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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家 사람들] ‘풍찬노숙’은 가고, ‘정나미’가 돌아왔다

입력 : 2012-01-25 21:46:35 수정 : 2012-01-25 21: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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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희희낙락’으로 점철된 4시간, 연극 ‘풍찬노숙’

연극 '풍찬노숙' 중 선주(조정근) 모습

‘‘정나미’(어떤 대상에 대하여 애착을 느끼는 마음)있는 연극이다. 연극 ‘풍찬노숙’(작가 김지훈, 연출 김재엽)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연극을 보고 난 뒤,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은 거 보면 뭔가 ‘흔들림’이 있는 건 분명하다. 문계가 울컥울컥 토해내는 '아기신화' 즉, '시골민족 탄생설화'를 웅크리고 엎드린 채 꼼짝없이 듣고 있던 아기 석상들, 도구는 쓸지 몰라도 ‘염치’는 있는 주워먹는 그애(김소진), 이 땅에 ‘우애’가 없다고 한탄하던 세참이 형제들(유병훈 윤종식 이정수), 응보의 상장 넣고 달인 물에 얽힌 일화로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 ‘혈연’을 앞세우는 요년조년 자매들(김효숙 황석정), 항상 내편처럼 여겨지지만 ‘어사무사’(생각이 날듯 말듯)한 역사 같은 어머니(고수희), 배만 들어오면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말하는 허풍쟁이 아저씨 선주(조정근)가 바로 그들이다.

남산예술센터 자체제작 연극 ‘풍찬노숙’은 신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했다. 민족적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역사적 출발선을 찾는 과정, 즉 ‘혼혈족의 건국신화’를 다뤘다. 연극은 그들이 신화를 만들 수밖에 없던 세상을 두 눈 뜨고 바라 볼 것을 권한다. 다른 이유도 아닌 순혈과 혼혈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역사'를 만드는 그들의 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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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속에서 다양한 '혼혈족'들을 만날 수 있다. 마음이 약하고 따뜻한 인간적인 지도자인 응보(윤정섭)와 응보를 왕으로 추대한 뒤 인위적으로 역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을 죽게 만드는 차가운 지략가 문계(이원재)가 중심축이다. 그들 주변엔 ‘민중’들이 있다. 아직껏 좋은 세상을 만나지 못한 몽상가 처장군(하성광), 아픈 세상을 등에 진채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어른 정곱사(지춘성)등이 ‘풍찬노숙’의 전설에 살을 하나 하나 보태는 식이다.

연극 '풍찬노숙' 중 응보(위 윤정섭)와 문계(아래 이원재)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관객들은 잠시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아들보다 (죽은)어머니가 더 젊은 아가씨로 등장하고, 죽은 심서와 살아있는 문계가 정을 통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책 속에 써진 글로 읽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엄청난 양의 말이 배우의 입에서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거창한 것 보다는 (연극 속)말로서 관객들 귀를 통해 막 쳐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던 김지훈 작가의 인터뷰 멘트가 계속 떠오르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관객들의 막힌 귀를 무자비하게 뚫고 들어가는 연극 속 대사들이 무례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반면에 도발적인 '연극'에 귀와 눈을 열어재낀 관객들의 머릿 속은 쉴새없이 요동쳤다.

‘풍찬노숙’과 친해질 것이냐 말것이냐는 1막에서 결정된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내용전개 및 세찬 비바람처럼 쏟아지는 엄청난 대사에 기겁을 한 관객들은 1막 이후 이어지는 인터미션 시간에 이탈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소 장중한 1막과 색을 달리하며 관객들의 숨통을 틔어주는 2막을 평생 못 봤다는 아쉬움에 가슴을 칠 수도 있다. 처음부터 안 봤다면 모를까 한번 보기로 마음먹은 이상 끝까지 ‘풍찬노숙’을 지켜본다면 뭔가 하나는 건져가게 된다. ‘이런 연극도 있구나’ 하는 새로움이든, ‘끝까지 집요하게 달라붙는 연극적 딴세상’에 대한 깨달음이든.

‘미끄럼’ 놀이가 수상하다. 신화의 4시간을 여는 이번 작품은 우리 어릴 적 비료 푸대 타고 천진난만하게 놀던 한 쌍의 능을 묘사하며 시작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과감하게 뒤바꾼 무대에서 3번(1막에 2번, 2막에 1번)에 걸쳐 미끄럼을 탄다. (혼혈족과 순혈족이라는) 계급의 구분없이 즐겁게 놀았던 어린 시절의 소꿉놀이를 떠오르게도 하지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시선과 사고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들의 소꿉놀이는 곧 역사적 순간으로 이행하기 위한 전초전이었다.

중간 중간 부드러운 말이 조용히 관객들을 유혹한다. ‘걔 있냐’ ‘앞서 갈게 뒤에 온나’ 등 옛스러운 말들이 귓가에 맴돈다. 응보가 들려주는 '홍길동'의 유래는 다시 들어도 귀가 솔깃하다. 다만, 기승전결 이야기 구조에 익숙한 관객들은 한가지 의문점에 봉착하게 된다. 혼혈족의 갈등과 현실적 문제가 왜 제대로 드러나지 않느냐?고. 다시 한번 기억할 건 이번 작품은 울분과 정한이 맺인 이후의 ‘혼혈족의 건국신화 탄생’이지 현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혈족의 문제 전면 노출’이 아니란 점이다.

연극 '풍찬노숙' 피날레

‘풍찬노숙’의 신화적 모티브는 “왕이 죽어야 근대가 온다”이다. 응보가 말한 대로 중세 연극의 시대가 끝나자 근대가 열렸다. 가슴을 강타하는 북(소리) 속엔 민중의 고통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신화가 작동하기 직전 그들은 모두 죽음으로 내몰리게 된다. 응보의 아이를 가진 개심(김지성)과 허풍쟁이 선주만 빼고 말이다. 관객들의 머릿 속을 알아챈 듯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내달렸다.

허풍쟁이 선주가 드디어 닻을 올렸다. ‘정나미’가 돌아왔다면서 기대에 찬 얼굴이다. ‘정나미’는 원래 부정적인 문장과 잘 어울린다. 고정관념을 깨는 김지훈 작가는 긍정적인 서술어 (정나미가)‘돌아왔다’로 표현했다. 관객들의 반응도 각기 나뉠 수 있겠다. ‘풍찬노숙’에 정나미가 붙던지, 정나미가 떨어지던지. 정확히 구획된 이야기거리에 무게감을 둔 관객이라면 후자일 듯 싶다. 연극적 '딴 세상'에서 맘껏 유영하고 온 관객은 4시간 내내 의미있는 웃음을 실실 흘렸다. 2월 12일까지 남산예술센터.

공연 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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