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가족 복닥복닥 ‘행복한家’… 나누며 꿈 키우는 ‘즐거운家’ 10월 둥지 튼 공동주거 ‘용두동집’ 입력 2018-11-06 16:41:58, 수정 2018-11-12 10:26:52
내 사생활은 무조건 감춰야 한다. 이웃과의 벽은 높고 두꺼울수록 속편하다. 집은 모름지기 사는 곳이기보다 ‘사는 것’이다. 아마 도시생활법칙 1, 2, 3쯤 될 법하다. 서울 동대문구 안암로에 있는 ‘용두동집’은 이 암묵적 불문율을 깨고 나섰다. 이웃과 경계를 허물고, 동네에도 품을 내주는 ‘공동체 주거’를 실험 중이다. 입주민끼리 허물 없이 왕래하는 건 물론 지하와 1층에 문화공간을 만들어 누구든 오라고 손짓한다. 이들이 도시생활법칙을 거슬러 ‘함께 살기’를 꿈꾸는 이유를 들어봤다. 용두동집을 찾아간 지난달 31일은 마침 집들이 행사가 한창이었다.
용두동집을 들여다보면 작은 옛 마을과 비슷하다. 외관은 전형적인 다세대주택이다. 지하 1층, 지상 5층에 건축면적 221.19㎡(약 67평) 규모다. 정림건축문화재단이 공동체 주거 프로젝트의 하나로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기획부터 완공까지 3년이 걸렸다. 이 집에 지난달부터 30∼70대 6가구가 둥지를 틀었다. 2∼12살 아이 7명을 포함해 19명이 모여 산다. 공유 주택의 꿈을 품고 입주한 이들은 ‘서울 속 마을 만들기’ 실험에 나섰다. 2층 공용 주방에서 수시로 한솥밥을 먹고, 3층 세탁실에서 빨래도 함께한다. 공용 주방은 67.1㎡(20.3평)로 널찍하다. 긴 싱크대와 큰 식탁이 놓여 있다. 각 세대에도 부엌이 있지만, 입주민들은 내킬 때마다 각자 음식을 싸오거나 함께 요리해 정을 나눈다. 가끔 주변 사람도 부른다. 정림건축문화재단 박성태 이사는 “집 주변 고려대에 외국인 유학생 5000명이 있는데 지금까지 매주 유학생들이 이 부엌에서 밥을 먹었다”고 말한다.
모여 살면 갈등은 불가피하다. 게다가 동네 주민까지 넘나들면 골치 아픈 일도 배로 늘어날 터. 그럼에도 용두동집 사람들은 함께 살기가 답이라 여긴다. 김씨는 “누구나 마당 있고 주방도 넓고 아이들도 풍족한 집을 갈망한다”며 “우리가 부동산, 보험에 투자하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인데 중소기업, 대기업 다 다녀보니 연봉이 얼마든 어차피 집을 못 사는 건 똑같더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애들을 행복하게 사교육 없이 키우고 싶다면 혼자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방향이 딱 정해지니 나머지 허들은 ‘넘어보자’ 마음먹게 됐다”고 했다. 최 작가 역시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봤더니 허전했고 잃는 것이 있었다”며 “혼자 살았을 때 플러스·마이너스를 알기에, 같이 사는 삶도 장단점이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갈등 없이 성숙은 없고, 같이 살며 겪는 갈등이 삶의 근육을 키워줄 것”이라고 봤다. 지난 1년간 서로를 알아가다 한 달째 함께 살아본 이들은 조심스레 미래를 낙관한다. 입주민 모두 거창한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최 작가는 “우리 집 이름을 ‘용두동 즐거운 가(家)’라고 부른다”며 “서로 즐거운가 물어보고, 그 정도면 됐다 여긴다”고 했다. 드높은 이상, 거창한 이념 없이 즐겁게 밥 먹고 청소하는 느슨한 공동체여서, 역설적으로 오래 가리라 본다. 이들이 처음 규칙을 만들 때 가장 먼저 나온 얘기도 사소한 것들이었다.
◆아이들에게 신나는 놀이터… 열린 사회 경험 벽을 허물고 사는 장점은 셀 수 없다. 밤중에 누군가 아프면 진통제를 급히 공수하고, 노 부부가 인터넷이나 컴퓨터 문제로 쩔쩔 매면 젊은이들이 돕는다. 노부부는 먹을 게 생기면 자꾸 나누려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용두동집은 신나는 놀이터다. 세 아이 아빠인 김씨는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애를 맡길 수 있으니 부모로서 안정감이 크다”며 “아이들 일곱 명이 같이 몰려다니니 할 것도 많고, 싸우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배우는 거 아닌가”라고 했다.
“아이들이 행복할 거예요. 이렇게 많은 이모·삼촌이 있으니. 어제 마지막 연극 리허설을 했거든요. 아이들이 다 내려와 봤어요. 아주 조용히 잘 보더라고요.”(최성문 작가) 김씨는 공동체 주거에 대해 “불안감이 상당 부분 없어진다”며 “여기서 좀더 살면 굳이 내가 보험을 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내게 어떤 일이 생겨도 우리 공동체가 삶을 지켜줄 거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두동집에서 살며 가장 마음에 든 점은 상부상조 같은 물질적 이득이 아니었다. “퇴근해서 오는데 집에 불들이 켜져 있었어요. 불빛을 보니 ‘저 집에 누가 뭐하고 있겠구나’ 예측이 되는 거예요. 마음이 따뜻해지더라고요. ‘우리가 같이 살고 있구나’ 싶고. 사람들 동선이 마치 가족같이 서로 연결돼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예상치 못했는데 정서적으로 채워지는 게 가장 마음에 들어요. 공동체라는 게 인간의 근원적 감성을 건드리는 거라서 사람들이 더 찾는 게 아닌가 싶어요.” 글·사진=송은아 기자 sea@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