. 밤이 늦어 시내는 어둠 속에 잠겨있다. 자다 깨어 눈을 부비며 일어나서 어느 방향으로 물결처럼 흘러가는 무리에 우리도 동참했다.
사람만큼 호객하는 소리도 시끄럽다. 우리도 그 물결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기로 한다. 숙박료는 단돈 1500원짜리에서 10달러 가량하는 곳도 있다. 로마에서 출발한지 정확히 48시간 만에 이곳에 도착한다. 우리는 제법 고급스러운 만원 짜리 화장실이 있는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에 패스포트를 맞기고 저녁식사를 하고 바로 잠자리에 누웠다. 오래 만에 편안한 공간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우리가 잠 잔 곳이 아테네 커낵션(Athenai Connection)이라는 곳이었다. 커낵션하면 지하 마피아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이름이 어쨌든 우리는 간단히 정리하고 씻고 지하 마피아 같은 깊은 잠에 빠져든다.
다음주에 계속
김규만 (한의사) transvil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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