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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家 사람들] ‘엘리자벳’과 ‘죽음’의 치명적 매력…결국 약속을 지킨 뮤지컬

입력 : 2012-02-22 09:24:46 수정 : 2012-02-22 09: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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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캐스팅 공연을 볼까 즐거운 고민을 던진 유럽 대작 뮤지컬 ‘엘리자벳’
‘마지막 춤’을 추고 싶은 이는 3명…죽음(Tod)역 류정한, 김준수(그룹JYJ), 송창의

뮤지컬 '엘리자벳' 사진 emk

실존인물(엘리자벳)과 판타지적 요소(죽음)의 환상적인 결합이 만들어낸 유럽 최고의 대작 뮤지컬 ‘엘리자벳’이 스스로가 내건 약속을 지켰다. ‘죽음’과 사랑에 빠진 황후라는 독특한 설정의 스토리와 유럽 특유의 웅장한 음악만으로도 최고의 작품으로 기억될 단 하나의 뮤지컬 ‘엘리자벳’이란 홍보문구가 과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홍보사의 다소 과장스런 홍보로 흥미롭게 출발했음에도 막상 뚜겅을 열었을 땐 허점 투성이인 작품이 많은 것이 현실인 상황에 비쳐볼 때 이 뮤지컬의 속살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엘리자벳’은 절대 한번 보는 것으론 만족하지 못하는 뮤지컬이다. 캐스팅별로 두 번이상은 봐야 제대로 음미했다는 평이 나오니 말이다. 2012년 들어 기자들과 대화 중 가장 많이 들었던 공연 제목은 ‘닥터지바고’와 ‘엘리자벳’이다. 그만큼 두 작품은 기대작이었다. 한발 앞서 개막한 ‘닥터지바고’의 평이 다소 시들한 것에 비해 ‘엘리자벳’은 까탈스런 기자들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3인 3색의 ‘죽음’과 2인 2색의 ‘엘리자벳’ 조합은 예상대로 흥미로웠다. 류정한(죽음)과 김선영(엘리자벳)의 화학작용은 활화산이 떠오를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류정한은 홀로 특별 마이크를 착용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성량을 자랑하며 엘리자벳을 유혹했다. 한올 한올 실로 뽑아낸 듯 정성스런 가창에 어서 빨리 빛나는 레이저 광선이 달린 고공 브릿지에 안착한 ‘죽음’이 등장하길 바라게 될 정도다. 김선영이 후반부 선보이는 광기어린 엘리자벳의 모습 역시 설득력을 지녔음은 물론이다.

뮤지컬 '엘리자벳' 사진 emk

김선영과 류정한의 대결이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했다면, 송창의(죽음)과 옥주현(엘리자벳)의 대결은 다소 부드러운 신경전을 떠오르게 했다. 옥주현의 우아한 카리스마가 송창의의 존재감을 다소 눌러버린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둘의 조합 특유의 매력은 분명 존재했다. 카페모카처럼 달콤한 매력을 원한다면 송창의 캐스팅을,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매력을 원한다면 류정한 캐스팅을 추천한다.

뮤지컬 ‘엘리자벳’ 은 가장 아름다웠던 황후로 손꼽히는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벳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국내에는 ‘모차르트!’로 이름을 알린 세계적인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의 손을 거쳤다. 실제 엘리자베스의 암살자였던 아나키스트 루케니에 의해 극은 열리고 닫힌다. 

어찌보면 ‘엘리자벳’은 통속적인 뮤지컬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객들은 루케니(박은태 김수용 최민철) 넘버 ‘키치’에서 드러나듯 싸구려 키치의 일생으로 평가될지도 모를 ‘엘리자벳’의 이야기에 열광했다. 자유로운 생활을 갈망하는 ‘엘리자벳’이란 새가 새장(엄격한 황실)속으로 날아든 것 자체가 매혹적이다. 루케니의 말대로 ‘사람들이 새를 구경 하는 걸 비난할 수 없다’. 즉 ‘엘리자벳’을 보기 위해 블루스퀘어 극장으로 달려오는 건 분명 이유가 있어 보였다.

‘나는 나만의 것’을 외치며 자유를 갈망하던 엘리자벳은 아들 루돌프(전동석 김승대)가 자신보다 먼저 ‘죽음’과 입맞춤하자 ‘고작 자유 따위를 찾겠다고..’라며 아들의 시신을 붙잡고 울부짖는다. 곧 이어 나타날 죽음의 등장에 관객들의 가슴은 떨린다. 이미 6인의 ‘죽음의 천사’들과 함께 추는 ‘죽음의 춤’으로 관객의 심리를 제 편으로 만들어 놨음은 물론이다. ‘엘리자벳’에게 있어 ‘죽음’은 ‘행복’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뮤지컬 '엘리자벳' 사진 emk

결과적으로 뮤지컬 ‘엘리자벳’은 이야기를 음미하는 만족감, 무대를 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줬다. 국내 관객들이 선호하는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는 웅장한 음악은 중간 중간 지루할 틈 없이 흘러나왔고, 영상을 활용해 다양한 장소와 시대를 넘나들었다. 화려함의 극치인 19세기의 빅토리아 시대의 의상들 외에도 2중 회전무대와 3개의 리프트를 활용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흠 잡아내기 선수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기자들 입장에서 이번 작품이 무결점의 작품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작 뮤지컬에 실망한 관객들을 다시금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치명적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는 평에는 반박을 하지 못할 듯 싶다.

궁정안의 인형같은 황실생활을 표현하기 위한 마리오네트 인형춤, ‘엄격, 냉철, 강인’을 외치던 대공피 소피(이정화 이태원)의 저음의 매력도 자꾸만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압도적인 ‘루케니’의 존재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해설자 ‘루케니’로 분한 박은태는 유쾌한 소년같은 표정과 장난기, 무대를 방방 뛰면서도 안정적인 고음으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이미 뮤지컬 ‘햄릿’에서 매혹적인 락 발성을 선보인바 있듯, 그의 락 음성은 오케스트라를 능수능란하게 지휘하는 지휘자의 여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오는 11월 국내 관객들을 찾아올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의 루돌프 박은태로 만나고 싶어지는 건 기자만의 바램은 아닐 듯 싶다. 5월 13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공연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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