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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사건 피해자가 김치남?”… 일베·워마드 조롱 언제까지 방조할건가

[혐오의 파시즘-혐오 놀이터된 온라인①] 혐오 표출되는 온라인 커뮤니티들

“(서울) 강서구 PC방사건 피해자 시신(이) 유출됐다.”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으로 떠들썩했던 지난 20일 남성 혐오를 표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에 이같은 게시물이 올랐다. 먹다 남은 김치통 사진을 함께 올린 게시자는 “가해자가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줘서 먹기가 편했다”고 고인을 비하했다. 커뮤니티 회원들은 피해자가 남자라는 이유를 들어 게시물을 비난하기는커녕 동조하고 부추겼다. 해당 게시물엔 “시체가 다 유출됐다” “나눠먹자” “김치남”이라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이날 커뮤니티에 올라온 고인 비하 게시물은 수십건에 달았다.

지난 20일 워마드에 올라온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해자 비하 게시물.
워마드 홈페이지.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PC방 살인사건의 가해자 김성수(29)씨의 신상정보가 공개되기 전 “살인범 고향은 전라도” “조선족 사건일 확률이 높다” 등의 추측 글들이 오르기 시작했다. “PC방 살인자가 전라도 또는 조선족이었으면”이라는 글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특정지역과 특정인종을 혐오하기 위해 각종 억측을 쏟아냈다.

상당수 온라인 커뮤니티가 우리 사회의 큰 문제 가운데 하나인 혐오를 방조하거나 묵인,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표현의 자유’ 목표한다는 일베와 워마드…회원들 혐오 부추겨

25일 관계기관 등에 따르면 일베, 워마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 출처의 각종 혐오 게시물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를 막을 뚜렷한 대안은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심의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과도한 욕설, 패륜, 약자 비하 등 혐오 게시물 모니터링에 나서고 있지만 혐오를 방조하는 커뮤니티 분위기를 전환하기엔 역부족이다.

특히 일베, 워마드 등 커뮤니티는 혐오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전면에 내세우며 탄생했기 때문에 적극적인 자정작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베와 워마드의 탄생은 혐오 게시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에서 비롯한다. 2000년대 후반 디시인사이드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 사용자들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 고인 비하, 호남 지역 비하 등 혐오 게시물들이 운영자에 의해 지워지자 자신의 게시물을 저장할 새로운 커뮤니티를 원했다. 그렇게 탄생한 곳이 일베다. 일베는 디시에서 인기를 얻은 혐오 게시물들을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보호하다 결국 혐오 게시물을 탄생시키는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일간베스트저장소 홈페이지 캡처
워마드도 마찬가지다. 2016년 1월 개설된 워마드는 극단적 여성 우월주의와 남성 혐오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졌다. 워마드의 전신으로 알려진 커뮤니티 메갈리아 내부에서 ‘성 소수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자 워마드는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고 게이는 배격대상’이라는 논리를 가지고 독립해 탄생했다.

혐오를 정당화하며 탄생한 커뮤니티인 만큼 이를 부추기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일베에선 ‘일베로(추천)’, ‘민주화(비추천)’에 의해 상위노출 게시물이 정해지는데 추천을 받기위해 또는 인터넷용어로 ‘어그로’(관심)를 끌기 위해 일베 회원들은 자극적인 게시물을 공유한다. 워마드도 운영 강령에 ‘워마드는 여성운동단체가 아니며 소수인권은 챙기지 않고, 오직 여성만을 챙긴다. 또 이를 위해 도덕은 버린다’고 밝히며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커뮤니티 운영자들 “하급문화도 존재 가치”...‘혐오 방조’ 지적도

일베, 워마드 운영자는 자체적으로 법적으로 문제시되는 게시물을 삭제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도 회원 스스로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일베 운영자는 지난 2014년 한 언론사와의 서면인터뷰 자료를 공개하며 “흔히 일베저장소를 하급문화라고 표현한다”며 “사회에는 하급도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일베가 대중에 반감을 사는 이유에 대해서 “일베저장소에는 보수성향의 커뮤니티가 많지 않은 이유로 이런 콘텐츠가 집중되어 비교적 많이 게재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과거 억눌림에 대한 표출이든 단순한 장난이든 운영진과 회원들 스스로 조금씩 정화해 나가야 할 숙제”라고 답했다.

워마드 역시 지난 8월 경찰이 음란물 유포방조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하자 커뮤니티에 관련 입장을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 법령에 맞춰 명예훼손, 모욕 음란물에 해당하면 삭제해왔고, 미처 발견하지 못해 남아있는 게시물은 있을 수 있으나 고의로 방치한 게시물은 없다”고 항변했다. 이어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에게 요구되는 것을 다 해야 하는지도 의문인데 일단은 지키고 있다”며 수익을 창출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들이 음란물 등 불법적인 게시물을 자체적으로 검열하고 있다고 항변하지만 법정 제재에 걸리지 않는 욕설을 비롯한 혐오 게시물들은 여전히 제재 없이 게시돼 또다른 혐오를 재생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지난 3월 일베 폐지에 관한 청와대 답변에서 “최근 5년간 차별이나 비하 내용으로 문제가 되어 심의 후 삭제 등 조치된 게시물 현황을 보면 2013년 이후 제재 건수가 가장 많은 사이트가 일베”라며 “2013년 이후 2016년에만 2위로 밀렸을 뿐 거의 해마다 1위 제재 대상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워마드도 ‘성체훼손’, ‘불법 촬영’ 게시물을 방조하는 등 연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방통위 일베나 워마드 폐쇄 못해…혐오게시물은 2배 늘어

방송통신위원회는 일베, 워마드 등 사이트의 전체 게시물 중 불법정보가 70%에 달하면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접속을 차단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많은 글이 올라오는 커뮤니티 특성상 불법정보가 70%를 넘어서는지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있다. 대신 방심위는 사이트에 올라온 불법, 유해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심의한 뒤 사업자 측에 삭제를 요구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런 시정조치에도 혐오 게시물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지난 21일 방심위 측으로부터 제출받은 ‘일베 시정유구 현황’에 따르면 올해 일베 게시물 삭제건수는 지난해 두배가 넘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삭제건수는 1417건으로 지난해 한 해 674건의 두배를 넘었다. 삭제된 게시물 중 1349건은 차별, 비하, 욕설, 혐오 등을 담은 유해정보였다.

박 의원은 이날 “증오, 혐오 범죄를 유발하는 불법 콘텐츠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행위”라며 “방심위는 관련 콘텐츠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도 23일 국정감사대책회의 겸 원내대책회의에서 “"혐오가 오락이 된 사회에서 일베와 워마드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갈 수밖에 없다”며 “이대로라면 국가의 건강한 미래가 걱정될 정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부는 무엇보다 혐오가 지배하는 사회를 경계해야 한다”며 “약자에 대한 과도한 혐오 표출, 국민 불안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