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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훈의 연극家 사람들] 추상적인 춤·발레가 '사랑'이라는 드라마를 만났을때…상상 그이상의 감동

입력 : 2011-11-01 16:40:05 수정 : 2011-11-01 16: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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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과 국립발레단의 극적만남·터지는 환호 ‘로미오와 줄리엣’
국립현대무용단 ‘왓 어바웃 러브’ 5~6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용
유니버설 발레단 ‘오네긴’ 12~19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국립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 뫼비우스 띠가 나오는 결혼식 장면

춤 동작만으로 ‘사랑’의 감정인 그리움, 떨림, 환희, 유혹,질투, 상처, 비통 등의 복잡한 감정이 전달된다면? 관객들의 상상력까지 합세해 대사가 있는 연극 혹은 뮤지컬보다 감동은 배가 된다. 관객 나름대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가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30일 막을 내린 장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 국립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드라마 발레의 정수를 맛보게 했다. 주말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 돼 국립발레단의 브랜드 신뢰도를 입증했다.

단 이틀간(5~6일) 맛보게 될 국립현대무용단의 ‘왓 어바웃 러브’는 “사랑”을 주제로 풋풋한 첫사랑부터 죽음 앞에서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 연인들의 다양한 사랑의 시각을 그려낸다. 1980년대 이후 프랑스 현대무용의 새로운 조류인 ‘누벨당스’를 이끌어온 세계 정상급 안무가 조엘 부비에의 작품이다. 

서울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오네긴’은 춤과 연기가 혼연일체가 돼 인물의 심리 묘사와 극적 구성의 밀도가 촘촘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춤 속에서도 드라마는 더욱 강렬한 점이 특징.

■ [리뷰] 자석처럼 끌린다. 온 몸으로 열광한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거대한 무대장치도 없었다. 백색 바닥과 백색 패널만으로 시공간의 이동은 가능했으며,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다양한 조명으로 사랑의 설레임과 괴로움을 이야기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지휘아래 재탄생된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은 연극적인 구조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지난달 27∼3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 ‘로미오와 줄리엣’공연에서 매 순간 관객들과 소통했던 이는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이었다. 발레에 문외한인 관객들은 자석의 N극이고 전문 무용수들은 S극이었다. 정점은 죽은 듯 누워있는 줄리엣을 로미오가 사랑의 자석키스로 애잔하게 들어 올렸을 때 였다. 무대 위 연인 뿐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들 역시 합체가 됐다. 무용수들의 손끝 하나, 슬픔을 억누르는 얼굴 근육 하나, 치기어린 동작 하나 하나가 관객들의 영감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장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감각적인 안무가 특징. 극중 ‘뫼비우스의 띠’는 작품 속 중요한 소도구가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혼식 장면에선 안팎이 연결된 ‘뫼비우스의 띠’가 실제로 등장한다.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는 연인들의 관계는 초반 로렌스 신부(이영철)의 손동작에서 불길한 운명을 예견하더니 중반 연인들의 (하늘로 향한 두 팔을 무한대로 비비는)손동작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됐다. 관객들의 머릿 속까지 조율한 마이요의 천재성이 증명되는 부분이다.

그 곳의 시간은 잠시 멈춘 듯 ‘아찔하게’ 혹은 ‘빠르게’ 지나갔다. 극중 인형극을 통해 예견되는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코믹하게 보여주던 발레는 슬로우 모션 기법이 가미된 영화 같은 연출력으로 비극을 극대화시켰다. 패리스-줄리엣, 로미오-로잘린, 캐플릿 부인-티볼트의 6인무로 어긋난 춤사위를 보여주던 무도회 장면에 이어 머큐쇼(배민순)의 죽음과 티볼트(윤전일)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장면이 긴장감 넘쳤다. 팀파니 절묘한 음과 함께 죽음으로 달려간 티볼트의 연기와 로미오의 스릴감 있는 표정에 관객들 모두 숨죽였다.
 
줄리엣은 사랑 앞에 거침없었고, 로미오는 치기어린 소년의 정서가 가득했다. 김주원과 김지영은 고도로 농축된 줄리엣의 감정 한올 한올을 맛깔스럽게 뽑아냈다. 로렌스 신부와 캐플릿 부인의 카리스마는 강렬했다. 연인들의 침대이자 삼각형의 뾰족한 모서리가 죽음으로 가는 길목이었다는 것을 감지한 관객들은 비통한 음악 속에서 얼이 빠진 모양이었다. 강요하고, 설득하지 않아도 관객 스스로 자석처럼 끌리는 발레 작품이 틀림없었다. 
 

국립현대 무용단의 '왓 어바웃 러브' 연습장면

■ 16인 무용수와 따뜻한 안무가 조엘 부비에의 만남 ‘왓 어바웃 러브’

16명의 한국 무용수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국립극장 용 무대에 펼쳐진다. 국립현대무용단의 해외안무가초청공연의 일환이다. ‘사랑’을 모티브로 한 신작 ‘왓 어바웃 러브 (What about love)’은 여러 각도에서 바라 본 사랑의 감정이 75분간의 춤에 담길 예정.

부비에는 35세 이상과 35세 미만으로 나눠 진행된 오디션에서 무용수들을 직접 선발했다. 선발된 무용수들에게는 ‘연애편지를 써와라’ ‘사랑의 감정을 몸으로 표현해봐라’ 등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후 다양한 연령층의 무용수들이 지닌 사랑에 대한 추억과 정서를 안무에 반영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창단 이후 처음으로 해외안무가를 초청한 홍승엽 예술감독은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부비에의 안무의 특징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며 “이번작품에서 무용수들의 대화와 영상을 첨가해 섬세한 인간미를 표출해낸다”고 설명했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오네긴' 중 황혜민-엄재용 커플 지난 공연모습

■ 엇갈린 사랑…성숙해진 여인, 오열하는 관객 ‘오네긴’

2009년 초연에 이어 2011년 가을, 또 한번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 ‘타티아나’의 사랑이야기가 찾아온다. ‘오네긴’은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예술감독이었던 존 크랑코가 1965년 안무한 3막 6장의 드라마발레. 주인공의 심리 변화가 표정이나 미세한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표현이 생명인 드라마발레의 요람’으로 불리운다. 또한, ‘푸쉬킨’ 소설에 담긴 풍부한 문학성과 차이코프스키의 서정적 음악이 함께한다.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남자 ‘오네긴’과 순진한 소녀 ‘타티아나’의 엇갈린 사랑이 주요 테마. 특히 첫사랑에 빠진 ‘소녀 타티아나’에서부터 실연의 아픔을 넘어선 성숙한 ‘여인 타티아나’까지 자유롭게 넘나드는 여주인공의 섬세한 연기가 작품의 백미.

이번에 타티아나-오네긴 역을 맡은 남녀 주역 무용수는 모두 네쌍이다. 황혜민-엄재용, 강효정-에반 맥키, 강미선-이현준, 강예나-에반 맥키가 바로 그들. 그 중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강효정과 에반 맥키의 국내 전막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13일(일)과 15일(화) 무대에 선다.

‘오네긴’의 하이라이트는 1막과 3막의 고난이도의 리프트와 격렬한 파트너링으로 이루어진 남녀 주인공의 파드되(Pas de Deux, 2인무). 때문에 테크닉보다도 주역무용수 둘 만의 호흡이 어느 작품보다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최장 파트너쉽, 8년을 함께한 황혜민-엄재용 커플의 무대도 기대감을 높힌다. 12일(토)과 18일(금)에 만날 수 있다. 매 공연 직전 문훈숙 유니버설 발레단장의 해설이 함께한다.

공연칼럼니스트 정다훈(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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