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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라이프] 코트 누비던 서브퀸, 바리스타로 ‘인생 2세트’ 휘슬

커피와 사랑에 빠진 전 국가대표 배구선수 백목화

 

“또 하루 멀어져 간다…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가수 고(故) 김광석의 명곡 ‘서른 즈음에’의 한 구절이다. 김광석은 많고 많은 나이 중 왜 하필 서른에 대해 아쉬워하며 이 곡을 불렀던 걸까.

아마도 누구나 서른쯤에 인생을 곱씹어보기 때문이 아닐까. 그 반추를 통해 남겨진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기 때문이 아닐까.

억대 연봉을 받던 국가대표 배구선수 출신 백목화(28)씨도 서른을 앞두고 인생을 곱씹은 끝에 전혀 다른 삶의 출발선에 섰다.

배구선수의 삶을 살아온 백씨는 인생 후반을 커피 바리스타로 살기로 하고 매일 커피를 볶고 있다. ‘서브퀸’에서 ‘커피퀸’으로 삶의 궤도를 급하게 돌린 셈이다.

백목화는 어떻게 인생을 곱씹었길래 이렇게도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려가는 걸까. 그녀를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북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생의 1세트였던 배구, 100% 노력했기에 후회는 없다”

백목화의 배구 인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됐다. 백목화는 세 자매 중 둘째다. 세 자매 가운데 언니는 4월에 태어나 ‘목련’, 8살 터울의 5월에 태어난 막내는 ‘수련’, 8월에 태어난 그녀는 ‘목화’다. 백목화는 “체육교사 출신인 아버지가 딸 둘일 때는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막둥이가 태어나니 언니와 나 둘 중에 하나를 운동을 시키고 싶어했다”며 “초등학교 시절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컸고, 아버지가 중학교 배구 감독을 맡으셨기 때문에 자연스레 배구를 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인 전남 순천에 배구를 배울 학교가 없어 광주로 전학을 갔다. 광주 송원여중과 송원여상을 거친 백목화는 2007년 현대건설에 2라운드로 입단했다. 현대건설 입단 동기가 현재 프로배구 최고의 센터로 꼽히는 양효진이다.

하지만 백목화의 프로 첫 시즌은 코트보다는 벤치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다. 한 시즌 만에 FA(자유계약선수) 보상선수로 KGC인삼공사로 이적을 받아들여야 했다.

KGC인삼공사에서도 처음 선배들에 밀려 코트와 벤치를 오가는 신세였다가 2012~13 V-리그부터 본격 주전을 꿰찼다. 당시 인삼공사는 2011~12시즌 우승의 주역이던 베테랑들이 대거 은퇴하는 상황과 맞물려 팀의 중심으로 거듭난 것이다.

백목화는 여기에 외국인 선수가 부상으로 1경기도 뛰지 않는 바람에 주전을 넘어 팀의 주포로 활약하게 됐다. 배구인생에 전환점이 온 것이다. 그는 “당시 연패로 팀엔 패배의식이 자리 잡아 힘들었지만 매일 코트 위에 설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팀 동료들과 ‘오늘은 연패를 끊자, 지지 말자’고 단합하며 뛰었다”고 회고했다.

백목화는 2012~13 V-리그에서 득점 7위(412점), 공격성공률 8위(36.57%)에 오르며 어엿한 한 팀의 에이스로 성장했고 시즌 뒤 기량발전상을 수상했다.

코트 위의 백목화를 빛나게 해준 ‘필살기’는 뭐니뭐니해도 서브였다. 머리를 휘날리며 코트 끝에서 종종걸음으로 예열한 뒤 곧바로 뛰어올라 쏘아올리는 그녀의 강서브 앞에 상대 리시버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2012~13시즌 서브 3위(세트당 0.505개)에 오른 백목화는 2013~14시즌에는 내로라하는 외국인 선수들을 제치고 마침내 서브퀸(세트당 0.461개)에도 올랐다.

은퇴한 지금도 백목화는 V-리그 여자부 통산 서브 6위(202개)에 올라 있다. 백목화는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상이 서브상”이라며 “빈자리를 노리기보다는 상대 리시버 중 리시브가 취약한 상대를 보고 때리는 스타일인데, 구질도 너무 감겨 들어가면 툭 받아올리기 쉽기 때문에 반쯤 감겨 들어가도록 연습을 많이 한 게 주효했다”고 노하우를 살짝 공개했다.

최고의 한 해를 보낸 2012~13시즌 뒤 첫 FA 자격을 얻은 백목화는 KGC인삼공사와 9000만원에 재계약을 했다. 이후 연봉이 오르며 억대 연봉자 반열에 올랐다. 팀의 토종 주포 역할을 해내며 KGC인삼공사의 간판선수로 활약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국가대표의 일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프로배구 선수에서 바리스타로 새 인생을 시작한 백목화씨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북촌의 한 카페에서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다.
이재문 기자
2015~16시즌을 마치고 두 번째 FA계약을 맞은 백목화는 돌연 프로 은퇴를 선택했다. 이유가 뭘까.

프로배구 FA계약은 1차(열흘간 원소속팀과 협상)-2차(열흘간 원소속팀 제외 타 구단과 협상)-3차(열흘간 원소속팀과 협상)로 나뉜다. KGC인삼공사는 백목화에게 1차 협상 때 이렇다 할 조건도 제시하지 않고 시장 평가를 받아보라며 협상 테이블을 접었다.

백목화는 “8년간 헌신하며 뛰었던 팀인데 그런 대우를 받으니 인간적으로 섭섭하더라. 2차 때 타 구단에서 오퍼가 오지는 않을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다”고 회고했다. 그는 3차 협상 때 구단이 조건을 제시하기 전에 먼저 ‘그만두겠다’고 했다. 프로무대를 은퇴한 백목화는 이후 실업팀 대구시청에 입단했다가 지난 1월 완전히 코트를 떠났다.

‘인생 1세트’를 배구에 바친 백목화가 스스로 매기는 첫 스코어는 얼마일까. “25-23의 짜릿한 승리라고 하고 싶어요. 일찍 그만두긴 했지만. (양)효진이도 ‘너만큼도 못하고 떠난 사람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은퇴한다고 기사 한 줄은 나간 선수기도 했고요.(웃음)”

◆“인생의 2세트, 커피가 주는 여유로움에 빠지다”

백목화는 실업팀에서 배구를 하다가 새로운 길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그는 당시 “이대로 가다간 배구만 하다가 결혼을 할 것 같았다.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 무언가 새로운 길을 밟고 싶다”고 생각했다.

백목화는 미련 없이 배구를 그만두고는 이내 커피를 새 인생의 키워드로 삼게 됐다. 아직 순천에 사는 그의 부모는 지금도 운동과 관련된 일을 하라고 권유한다. 그래도 그는 “내가 직접 운영하는 카페를 차리는 게 새 목표”라고 단호히 말한다.

왜 바리스타였을까. 백목화는 2016년 10월 전국체전을 마친 뒤 한 달간 유럽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탈리아 남부에서 ‘인생 커피’로 꼽을 만한 카푸치노를 마셨다. 그는 그때 커피를 볶는 바리스타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백목화는 선수시절 틈틈이 공부를 해 이미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어쩌면 선수 은퇴 뒤의 진로를 이미 선수시절에 정해 놓은 셈이다. 그는 훈련이 없던 수요일 오후마다 학원에 가 커피 공부를 했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훈련에 지치기도 했던 내게 커피 공부는 정말 즐거웠다”고 말했다.
“배구선수로서 최선을 다 했기에 후회는 없다”는 백씨는 “5년 뒤쯤 내 이름을 딴 카페를 차려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밝게 말했다.
이재문 기자
커피는 승부사 백목화에게 잠시 여유를 가져다주는 음료였다. 선수시절은 숙소-훈련장-경기장의 반복이어서다. 그는 외출만 받으면 무조건 카페에 갔다. 그는 “커피를 좋아했지만 하릴없이 카페에 앉아 있는 것도 좋아했다”고 말했다. 커피와 카페는 ‘힐링’이었고 일종의 안식처와 도피처였던 셈이다.

백목화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만 다니던 선수시절과 달리 이제는 커피의 깊은 맛을 알아가고 있다. 쉬는 날이면 서울 각지의 커피 맛집을 찾아다닌다. 그는 “이왕 커피 공부를 제대로 할 거면 서울에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서울로 올라와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은 끝에 북촌의 카페에 취업했다”고 말했다.

순천과 광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선수생활은 대전에서 했던 백목화는 서울살이가 마냥 신기하다고 한다. 자취생활이 아직은 재밌단다. 백목화는 “서울에서 사는 것 다 재밌고 좋은 데 딱 하나, 추위는 적응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선수시절 억대 연봉을 받던 백목화가 이제 한 달에 쥐는 돈은 200만원 남짓. 그래서 또래의 평범한 여성들처럼 ‘주머니 걱정’을 한다. 그는 “처음엔 ‘나 너무 궁상맞나’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원래 다 그렇게 살아’라고 핀잔을 주더라”며 “지금은 씀씀이가 크게 줄었다”고 웃었다.

미래에 차릴 카페에 대해 물었다. 백목화는 “작지만 손님들과 여유를 함께 즐기면서 사는 얘기도 하는 ‘사람 냄새’나는 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말했다.

목화의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 백목화는 서른을 넘긴 5년 뒤의 자신에 대해 “한 남자의 아내,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겠죠?”라고 되묻고 밝게 웃었다. 목화꽃이 함빡 쏟아지는 듯했다.

“그때는 제 이름의 꽃말처럼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따뜻하고 향긋한 커피를 팔고 있을 것 같아요. 그때를 위해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 제게 서른은 또 다른 잔치의 시작입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백목화는

△생년월일 : 1989년 8월 30일 △출신학교:송원초-송원여중-송원여상 △포지션:레프트, 라이트 △신체조건:신장 176cm, 체중 62kg 

△프로 경력
●수원 현대건설 그린폭스(2007~2008.6)●대전KGC인삼공사 (2008.6~2016.5)●대구광역시청 (2016~2017)

△주요 수상 경력
●2012∼13 V-리그 기량발전상
●2013∼14 V-리그 여자부 서브 1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통산 기록
●1774득점(통산 19위) 블로킹 274개, 서브득점 202개(통산 6위), 공격성공률 3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