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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실거리는 지중해를 건넌다

입력 : 2009-02-25 17:30:09 수정 : 2009-02-25 17: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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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잊지 않으마, 브린디시! 서둘러서 악몽을 피하듯 브린디시 항구를 떠나고 있었다. 배의 옥상 하늘의 별이 보이는 갑판에 침낭을 펴고 들어가 누워 잠들었다. 칠흑 같은 어둠과 오랜 침묵이 나를 감쌌다. 

수런거리는 소리에 아침잠이 깨었다. 눈을 떠 보니 아드리아해의 돼지를 닮은 갈색 고수머리에 사나운 표정을 한 사내가 예고 없이 갑판청소를 한다고 물을 부어버린 것이었다. 고얀지고! 아드리아해는 발칸반도와 이태리 반도 사이를 말한다.

의식의 혼탁에 상관없이 빛나는 아침 태양은 다시 떠오른 것이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챙겨서 아래쪽 선실로 내려갔다. 해장국 생각은 간절했지만 짠 간기가 서린 공기를 마시며 해장을 대신했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이란 말은 만주와 시베리아 중국과 러시아의 변방을 떠돌며 독립 운동했던 우리의 순국선열 레지스탕들에게 어울리는 말이지만 지금 이 상황도 풍찬노숙아니겠는가!

단조로운 바다를 보다가 지겨워지면 갑판과 선실 이곳저곳을 게으른 개처럼 기웃거렸다. 술김에 그렇게 잘 나오던 말은 척추 속으로 들어가 버려 흥진비래(興盡悲來)가 무언지 실감이 나게 한다. 침묵과 무료함으로 눈을 작게 뜨고 먼 수평선만 바라보았다. 독서와 일기를 쓰면서 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길다.  멀리서 다가왔다가 다시 멀어지는 작은 섬들과 간간히 지나가는 배를 보면서 지루함을 지워나갔다.

지중해는 모두 푸른 바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작은 섬들과 만날 수 있다. 땅에는 분명히 흙냄새가 풍긴다.  바다에서 바라본 섬들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땅이 있는 곳 어디든 사람의 흔적이 있다. 바다 새들이 보인다. 바다 새가 보이는 곳이면 육지가 그렇게 멀지 않다.

에게 문명 - 하인리히 슐리만

이탈리아 남자들 눈에 코발트 빛 바다가 담긴 사나이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절대 조심해야한다. 그 눈은 뭇 여성들을 사이렌처럼 빨아들여 버리기 때문이다.<Allive Q. Man>

에게 바다는 코발트빛이다.  근세사에 나오는 독일의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은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여 신화 속에 잠들어 있던 역사를 깨웠다.

그는 정식 교육을 받은 역사학도는 아니었다. 14세 때 식료품점 점원이 되었다가 나중에 무역상이 된 사람이었다. ‘트로이 목마’가 실재할 것이라는 어려서부터 믿음이 그를 트로이유적 발굴에 뛰어들게 했다. 그는 점원 시절 박봉을 줄여서 외국어 공부에 열중한다. 일하는 사이사이에 짬을 내서 공부하여 15개 국어를 완전 마스터한 언어의 천재였다.

슐리만은 영국 교회에 다니면서 설교를 경청하고, 그 한 마디 한 마디를 나지막이 따라 했다고 한다. 심부름할 때는 반드시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암기했다. 이렇게 6개월 만에 영어를 마스터하고, 다음의 6개월은 책 몇 권을 암송해서 프랑스어를 마스터했다. 같은 방법으로 네덜란드어, 스페인어, 이탈리어어, 포르투갈어를 유창하게 쓰거나 말하는데 6주 이상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엄청난 열의를 가지고 영어 학습에 전념했는데 그때 당시 모든 언어 학습을 쉽게 익힐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 방법은  여러 번 소리 내어 읽는 것, 결코 번역하지 말 것, 매일 1시간씩 꾸준히 공부, 항상 흥미 있는 것에 대해서 작문을 하고 이것을 교사의 지도를 받아 고쳐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고쳐 배운 것을 암기하고 다음 시간에 암송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언어의 천재답게 34세 때 그리스어로 쓴<폴과 비르지니>를 암기하면서 현대 그리스어를 6개월 만에 마스터했다. 또한 고대 그리스어를 공부한지 3개월 만에 ‘호메로스’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게 된 크나큰 동기가 되었다. 슐리만은 무역상으로 배를 타고 어느 나라를 항해해 가는 도중에 미리 공부하여 그 나라의 말을 구사할 정도로 외국어에 천부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말년에 애정을 보인 그리이스에 심취하여 아예 아테네로 가서 살았다.

다음주에 계속

김규만 (한의사)  transvil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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