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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이 미래다 - 그린 라이프] “농식품부는 농산물·교육부는 급식… ‘따로 식품정책’ 통합을”

KREI, 안심 먹거리 위한 토론회… 국가 차원 ‘푸드플랜’ 제안

바야흐로 먹거리 풍요의 시대다. 초근목피로 죽을 쑤어 근근이 배고픔을 견뎌낸 때가 한 세기가 지나지 않은 지금, 대부분의 우리는 어느덧 점심 메뉴를 고민하며 포만감은 그리 낯설지 않다고 느낀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쌀 소비량이 급격히 줄어 매년 쌀이 남아 도는 일이 반복되고 있으며, 단순히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먹기보다는 더 건강한 음식을 먹기 위해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식의 소비행태도 흔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민 소득의 증가, 삶의 질을 중시하는 풍조 등과 더불어 식품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풍요에는 독(毒)도 있다. 자발적인 결식(다이어트, 아침식사 결식 등)이나 폭식 등과 같은 잘못된 식생활로 영양 불균형이 확대되면서 비만인구가 크게 늘고 이로 인한 각종 질병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조류인플루엔자(AI)나 구제역과 같은 가축전염병으로 인한 식품의 안전성 문제를 비롯해 방사능, 유전자변형식품(GMO) 등 외국 농산물 관련 이슈들도 밥상의 잠재적 위협으로 올라선 지 오래다. 소득수준 등에 따른 영양 섭취 불균형 문제도 현재진행형이다.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국가적 차원의 먹거리 전략(푸드 플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 생산·공급체계를 위한 국가 차원의 먹거리 전략 수립’을 내놓은 뒤 논의는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안전, 안심 먹거리를 위한 새 정부 정책과제’를 주제로 이슈토론회를 열고 우리 사회의 식품 소비 구조와 트렌트를 진단하고 국가 푸드플랜의 필요성 및 추진방향을 제안했다.

◆“영양·건강 정책, 먹거리 정책과 통합해 추진돼야”

이계임 KREI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주제발표를 통해 “경제·사회·인구 등과 같은 대내외적 여건 변화로 소비자의 식품소비행태와 식생활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하지만 식품시장에서는 소비자 지향적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잘못된 식습관이 확대돼 식생활 관련 질병도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잘못된 식습관의 변화로는 아침식사 결식률 증가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15년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아침식사 결식률은 2005년 19.9%에서 2015년 24.1%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19∼29세의 아침식사 결식률은 2015년 기준 49.1%로 절반 가량이 아침을 먹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2∼18세의 아침식사 결식률은 2005년 23.8%에서 2015년 32.6%, 같은 기간 30∼49세는 20.6%에서 29.1%로 결식률이 빠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만율 역시 1998년 26%에서 2015년 34.1%로 증가 추세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식생활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규칙적인 식사와 아침식사 섭취가 비만 및 대사증후군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에 따른 식생활 교육과 지원제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전체 인구의 8.5%가 영양섭취가 부족한 상태이며 이 중 12∼18세의 비중이 16.7%로 가장 높은 점, 동 지역 거주자보다는 읍면지역 거주자와 소득이 낮은 계층의 영양부족자 비중이 높은 점 등 영양 불균형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도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국민의 식생활 및 영양과 관련한 정책은 다소 미흡하고 일관성도 떨어지는 실정이다. 부처별로 관련 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나 일부 영역에 국한되거나 중복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이 이 선임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농림축산식품부가 식품의 생산과 유통, 해양수산부는 수산식품의 생산과 유통, 보건복지부는 국민영양조사 및 교육, 교육부는 학교 급식 관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위생 안전, 영양관리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경계가 모호하거나 중복되는 부분이 적잖다. 부처별 관련된 법의 경우에도 농식품부는 식생활교육지원법, 보건복지부는 국민영양관리법, 국민건강증진법, 식약처는 어린이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 등과 같이 산재해 있는 모습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식품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부문 간 상호 관련성과 영향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며 “부처 간 역할분담이 어렵고 업무가 중복돼 효율적인 추진도 곤란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 영양섭취와 건강상태는 식품 생산, 가공, 분배, 이용과 직접 관련되므로 영양·건강정책은 먹거리 정책과 연계해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면서 “국민 식생활·영양을 총괄하기 위한 법률안을 마련하는 한편 식품영양 및 식생활 정책의 주무 부처로 농식품부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등 부처 간 역할을 명확히 하고 상호 연계 및 협업이 가능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관 통합거버넌스 체계 구축 필요”

최지현 KREI 선임연구위원 역시 이날 ‘국가 푸드플랜의 필요성과 추진 과제’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우리나라는 식품 정책 간의 높은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개별 부처 간 협조 및 조정이 미흡해 종합적 성과 창출에 한계를 가져왔다”며 “개별 부처의 노력만으로는 정책효과를 높이기 힘든 만큼 먹거리에 대한 통합적인 관점으로 국가 푸드플랜의 수립과 통합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학교급식에서 ‘최저가 입찰제’를 도입해 좋은 식재료의 소비 촉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 나트륨 및 당류 저감화 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김치 등 전통식문화의 위축되고 있는 점 등을 지적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푸드플랜의 목표는 국민 먹거리 만족도 제고, 먹거리 관련 사회적 비용 최소화, 우리 농식품의 생산 및 소비 연계 활성화로 설정하고, 민·관, 관·관 협치를 전제로 개별 주제보다는 시스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우선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논의가 이뤄져야 하고, 농어업특별위원회의 하위 분과에 민관이 합동으로 참여하는 ‘국가식품정책위원회(가칭)’를 설치하는 등의 통합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 식품관련 이슈와 정책을 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