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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토리 있고 파워풀… 무대 설 때마다 행복해요”

뮤지컬 ‘마틸다’ 아역배우 안소명·이지나·성지환

“하하하하”. 어린아이답게 연신 웃음보가 터졌다. 그러다가도 연기 얘기만 나오면 또박또박. 요즘 초등학생은 이리 똑똑한가 싶다. 최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뮤지컬 ‘마틸다’에서 마틸다를 연기하는 안소명·이지나(11)양과 나이젤을 맡은 성지환(13)군을 만났다. 초등학생 인터뷰가 잘될까 하던 염려는 기우였다. 세 배우는 사소한 단어 하나에 맑은 웃음을 터트리다가도 어느새 의젓한 배우로 돌아왔다. 배역 해석도 어른 못지않았다.
“‘마틸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뮤지컬이에요. 관객에게 마틸다처럼 당당하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그런데 마틸다가 항상 용감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슬픔도 있어요. 엄마, 아빠가 맨날 학대하잖아요. 겉으로 내보이지 않아도 속으로 슬플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해요.”(소명)

‘마틸다’는 집에서 구박당하는 천재소녀가 폭력적인 어른들의 세계에 맞서 ‘이건 옳지 않아’라며 저항하는 이야기다. 상상력 가득한 세련된 연출, 진보적인 메시지가 단연 돋보인다. 아역 배우들의 당찬 연기, 야무진 군무도 감탄을 자아낸다. 7차에 걸친 오디션, 충분한 연습으로 단련된 결과다. 그러나 연기의 길은 언제나 멀고 험난한 법. 이들이 꼽은 어려운 대목은 다양했다. 
뮤지컬 ‘마틸다’에 출연하는 아역 배우 이지나양, 성지환군, 안소명양(왼쪽부터). 초등학생답지 않은 말솜씨를 보인 이들에게 원래 말을 잘하는지 묻자 지나양, 지환군이 동시에 “소명이는 진짜 잘한다”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하상윤 기자
“도서관에서 펠프스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에서요. 저는 (대본을 읽어) 미리 알고 있는데도, 마틸다가 처음 말하는 것처럼 연기하려니 어려워요. 말도 또박또박 해야 해요. 발음이 잘 안 되면 ‘그랬습니다, 그랬습니다’만 들려서 관객이 ‘뭐라는 거지’ 할 테니까요.”(소명)

“저도 세 번째 도서관 신이 어려워요. 무대가 멋있고 화려한데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빵꾸’나는 거잖아요. 이때 같이 하는 손동작에 감정을 실어야 하는데, 마틸다는 자기 감정을 많이 들키지 않으려는 애거든요. 두 가지를 (동시에) 표현하기가 어려워요.”(지나)

“나이젤이 뒤에서 소리지르며 뛰어오는 신이 있어요. 들어가기 전에 제일 떨려요. 소리를 은근 길게 질러야 하거든요. 잘못하면 목이 나가버리니, 목이 잘 버텨줄지 걱정도 되고.”(지환)

나이는 어리지만 소명·지나양은 대극장 무대를 여럿 거쳤다. 지나양은 뮤지컬 ‘레미제라블’ ‘명성황후’ 등 5작품, 소명양은 ‘사운드 오브 뮤직’ ‘명성황후’ 등 4작품을 해봤다. 지환군은 태권도를 배우다 얼떨결에 오디션을 보고 지난겨울 ‘빌리 엘리어트’ 주역을 연기했다. 세 아이는 ‘마틸다’를 하며 배우로서 더 성장한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뮤지컬은 마틸다만큼 대본이 많진 않잖아요. 그러니 (‘마틸다’ 후에) 대본을 쉽게 외우게 됐어요. 또 마틸다를 하면서 제가 카멜레온이 된 것 같아요. 장면장면마다 다른 연기를 하니까요.”(소명)

“많은 사람 앞에 서보니, 더 무대에 익숙해지고 생각이 많아졌어요. 헤헤”(지나)

이들은 어른이 돼서도 뮤지컬 배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소명양은 “5학년 정도 되면 변성기가 오고, 여자 아역이 할 수 있는 역할도 많이 없어진다”며 “중학교도 가야 하고, 어릴 때 목을 다 써버리면 성인이 돼서 뮤지컬 배우를 못할 수 있으니 일단 쉬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환군은 “저는 되게 꿈이 많다”며 “뮤지컬 배우도 하고 싶고, 연출가, 음악감독도 되고 싶고, 크리에이터, 작곡가, 유튜버 다 하고 싶다”고 했다. 지나양도 뮤지컬을 계속할 생각이다.
뮤지컬 마틸다 아역배우 이지나. 하상윤 기자
“엄마는 니가 행복한 걸, 원하는 걸 찾으라고 하세요. 전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고 정했어요. 7살까지는 또래들처럼 ‘아아’ 하며 뛰놀았어요. 그런데 ‘레미제라블’을 해보니 너무 재밌는 거예요. 평소에는 놀기만 하고 바보되든가,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든가 둘 중 하나인데 뮤지컬 배우가 좋은 것 같아요. 화려해졌다 거지도 됐다가 무대에 빠져 살 수 있어요. 할머니 될 때까지 쭉 이어가고 싶어요. 전에는 가수나 아이돌을 많이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아니에요.”(지나)
뮤지컬 마틸다 아역배우 안소명. 하상윤 기자

아이돌 얘기가 나오자 세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소명 양은 “아이돌 노래는 사랑 이야기가 제일 많지 않으냐”고 했다.

“아이돌은 춤이 예쁘장하고 노래도 러블리한데, 뮤지컬은 노래도 동작도 파워풀하잖아요. 저는 뮤지컬 같은 동작을 추는 게 더 행복해요. 아이돌 노래는 ‘나는 너를 좋아한다, 고백했다, 차였다’식으로 한 장면만 있잖아요. 뮤지컬 노래들은 ‘힘들었는데 다시 용기를 얻고 그 사람에게 갈 거다’처럼 스토리가 여러 가지예요. 저는 여러 스토리를 갖고 노래하고 싶어요. 아이돌보다 뮤지컬이 좋아요.”(소명)

“뮤지컬은 연기, 노래, 춤에 안무도 하잖아요. 가수는 ‘노래 좋다’(는 반응인데), 뮤지컬은 ‘와 노래 잘한다’보다 스스로 빠져들어서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지나)
뮤지컬 마틸다 아역배우 성지환. 하상윤 기자

이들의 뮤지컬 사랑은 각별했다. 혹여 무대에서 조명이 꺼진 후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지 묻자 고개를 저었다.

“전 엄청 박수받는 것 때문에 뮤지컬을 한 게 아니거든요. 뮤지컬을 사랑하고 작품을 하면 행복하기 때문에, 제가 행복하기 위해서 해요. 무대가 없어졌을 때 사랑이나 박수가 그립기보다, 나의 행복이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요.”(소명)

“모르겠어요. 전 그냥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좋아요.”(지환)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