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연극家 사람들] 대형 뮤지컬 홍수 속, 중소 공연이 살아가는 법

입력 : 2012-03-15 18:00:27 수정 : 2012-03-15 18:00:2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관객과 밀착해서 - 동시대의 감성으로 웃긴다. 대신 현실 성찰은 필수
독특한 발상으로 - 관객의 눈과 귀를 열리게 한다
익숙한 소재- 소설 및 드라마의 소재를 차용 하 돼 생생한 무대 언어로 재구성

연극 '서툰 사람들'

웃고 즐기는 연극,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대형 뮤지컬의 홍수 속에서 조용히 사랑받는 작품들이 있다. 올 봄, 공연계의 절대강자는 아닐지라도 훈훈한 교회오빠처럼 반가운 소극장 공연들을 소개한다.

○ 탄탄한 ‘이야기’ 힘

올 3월은 ‘이야기’가 탄탄한 연극들이 포진했다.

3월 9일부터 대학로 정보소극장에서 올려지고 있는 연극 ‘어디든 맨발로’는 코메디의 기술을 확실히 보여준다. 극작가 Howard Blanning은 “다양한 종류의 코미디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최고는 관객과 배우가 마치 스포츠 경기를 하듯 한 팀이 되어 경험을 나누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박지혜 연출가와 극작가의 궁합, 배우들의 앙상블은 상당히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한 편의 연극에서 3편의 질감이 다른 코미디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야생으로의 귀환’ 에피소드로 천천히 가슴을 덥히더니, 두 번째 ‘납치범들’ 에피소드에서 웃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기술을 맛봤다. 마지막 ‘죽어가는 남자와 그의 친구’ 에피소드에서 스컹크와 함께 진하게 묻어나오는 페이소스를 읽었다.

‘탈북자 강제 송환 문제’가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상황에서 두산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연극 ‘목란언니’는 여러모로 관심을 갖게 하기 충분하다. 북을 탈출하여 남과 북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어 끊임없이 어딘가로 가고 있는 탈북자 ‘조목란’(정운선)이 주인공이다. 룸살롱 마담 조대자(황영희)의 손에 들렸던 ‘도끼’가 목란의 손에 들리기까지의 삶의 여정이 분단된 조국의 비극에 대해 다시금 환기할 수 있게 했다.

예상과 달리 연극은 상당히 통통 튀면서 유쾌하게 진행된다. 무대공간을 사방으로 활용해 어느 자리 객석에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를 듯 하다. 또한 극단 마방진의 배우들이 많아서인지, 빠른 장면 전환에 따른 밀어치기 화법이 중간 중간 발견되는 점도 이채롭다. 연극 ‘차력사와 아코디언’의 배우 윤상화가 다시 한번 ‘아코디언’을 들고 나온 모습도 반갑다.

2009년 개관 이후 동시대적 문제의식을 담은 창작초연 대본 발굴에 힘써 온 남산예술센터가 오는 20일부터 한현주 작·류주연 연출의 ‘878미터의 봄’을 선보인다. 제1회 벽산희곡상 당선작으로 카지노로 변해버린 정선 폐광촌의 막장인생들과 타워크레인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오버랩하며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묵직한 비판을 제기한다. 제목은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 숫자 ‘878’은 작품의 주된 배경인 탄광 막장의 깊이를 상징하기도 하고, 카지노의 잭팟이 터지는 21에서 2가 더해져 이루지 못한 미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은 사실 어디에도 없다. 가려진 진실 속에 깨져버린 약속들은 희망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봄을 향한다. 결국 이 작품은 막장에 갇혀있는 우리 모두를 그 막장 밖으로 나가게 한다. 계속해서 대물림되는 삶의 고단함, 그 책임을 자신의 것으로 자각 할 때 이 삶의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연극 ‘고흐+이상, 나쁜 피’

○ 독특한 발상으로 승부수 띄우기

팩트와 팩션이 섞여 있거나(‘고흐+이상, 나쁜 피’), 낭독과 연극이 어우러지고 융합하는 공연(‘단편소설입체낭독극장 2012’)도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4월 1일까지 대학로 이랑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연극 ‘고흐+이상, 나쁜 피’는 광기의 화가 고흐와 요절한 천재 작가 이상이 한 여인숙의 불청객 룸메이트로 만나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실제와 허구를 넘나드는 구성이 흥미롭다. 고흐의 그림과 이상의 습작노트가 뒤바뀌는 상황,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과 이상의 ‘오감도’가 중첩되는 장면등 두 예술가의 기막힌 인생역정이 연극 속에 그려진다. 단, 극본을 맡은 이가 ‘시앵’역을 한 배우 고원씨여서일까? 고흐(박기덕)와 시앵의 캐릭터는 상당히 공감되게 그려지나 이상(서장원)과 금홍(김규리)의 캐릭터는 다소 헐거운 느낌이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고갱(박민수)의 입담은 상당히 유쾌하다.


산울림 소극장에 가면, 소설가이기 전에 이야기꾼인 천명관, 주변부 인생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을 가벼운 유머로 포착해내는 소설가 윤성희, ‘인간 호기심 천국’이란 별명처럼 잡학다식하고 끼가 넘치는 소설가 김중혁을 만나볼 수 있다. 16일 네 명의 발랄한 귀신들의 이야기를 그린 <어쩌면> 윤성희 작가와 함께, 22일 액션뮤비소설 <1F/B1> 김중혁 작가와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서다.

‘단편소설입체낭독극장 2012’는 기존 낭독공연의 단순한 방식에서 벗어나 낭독과 연극이 어우러지고 융합하는 공연이다. 소설 작품의 문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가운데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소설 문장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문학성과 연극성이 공존하는 무대는 소설의 언어와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관객을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24일까지 계속된다.

농담과 진담 사이의 줄타기 꾼 “성석제”와 극단 “하땅세”의 수공예 연극이 만난 ‘천하제일 남가이’가 16일부터 31일까지 아르코 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4D 연극, 스탠딩 연극 등 매 공연마다 이슈를 몰고다니는 극단 젊은 배우들의 정직한 연기 및 오브제와 상상력을 이용한 연극 만들기 프로젝트가 특징.

16일부터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되는 창작 뮤지컬 ‘동대문 패션디자이너 성공기’는 실제 동대문 디자이너와 현역 패션모델들이 함께하는 약 20분간의 패션쇼를 보여준다. 본 작품은 청담동 스타일과 동대문 패션을 통해서 본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한국 패션의 메카로 새롭게 태어나는 동대문과 청담동에서 활동하는 패션 종사자들의 성공에 대한 욕망과 꿈, 사랑, 열정을 보여주는 뮤지컬이다. 미용을 예술로 승화시킨 창작 뮤지컬 ‘드림 헤어’와 계보를 함께 할 듯 싶다.

연극 '게이 결혼식'

○ ‘코미디’ 폭탄이 무기

웃음은 관객을 무장 해제시키는 가장 손쉬운 무기. 코미디를 깔되 기획 아이디어로 승부를 겨루는 공연들이 관객을 모으고 있다.

2010년 <연극열전3> 여섯 번째 작품으로 국내 첫 선을 보인 연극 ‘너와 함께라면’은 지난 해 코엑스 아트홀 공연까지 총 4번의 시즌에 걸쳐 공연되었으며, 누적관객수 10만 명을 기록한 코미디 연극이다. 70세 노신사 켄야와 28세 아가씨 아유미의 사랑을 둘러싼 해프닝이 중심내용. 40살이 넘는 나이차를 극복한 커플의 진심어린 사랑에 관객들의 반응이 좋다. 한편, 배우 안내상은 4월 20일부터 KT&G 상상아트홀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너와 함께라면’에 출연을 확정지었다.

제목부터 뭔가 심상치 않아보일 것 같은 ‘게이 결혼식’은 바람둥이 주인공이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거짓 결혼 생활을 하면서 생기는 해프닝의 연속을 스피디하게 그린 작품.  ‘동성 결혼’이라는 기발한 상황을 설정하고 유로피안 특유의 고급스러운 말장난과 찰나의 순간까지 딱 맞아 떨어지는 타이밍으로 폭소를 불러 일으킨다.

명실상부 대학로 최고의 베테랑 배우이며 현재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심산 역할로 열연하고 있는 배우 ‘서현철’과 연극, 뮤지컬,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남문철’이 수상한 앙리의 아버지‘에드몽’역을 맡는다.

서툰 사람들의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코믹소란극 ‘서툰 사람들’의 열기가 뜨겁다. 장진 연출 특유의 유머코드가 어우러진 상황극의 진수에 관객들은 자지러진다. 도둑질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훔칠 물건 보다는 집주인을 먼저 생각하는 어설픈 도둑 장덕배와 자기 집에 훔쳐갈 귀중품이 없는 것이 안쓰러워 비상금 위치까지 먼저 털어놓는 순진한 집주인 유화이가 보내는 하룻밤 소동이 주요 내용. 지난 해 음악이 있는 연극 <미드썸머>를  통해 “역시 팔색조 연기자!”라는 호평을 받은 배우 예지원(유화이 역)이 느릿 느릿 취하는 포즈 및 멘트가 묘한 매력을 불러일으킨다.
 
관객에게도 뭔가 역할(추리자)을 줘야 성공한다는 법칙을 불러일으킨 뮤지컬 ‘페이스 오프’ 의 기본은 코미디다. 같은 원작을 차용한 연극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관객들의 박수를 치게 만든 것 처럼 뮤지컬 역시 관객의 뒤통수를 통쾌하게 조여온다. 추리와 코미디의 장르적 조화, 1인 2역의 주인공 매력과 무대를 섭렵한 제작진의 노하우가 결합 됐다. 김도현 배우의 리얼한 연기변신, 백민정의 시원한 가창력이 플러스 점수를 주게 만든다.

2011년에 이어 새롭게 시작된 시즌 2 ‘밀당의 탄생’은 웃음포인트를 꿰뚫는 재치만점의 조연들 총집합으로 인기가 높다. 물론 주연들의 연기변신도 인기몰이에 한 몫을 한다. 초연배우들이 능숙하고 노련한 연애담을 보여줬다면 시즌 2의 서동, 선화공주는 대학새내기들의 ‘밀고 당기기’ 연애 같은 풋풋함과 상큼함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전성우, 김태훈 배우가 분한 서동은 여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미소년, 꽃미남의 매력이 돋보이고, 능숙한 연애 전문가 같던 선화공주는 청순한 내숭을 선보이는 귀여운 캐릭터로 변화해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뮤지컬 '페이스 오프'

○ 장기· 앵콜 공연의 파워

극단 백수 광부의 연극 ‘봄날’ 과 국립극단의 ‘3월의 눈’은 시대와 세대를 뛰어 넘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연극 ‘봄날’은 1984년 초연, 2009년, 2011년 앙콜 공연에 이어 2012년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시적이면서도 서사적’인 공연으로.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무대 위의 여백과 조용히 이를 관조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 안엔 인생에 대한 안타까움, 연민, 애정이 담겨있다. 시간의 간극을 넘어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유연한 화술의 연기자 오현경과 깊이 있는 인간애와 진정성을 지닌 배우 이대연이 함께 만들어가는 연극이다.

‘3월의 눈’은 자극적인 내용도, 극적인 반전도 없는 연극이다. ‘장오’와 ‘이순’의 일상적인 삶은 아련하게 가슴에 스며들며, 존재만으로도 무대를 가득 채우는 노배우들의 열연과 전통 한옥을 재현한 무대, 압축적인 대사는 수많은 침묵 속에서 한 순간도 관객의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보다 극적이고 변화의 폭이 넓은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근형-백성희 커플과 시적이며 잔잔함 속에 슬픔과 애잔함이 담긴 부부의 삶을 표현하는 오영수-박혜진 커플의 연기대결은 공연보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연극 '모범생들'

장기공연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으론 연극 ‘모범생들’과 ‘인디아블로그’가 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입시 경쟁, 성적 지상주의, 그리고 그 연장 선상에 놓인 사회구조에 대해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는 남기는 연극 ‘모범생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현재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한다. 

두 남자의 좌충우돌 인도 여행기를 무대로 옮긴 연극 '인디아 블로그'는 연극적 상상력의 힘이 충만한 작품. ‘인도 여행’을 테마로 만든 본격 로드 시어터답게 마치 다양한 사진과 글로써 여행을 블로그에 포스팅하듯 인도여행의 다양한 경험을 무대 위에서 다양하게 보여준다.

연극 '밀당의 탄생'

○ 뭐니 뭐니 해도 ‘사랑’

공연에서 ‘사랑’이 빠지면 섭섭하다. 연애에 쑥맥인 여자 김세진과 연애고수인 남자 강지민이 만나 ‘연애의 정석’을 배우며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현실적으로 펼쳐지는 뮤지컬 ‘카페인’, 원작 드라마의 닿을 듯 말듯 러브스토리와 깨알같은 재미가 관건인 뮤지컬 ‘커피프린스 1호점’이 바로 그것.

두 작품 모두 달달하면서도 쓴 ‘커피’를 주요 소재로 차용했다. 자타공인 코믹 연기의 달인 김수로가 프로듀서로 나선 ‘커피프린스 1호점’이 좀 더 시트콤 같은 코미디를 선사한다면, ‘카페인’은 남녀의 새콤달콤한 로맨스를 커피와 와인에 빗댄 톡톡 튀는 대사로 여운이 남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2004년 초연한 창작 복고 뮤지컬 ‘달고나’도 코엑스아티움 현대아트홀에서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우리 가요를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달고나’는 추억을 자극하는 기발한 무대세트와 배우들의 유머 넘치는 연기가 백미.  따뜻한 추억을 가진 외로운 남자 주인공 세우 역에는 총 3명의 배우가 캐스팅 됐다. 트로트의 황제 박현빈, 뛰어난 감수성을 가진 배우 박성환, 그리고 독특한 매력으로 주목 받고 있는 배우 조형균이 주인공이다. 감수성이 깊은 배우 박성환은 1막의 ‘이등병의 편지’와‘그대 눈물 마르기 전에’ 서 월등한 실력을 보여준다.

공연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