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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어느 외딴 마을에 도착하는 방송국 취재팀. 허나 변변한 건물 하나 없는 그 곳에 사는 주민들의 경계어린 눈초리를 보곤 일순 분위기가 냉랭해진다. 이제 영화는 어째서 이 마을이 이 같은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됐는지를 되짚어 보기 시작한다.

장면은 바뀌어 루마니아의 한적한 시골 마을. 들판 속에서 단발마적인 비명과 함께 발가벗은 남녀가 일어난다. 바로 닭살 커플인 이안쿠(알렉산드루 포토신)와 마라(메다 안드리아 빅토르)인 것. 시도 때도 없이 아무 곳에서건 몸을 섞는 이들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웃기만 할 뿐 제지하지 않는다. 오직 한 사람, 마라의 아버지만 화가 단단히 났다. 딸의 행실만 보면 시집이나 제대로 갈 수 있을까 걱정인데, 정작 아내와 마라는 천하태평이니. 그는 술집에서 자기 딸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 이안쿠를 만나 한바탕 몸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이안쿠가 결혼하겠다는 한 마디에 사위와 장인처럼 돈독한 관계로 돌아선 두 사람.

결혼식은 마을 최고의 성대한 파티로 시끌벅적하고 신랑신부가 한껏 업(up)된 분위기에 젖어드는데, 바로 그때 소련군 장교가 등장한다. (중략)

이 영화는 실제로 루마니아에 일어났던 어느 마을의 비극을 스크린에 재현한 것이다. 결혼식 당일 소련의 최고 통치자 스탈린의 죽음으로 인하여, 결혼식을 포함한 집회 일체와 파티를 금지하는 소련 장교. 통사정 해보지만 반역으로 처리하겠다는 엄포에 마을사람 어느 누구도 끽소리 못한다. 자 이제, 결혼식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자니 목숨이 위협받고, 안하자니 귀하게 마련한 음식과 멀리서 온 하객들이 부담스럽다. 결국 고민 끝에 마련한 아이디어는 결혼식을 거행하되 소련군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사일런트 웨딩’(silent wedding)이다.

립싱크와 손짓 발짓으로 결혼식 주례사와 축가를 대신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보다는 가슴 속 진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생각해보라. 자기 나라의 지도자도 아닌 지배국가의 독재자가 죽어서 어렵게 준비한 결혼식을 금지 당했을 때의 참담한 심정을. 더욱이 서슬 퍼런 눈빛으로 위협하던 소련 장교는 조금 전에 그 마을 처녀를 강간 살해한 사악한 인간이다.

그럼 이러한 비극이 일어난 데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소련의 압제에서 숨 한 번 제대로 못 쉬는 무력한 루마니아 자체에 있는 걸까. 혹은 스탈린과 그의 추종세력일까. 정권강화 차원에서 수십만의 자국민을 숙청하거나 시베리아로 추방한 인물이 피지배국민을 어떻게 대할지는 생각할 여지도 없다. 

이도 저도 아니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결혼식을 감행한 신랑신부 측과 하객들일까. 결혼식 중에 시끄러운 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탁자와 의자 다리를 솜으로 묶고, 뻐꾸기시계가 울리지 못하게 새의 머리를 비틀어 버릴 정도로 신중했던 마을 주민들. 그러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신부의 눈물과 그로 인해 사람들이 이제껏 유지한 평정심이 흐트러지면서 비극이 발생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은 이미 예견된 것이다. 애초부터 ‘사일런트웨딩’을 시도한 것 자체가 무리였고, 국토를 유린한 소련군의 만행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순박한 농촌주민들을 두고 한 말이다.          

한편 영화 속 당시 루마니아 농촌 사람들이 느꼈을 설움에 대해 어느 나라 못지않게 한국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형성케 할 것 같다. 영화 속 이야기가 실화라서가 아니라, 우리도 일제 강점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 당시에 천황이 사망했다면서 결혼식을 금지시킨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영화 속 비극을 본 관객이라면, 결코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연동원 영화평론가, 역사학자 yeon04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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