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단절' 만리장성 vs '개방' 로마가도

입력 :

인쇄 메일 url 공유 - +

구글 선호 매체 등록

 수많은 인파로 술렁거리는 스페인광장

1. 길에 대한 생각들

기원전 3세기부터 5백년간 8만km를  건설한 로마가도는 19세까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길로 위세를 떨쳤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로마에 대해서 해박하고 다양한 대 저작을 쓴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10권에서  유럽은 물론 중동,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유례없는  `팍스 로마나'의 평화를 300년 이상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가도'란 제국의 대동맥의 건설 덕분이라고 말한다. 

정복과 영토확장이란 외적 팽창과 달리 대 제국을 관리하고 유지하며 발전하기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Infrastructure)로 도로를 위시하여 수도, 건축, 하수도,  의료, 교육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교통이다.  땅위에서 가장 중요한 소통로는 도로이다. 그 도로가 로마가도이다.  시오노나나미는 지금도 그 당시 수도로 흘러온 물을 가지고 차를 끓여 마신다고 한다.

로마가도는 너비가 차도 4m, 양쪽의 인도가 각각 3m씩인 간선도로로 마차 두 대가 서로 지나갈 수 있는 넓이이다. 생각보다 훨씬 넓은 도로다. 이 도로는 기원전 3세기 이래  500년 동안 건설된 총길이가 8만㎞에 이르렀고 지선도로까지 합하면 총 15만㎞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도로가 아피아 가도이다. 이 도로는 고대 로마의 국도로 전체 길이가 540㎞나 되었다.  BC 312년 집정관인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가 착공시켜서 이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 도로는 이탈리아 장화의 뒤 끝인 브린디시까지 이어졌다.  부린디시에서 아드리아해를 건너가면 그리스가 나온다. 이 발칸반도를 횡단하는 에그나티아 가도(BC 130년)와 연결되어 이탈리아반도와 발칸반도의 그리스를 있는 역할을 하였다. 지금도 이 도로는 일부 사용이 되고 있고 주위에 많은 사적을 볼 수 있다.  이 아피아 가도는 가장 유명한 도로로  ‘도로의 여왕’으로 불린다.

시오노나나미는 이 로마가도 건설이 중국의 만리장성 쌓는 시기와 비슷하게 시작됐다고 한다. 로마는 로마가도란  개방적인 길을 만들었고, 중국은 만리장성이란  외부와 단절하는 장성을 쌓았다는 점이 다르다.

19세기 철도가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빠른 이동 수송 통로 역할을 했던 것이 로마가도이다. 지금의 도로와 많은 부분 합병이 되었지만 이 도로는 근세까지 유럽의 변방 구석구석까지 핏줄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독일 남쪽 뷔르츠부르그에서 알프스가 가까운 퓌센까지 350km 가량 남아있다.

‘스페인의 시에라 데 그레도스 산지까지 뚫고 들어간 로마의 도로는 지금도 사람과 가축들의 이동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유럽, 북아프리카, 중동을 하나로 묶은 로마가도 자체가 대규모 경제권으로 묶는 Belt역할을 했다는 것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경제권은 지금의 유럽연합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고 사오노나나미는 말한다.

길은 문명과 함께한다. 인간이 길을 만든 것은 동물과 전혀 다른 우월적 수준으로 발전한 계기가 된다. 인간은 길 위에서 폭주하게 되어 가장 빠른 탈것을 이용하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도로 달릴 수 있게 되었다. 

2. 트레비 분수

오후에 여장을 챙겨서 핀쵸 언덕에 있는 스페인광장 그리고 트레비분수로 갔다. 스페인광장은 오드리헵번과 그레고리펙이 주연을 한 영화“로마의 휴일”의 배경이 된 곳이다. 아득한 추억이 되어 버린 영화이다.  

로마를 다시 방문할 것을 기원하며 주머니를 뒤져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진다. 동전을 던지되 등 뒤로 던져야한다. 이 동전들은 가끔씩 수거해서 복지기금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곳은 수많은 각국의 젊은이들과 만날 수 있다. 여기에서 로마의 탐구를 시작했다. 스페인 광장, 스페인 계단은 잠시 걸음을 옮기면 된다.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쉬어 가는 곳이다. 구경거리에 넋을 잃고 한 참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사람이 많아 그 나름대로의 상권이 형성되어 관광토산품이나 가죽제품 등을 팔고 있다.  자리를 옮겨 모든 신의 기념비적 건축물인 판테온신전으로 간다.

3.판테온 신전

이 신전은 BC1세기 그리스의 직선적인 건축양식에서 출발하여 곡선의 아치형으로 지어진 것으로 기둥이 세워진 곳으로부터 가로43m, 높이43m가 기둥이 하나도 없는 돔형 건축양식이다.

 

 판테온광장 앞에 이집트에서 노획해 온 오벨리스크가 이정표처럼 서 있다.

이것은 에트루리아人들이 메소포타미아, 중동, 오리엔트에서 가지고 온 건축양식이라고 한다. 판테온(Pantheon)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범신론(汎神論;pantheism)적인 의미가 많이 첨가되어 있다. 그러나 이 판테온 신전은 나중에 교회가 되어 일신교를 믿는 Monotheon(?)으로  변했다.

그리스의 신들은 로마에 와서 약간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이름으로 판테온에서 머물렀다. 그러나 지저스 크라이스트가 이곳에 입주한 다음 그들은 다시 그리스 신화 속으로 돌아가 버렸다.

판테온 신전은 로마의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건축학에 문외한인 이들도 이 판테온의 건축학적인 가치에 놀라게 된다. 원형의 완벽함에 경악하게 된다. 현존하는 고대 로마의 건축물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기나긴 세월 동안 화재, 지진, 전쟁, 수해 등을  겪었지만 거의 처음 그대라고 한다.

이 판테온 신전이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로만 콘크리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석회와 화산재를 배합하여 만든 모르타르(mortar)라는 양회(洋灰; cement)로 모래와 자갈과 돌을 섞어서 콘크리트를 만들었다.  콜롬세움이 완전히 돌 같지 않았던 것은 이 원시적인 콘크리트가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그리스 건축을 석조 건축이라고 한다면, 로마건축은 콘크리트의 건축이라고 한다.  판테온의 돔 구조는 철근 같은 것도 쓰지 않고 원시적인 로만 콘크리트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건축학적으로 불가사의라고 한다.

이렇게 주유하다가 구석진 곳을 지나가면 이 도시의 술꾼들 탓에 우리의 코가 혹사당한다. 땅이 아닌 돌 위에 소변을 누는 자들은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 그들의 체취로 스스로를 욕되게 한다.    

 동쪽으로 대통령이 기거하고 있는 이태리 靑瓦臺 ‘퀴리날레宮’을 스쳐지나가고 로마의 센터인 베네치아광장에 당도한다. 이곳은 교통의 중심지이고 많은 차량이 다니는 복잡한 곳이다. 광장의 정면 가운데에 이태리 통일을 위해 힘썻던 에마누엘2세 기념탑이 있다.

베네치아宮은 뭇솔린이 집무를 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고대의 건축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길은  거의 다 좁은 길인데 불구하고 로마의 골목길은 다른 곳과 비교해서 한참 넓은 느낌이다.

/ 김규만 (한의사)  transville@hanmail.net


오피니언

포토

박보영, 오프숄더 드레스 자태…반전 글래머 몸매 '눈길'
  • 박보영, 오프숄더 드레스 자태…반전 글래머 몸매 '눈길'
  • 채수빈 미소에 '나 충전 다 됐어요'
  • 츠키 '매력적인 미소'
  • 호피 무늬 수영복 입은 김사랑, 48세 나이 무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