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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쓴 너, 고스란히 당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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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10-06 11:00:19 수정 : 2008-10-06 11: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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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인터넷 위상구조를 분석해야 근본적 해결방안을 얻을 수 있다.  얼굴없는 욕설을 불특정 다수가 지나는 게시판에서 당해보면, 마음 속으로 분노가 치미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렇게 살지 않았는데, 가볍게 툭툭 찌르는 수 억개의 바늘(악플)이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늘어' 난다. 재미로 사람을 찌르고 다니는 악플러 무수한 바늘이 동시에 찔러야 비로소 하나의 인격이 고스란히 벗겨짐을 당하고 수모를 겪는 구조에서 법은 불특정 다수를 쫓고 모두를 처벌하기 힘든 현실이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악플은 네트워크 시대에 인터넷 공간의 대표적 부조리이다.

 
최진실씨의 자살 소식에 미니홈피에 악플을 다는 공공의 적들이 있다. 한 누리꾼이 그들의 고유주소를 방명록에 명시하여,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호소하고 있다. 매번 반복되는 '악플', 경우없는 이 짓거리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것일까? 네트워크의 위상구조, 경로 등을 바탕으로 인터넷을 네트워크의 원리로 분석해본다면 보다 현실적인 해결을 모색할 수 있다.

악플은 사사로운 감정 표현에 그치지 않고, '악플'을 본 대다수의 사람에게 심리적 충격과 불쾌감을 유발하는 사회적 문제이다. 그리고 인터넷 공간은 '천박한 민주주의', '초딩수준의 누리꾼' , '고인에게 악플다는 윤리의식없는 쓰레기' 라는 오명을 받게 된다.

악플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 위법행위이다. 표현의 자유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에 바탕한 '인격의 자기 완성',  '진리의 달성',  '공동사회결정에의 참여',  '개선과 안정의 확보' 등을 위해 보장받는 것이지(박용상, '표현의 자유', 현암사, 2002, pp15-21), 초딩수준의 악의적이고 무비판적인 댓글에 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플은 사회 공공선을 저해하고 인터넷 공간의 사회자본(social capital)을 잠식하고 있다. 

이미 악플은 현행법에서 처벌받는 범법행위이며, 지금까지 유언비어 및 인터넷 마녀 사냥식의 악플에 대한 처벌도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다만 악플이 마치 실명제와 처벌 조항이 마련되지 않은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고 쉽게 단정짓고 검열과 규제 그리고 통제의 목소리만 높이는 것은 악플만큼이나 인터넷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얕은 생각이다. 그런 전문가, 입법가, 행정가가 많을 수록 인터넷 공간은 더욱 어수선해질 것이다.


인터넷 악플 사건은 실명이 확인되는 사이트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실명제를 시행하기 이전부터 IP주소와 Mac주소 등으로 악플러의 소재파악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익명을 보장하는 글쓰기 방식'이 악플을 불러일으킨 주범이었다면, 제한적실명제가 IPS에 적용되고 있는 오늘날 왜 악플러들은 기승을 부릴까? 그렇다면 벌금 등 처벌 수위가 낮다면 악플러들을 공개사형이라도 시키면 사라지는 것일까? 네트워크를 바라보는 과학적 분석도 없이 정책입안자들이 생각하는 얇은 IT지식이 악플러를 늘린 것은 아닐까? 또 한차례 전문가들이 나서서 사회불안과 개인 심리 문제 그리고 실명제가 안되고 처벌 수준이 낮다는 판에 박힌 얇은 생각을 두서없이 내뿜을 때, 이 사건이 잊혀지면 또 악플러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인터넷은 스스로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유사한 생태계이다. 네트워크 시대가 도래하면서 온/오프라인의 모든 정보가 인터넷으로 수렴하면서 인터넷 생태계(eco)가 중요시되는 이유는 네트워크의 위상구조와 경로 그리고 콘텐츠의 속성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플은 규제와 처벌로 막아낼 수 없다. 오히려 규제와 처벌은 엉뚱한 정치적 검열과 권력의 자기중심적 해석에 이용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악플에 의한 피해는 공인과 사인을 가리지않고 너무도 크며 악플을 없애기 위한 노력은 네트워크 시대에 꼭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검열과 규제 더나아 처벌의 주체가 UCC 시대에 국가에서 다양한 허브, 이웃, 그룹, 쇼셜 관계로 확장되고 있다. 다시말하면 UCC시대에 악플은 UCC를 활용하고 UCC가 살아가는 네트워크에 대한 위상구조를 이해하지 않고 해결할 수 없다. 
GustavoG님, 'A retrospective on social networks', 2008년 http://www.flickr.com/photos/gustavog/97367373/에 게시. 구글은 왜 돈을 버는가? 네트워크의 링크를 분석함으로 경쟁력을 얻어왔다. 플리커는 왜 음란 사진이 여과되는가? 실명가입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쇼셜 네트워크의 원리를 활용함 그룹, 이웃 등을 이용해서이다. 콘텐츠의 경로 속에서 컨텐츠가 자기조직화되는 과정에서 정보의 역기능을 줄여나가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ICT 인프라는 분명 강국이지만 네트워크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학자와 관료는 후진국 수준을 넘지 못해 왕성한 UCC를 생산할 누리꾼을 가지고도 ICT경쟁력이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은 아날로그 공간과 다른 소통방식으로 성장한 곳이다. 즉 얼굴없는 대화는 고정된 사고와 낡은 관습을 깰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다. 책임있는 표현의 자유가 만발하게 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책임이란 무조건적으로 악플이든 미친 글이든 폭로성 글이든 인정하고 올라오게 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인터넷도 걸러진다. 인터넷의 여과작용은 네트워크의 위상 구조에서 결정짓게 되는데, 우리나라 네트워크는 글로벌하게 연결된 다양한 허브들의 동학적인 움직임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따라서 악플 등 불필요한 정보를 제거하거나 삭제하는 방식으로 규제와 처벌이 이루어지는 아날로그적 사고에서 악플과 불필요한 정보가 고립되도록하는 네트워크 위상 구조를 활용해야한다.
아무리 악의적인 글이라할지라도 아웃바운드 및 인바운드 링크가 절단되면 콘텐츠는 남아있어도 그 실질적인 영향력은 사라진다. 연결에 의한 노출이 없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미국 등 쇼셜 네트워크 선진국들은 콘텐츠의 개방을 통해 시간, 위치, 태그, 연결 등으로 콘텐츠간의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우수한 콘텐츠가 성장하는 동적 네트워크 구조에서 ICT산업을 발전시키고 국가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런 문화 사회적 환경은 개인들의 표현의 자유와 국가의 아젠다 수렴 과정을 민주적으로 이끄는 긍정적인 기능도 담당한다. 그런 변화의 물코가 웹 2.0 사조이다. 단순한 유행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이런 중대한 역사적 시점에서 네트워크 사회로 빠르게 전환해야 할 우리나라는 실명제의 늪에 빠져있다. 심지어는 주민등록번호체제를 강화함으로 투명한 인터넷을 만들수 있다는 과대망상, 아날로그적 통제와 규제로 디지털의 생태계를 죽이는 정책과 법안을 생산하고 있다. 
이런 시대오류적 사고를 악플 등 인터넷의 역기능이 등장할때마다 앵무새처럼 떠벌이는 지식인들의 반복된 얇은 주장은 수년을 반복하는 악플에 허황된 메아리로 들린다.
생각컨데, 지금 우리나라는 시대를 거슬르는 사고에 집착하는 일을 벗어던지고, 음란사진, 유언비어, 악플 등이 존재하는 외국에서는 어떤 사고로 역기능을 대처하는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네트워크 시대, 국가는 인터넷 생태계 속에서 자기조직화되며 여과되는 콘텐츠가 잘 만들어지도록 조성하는 일에  나서야 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 강장묵 mookn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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