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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대화 염두 뒀나 …‘북한 비핵화’ 빠진 미 국방전략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24일 공개한 새 국방전략(NDS)에서 북한의 핵·미사일을 “본토에 대한 분명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 평가하면서도 북한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발간한 상위 문서인 국가안보전략(NSS)에 이어 국방 분야 최고 전략 문서에서도 비핵화 표현이 빠진 것이다.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라는 현실인식을 기반으로 본토방어를 명분화하면서도 북미대화 공간을 열어놓으려는 취지란 분석이 나온다.

 

2019년 7월 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악수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NDS는 미국 정부가 취할 국방 전략의 방향을 제시하는 최상위 국방 전략 문서를 말한다. 통상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함께 작성된다. 이번 NDS에서는 북한의 핵 전력에 대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이들 전력은 규모와 정교함이 증가하고 있으며 미국 본토에 대한 분명하고 현존하는 핵 공격 위험을 제기한다”고 짚었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에 대한 기술은 빠졌다. 2022년 바이든 정부 때 NDS와 함께 발표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넣은 것과 대비되는 흐름이다.

 

전문가들은 미·중 전략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국제정세 변화가 북핵 문제의 우선순위를 낮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북핵 문제는 미국 입장에서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나 유럽 안보 위기와 비교할 때 직접적인 안보·경제적 국익과의 연계성이 매우 떨어진단 얘기다. 전봉근 한국핵정책학회장은 “자원을 중국 견제와 유럽 전선에 집중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라 북핵문제는 동북아 역내 문제로 격하하거나 시급성이 낮은 사안으로 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23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JD 밴스 미 부통령과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총리실 제공

북한의 핵 능력이 이미 상당 수준으로 고도화한 상황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현실적 정책 목표로 설정하기 어렵다는 미 조야의 시각을 반영했단 의견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백악관과 국무부는 공식적으로는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여러 차례 ‘핵 보유 세력(nuclear power)’이라고 불러왔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024년 미국 대선 때부터 민주당과 공화당 정강 정책에서 이미 한반도 비핵화 목표가 누락됐다”며 “특히 북한과 뭔가 해 보고 싶은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의 핵 보유 사실을 정책적으로 반영해 북한을 외교의 장으로 끌어내겠다는 의도”이라고 설명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 의사를 밝혀 왔다”며 “비핵화 언급으로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기보다는 북한과의 협상 공간을 열겠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