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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니치 천문대의 '위기의 시간'

입력 : 2008-12-29 10:21:53 수정 : 2008-12-29 10: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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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T 무용지물 되면 자존심도 관광객도 잃는다

그리니치는 런던에 있는 동안 빼놓지 말고 가볼만 합니다. 언덕 위의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보는 런던 경관도 좋고, 세계 시간의 중심이 되는 그리니치 자오선에 서면 좀 묘한 기분도 듭니다.

그리니치가 기준이 되어 만들어지는 'GMT(그리니치 표준시)'는 한때 온 세상을 지배했던 영국의 자존심이기도 하고 매년 120만명을 끌어모으는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GMT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 표시법을 놓고 벌어진 과학계의 논쟁 때문입니다.

GMT는 지구가 1번 자전하는 것을 기준으로 시간을 나타내는데, 하지만 지구가 도는 속도가 조금씩 둔해지고 있어서 오차가 벌어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슘 원자의 진동을 이용한 'UTC(세계협정시)'가 대안으로 쓰입니다.

지구 움직임과는 전혀 상관없는 '과학 시계'라서 훨씬 정밀하기 때문에 이미 세계적으로 UTC가 통용되고 있습니다. 런던의 상징 '빅벤' 시계탑이나 BBC의 시보도 UTC에 맞추고 있습니다.

다만 UTC에 실제 지구의 움직임을 반영하기 위해 몇년에 한번씩 '윤초(leap second)'를 넣어줍니다. 그래서 UTC는 GMT에 항상 보조를 맞추게 됩니다. 일상생활에서는 둘의 차이를 느낄 수 없지만, 가끔 "올해 마지막 1분은 61초로 센다"는 뉴스가 나오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문제는 윤초가 너무 잦아서 혼란을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올해도 그 해인데, 지난 1972년부터 벌써 24번째입니다. 작은 오차도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는 과학 연구 분야에서는 "왜 UTC를 GMT에 맞추려고 몇년에 한번씩 시간을 수정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거세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년에 한번씩 오는 윤초를 없애고, 600년에 한번씩 몰아서 1시간을 더하는 '윤시'를 하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내년에 국제학술기구의 투표에서 통과되면 몇년 안에 윤초 제도는 사라집니다. 이렇게 되면 GMT는 실제 우리가 쓰는 UTC와 연결고리가 끊어질테고, 사실상 가치 없는 시간표시법이 되어버립니다. 런던에 관광 왔는데 빅벤 시간과 그리니치 천문대 시간이 다르다고 상상하면 좀 황당하지요?

영국은 GMT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윤초 폐지에 결사 반대지만 딱히 우군이 없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반대편에선 미국이 주도하고 있고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이 뒤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단순한 과학 논쟁을 넘어 그 이상의 숨은 의미을 상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Tip] 그리니치 가는 지하터널

그리니치는 지하철을 타면 금방 편하게 갈 수 있어서 런던 외곽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DLR 노선에 <그리니치(Greenwich)> 역이 있지만 한 정거장 앞서 <아일랜드 가든스(Island Gardens)>에서 내리면 템즈강 밑을 뚫고 직접 걸어가는 지하터널을 경험할 수 있다. 역에서 빠져나온 뒤부터 표지판을 쉽게 찾아 따라갈 수 있다.

구불구불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어두컴컴한 지하터널이 강 건너까지 직선으로 쭉 뻗어있다. 조명도 어둡고 사람도 많지 않아서 음산한 느낌이 들 정도지만 물 아래를 통과하고 있다는 묘한 기분이 꽤 재밌다.

그리니치 천문대를 가려면 아담한 언덕을 좀 올라야 한다. 그 아래 넓은 공원에 해양박물관과 퀸즈하우스 등도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는 코스다.

임현우 whatisthis@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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