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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에서 열리는 '일본어' 발표회

입력 : 2008-05-07 17:51:41 수정 : 2008-05-07 17: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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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표회 둘째 날 시작 전에
해마다 이맘때쯤 우리학과(일본학과) 3학년 학생들 발표회가 있습니다. 주제도 해마다 바뀝니다. 일본 전통 문화, 사회 문제, 슬로베니아의 유명인, 슬로베니아 전통 문화… 등등. 

올해 학생들에게 주어진 주제는 슬로베니아 또는 유럽에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각자 소재를 선택해 조사하여 발표를 하였습니다. 물론 일본어로. 주어진 시간은 5-7분 그리고 질의 응답시간 5-7분. 슬로베니아에 사는 일본 사람들을 초청하고 객원교수와 학과 모든 선생님들이 방청객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방청객들에게 각 학생의 발표에 대해 내용 구성, 발음, 어휘, 억양, 발표 태도 등이 어떠했는지 항목별로 1에서 10점까지 표시가 된 평가표를 배포합니다. 그리고 그 평가표 아래 조언을 써 넣을 수 있는 칸도 마련해 둡니다. 학생들에게도 똑 같은 설문지를 돌려서 친구들의 발표를 귀 기울여 듣게 하고 발표자에 대한 평가와 소감을 쓰게 합니다. 

 ◇ 쿠렌토라고 하는 슬로베니아 가면에 대해서 발표하는 학생
발표를 하기 위해 학생들은 한 달 이상 준비를 합니다. 소재를 찾아 자료를 조사하고 발표문을 만들어 그것을 다시 일본어로 옮겨 발표 연습을 합니다. 불과 한 달 정도의 기간이지만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일본어 실력은 많이 늡니다. 그렇지만 이 발표회의 목적은 단순히 일본어 능력의 향상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 큰 목적은 동기 유발에 있습니다.

그게 5분이 되었든 7분이 되었든 학생들이 일본 사람 앞에서 일본어로 발표를 한다는 건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들이 일본어로 발표한 것을 일본 사람들이 알아들었다는 것에 알 수 없는 짜릿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몇몇 학생은 뿌듯함을 느끼고 또 몇몇 학생은 자기 반성을 하게 됩니다. 이 곳 슬로베니아에 사는 한국 사람도 몇 되지 않지만 일본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아서 학생들이 일본학을 일본어를 배우고 있어도 일본 사람들과 마주치거나 이야기 할 기회는 거의 없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경험이 됩니다. 

 ◇ 봄맞이 카니발에 대해 발표하는 학생
수업시간 그리고 학과 내에서 모든 대화는 일본어로 이루어지지만 그 모든 대화는 어찌 보면 통제된(내용이 아니라 어휘가) 대화입니다. 왜냐하면 선생님들은 그 학생이 몇 학년인지 알고 또 일본어 능력 수준을 알기 때문에 그 수준에 맞는 어휘를 선택하고 말하는 속도도 조절해가며 대화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발표회는 녹화를 해서 개인별로 CD로 구워줍니다.  그 전에 먼저 녹화된 비디오를 보면서 자기 평가를 하게 합니다. 그런 다음 친구들로부터의 평가와 감상, 손님들의 평가와 감상을 보여 주고 자기 평가와 대조하게 합니다. 자기 평가를 잘 못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친구들의 평가와 손님들의 평가와 비슷하게 나옵니다. 

 ◇ 슬로베니아 산 백마에 대해 발표하는 학생
그리고 이런 발표회를 하면서 학생들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됩니다. 성적은 그저 그런 학생이 재미있는 소재를 선택하고 꼼꼼히 자료를 조사해서 발표하기도 하고,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학생이 준비를 부실하게 해서 실망시키기도 하고, 항상 조용하고 말 없는 학생이 앞에 나와 침착하고 명확하게 발표하기도 하고, 또 활달하여 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생활하는 학생이 앞에 나와서는 얼굴이 빨개져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종종 봅니다. 결국 내가 여태 봐 온 건 교실 안에서의 학생이고 성적과 연관된 학생들의 얼굴뿐이라는 것입니다.

발표회가 끝나고 나면 나도 뭔가 학생들을 좀 더 안 것 같은 뿌듯함이 남습니다.


/류현숙 통신원 hyeonsook.ryu@guest.arne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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