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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촛불집회로 성숙한 시민문화…구시대적인 韓 직장문화

최근 한국사회의 돌아가는 상황들을 보면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하게 느끼곤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리더의 중요성을 가장 잘 느끼게 되는 장소는 아마도 직장일 것입니다. 어떤 리더,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직장생활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직장문화는 위계질서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상사와 부하의 관계를 상하관계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합니다. 그렇다보니 만성적인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은 직장 내 스트레스의 근원으로 직장 상사를 꼽습니다. 개인과 조직의 성과를 관리 감독하는 것은 물론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직장상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상사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들어 직장상사의 소통과 섬김의 자세를 강조하는 변혁적 리더십과 서번트(섬김) 리더십이 관심을 모으는 이유일 것입니다.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리더십은 ‘변혁적 리더십’이었지만, 가능하다고 보는 리더십은 ‘거래적 리더십’이었다.

내 직장상사는 부하직원을 상하관계로 인식한다는 데 절반 가량의 직장인이 동의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직급제 폐지에 회의적이었으며 82%가 직급이 없어져도 또 다른 위계질서 생겨날 것이라고 답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직장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리더십 유형과 직급체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많은 직장인들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리더의 모습과 실제 매일 마주치는 직장상사의 모습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직장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리더십의 유형은 변혁적 리더십이었다. 직원들에게 최대한 자율권을 부여하고, 정서적인 소통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리더십인 ‘변혁적 리더십’은 특히 남성과 30대 이상 직장인의 선호도가 높았다.

이와 함께 서번트 리더십을 선호하는 직장인들도 많은 편이었다. 변혁적인 리더십과 대체로 유사하지만, 방향이나 미션을 리더가 제시하는 변혁적 리더십과는 달리 조직구성원들과의 의견과 토론을 통해 함께 만들어가는 서번트 리더십은 50대에게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결국 변혁적 리더십이든, 서번트 리더십이든, 상당수 직장인들이 직장 내에서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중시하고, 부하직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리더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보상과 처벌을 활용해 개인과 조직의 성과를 극대화하는 유형의 거래적 리더십을 선호하는 직장인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직장인들이 자신의 회사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리더십의 형태도 △변혁적 리더십(39.8%) △서번트 리더십(35.4%) △거래적 리더십(12.8%) 순이었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리더십으로는 변혁적 리더십(29.2%)과 서번트 리더십(15.6%)보다 거래적 리더십(41.2%)을 꼽는 직장인들이 훨씬 많았다. 아무래도 뚜렷한 이익과 성과를 얻는 것을 지상과제로 생각하는 조직문화의 여건상 거래적 리더십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직장인들이 많은 것으로 보여진다.

◆직장인들 "직장상사, 부하직원과의 관계 수직적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은 실제 현실에서 쉽게 찾아보기는 어려운 듯 보였다. 먼저 자신의 직장상사가 평소 어떤 일들을 달성해야 하는지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중요한 가치관이나 신념을 자주 이야기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 직장인들은 전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변혁적, 서번트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원활한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10명 중 4명만이 직장상사가 자신의 능력과 자신감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으며, 미래에 대해 아주 낙관적으로 이야기하는 편이라고 직장상사를 바라보는 직장인들도 적은 수준에 머물렀다. 전체 33.4%만이 자신의 직장상사가 직원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리더의 기본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느끼는 것도 주목해볼 만한 결과다.

한국사회에서 부하직원을 동등하게 생각하고, 섬김의 자세로 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직장상사가 많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런 리더십을 일컫는 ‘서번트 리더십’의 구현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30대 직장인의 동의율이 가장 낮았다. 직장상사가 내가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도움을 주고, 회사 내에서 직원간의 공동체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하는 직장인들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회사에서 매일 함께 생활하는 직장상사에 대한 생각은 그리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우선 자신의 직속상사가 부하직원과의 관계를 주종관계 또는 상하관계로 인식한다는 의견과 그렇지 않다는 의견을 가진 직장인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요즘, 어느 누구든 수직적인 관계에 길들여진 직장상사를 만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다만 연령이 낮을수록 자신의 직속 상사가 부하직원과의 관계를 상하관계로 인식한다는 의견이 적다는 점에서 조금이나마 직장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만들었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는다면 기꺼이 나를 방어하려 할 것이며, 사소한 실수를 저질렀을 때 기꺼이 나를 보호할 것이라고 직장상사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의견이 대체로 엇갈렸다.

다만 직속상사가 부하직원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고,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때 책임을 부하직원에게 전가하거나 방관한다고 생각하는 직장인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직장상사와의 관계를 개인적인 관계로 확장시키려는 직장인도 별로 없었다. 전체 10명 중 3명 정도만 인간적으로 직속 상사를 매우 좋아한다고 밝혔으며, 직장상사와 같이 일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고, 친구로 사귀고 싶은 사람 중 하나라는 평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10명중 8명 "사내 직급이 없어져도 또 다른 위계질서 생겨날 것"

최근 일부 대기업들이 수평적 기업문화를 만들려는 목적으로 직급제를 폐지하고 있는 가운데, 아직까지는 직급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폐지를 해도 위계질서는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직장인들이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직장인의 48.1%가 회사에서는 직급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비해 동의하지 않는 의견은 31.5%로, 직급제의 유지를 찬성하는 직장인들이 좀 더 많은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회사에 직급이 꼭 있어야 한다는 의견은 여성보다는 남성이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연령별로는 20~40대가 50대보다 직급의 필요성을 좀 더 많이 느끼는 편이었다.

직급별로는 실무진의 직급이 높을수록 직급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많이 내비쳤다. 회사에 직급이 없어진다면 그에 따른 책임감도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이에 동의하지 않는 직장인보다 많은 것도 아직은 직급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또한 직장인의 82%는 직급이 없어진다고 해도 나이나 근무연한 등으로 인해 또 다른 형태의 위계질서가 생겨날 것이라고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사회에 이미 위계질서가 깊숙하게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에 차라리 직급제가 유지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직장인 대부분이 수직적인 직장생활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직장인의 88.2%가 직장상사가 나에게 지시한 일을 깔끔하게 잘 처리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응답했으며,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데 10명 중 8명이 의견을 함께 했다.

회사나 상사가 시키는 일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두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회사 일이란 스스로 만족하는 것보다는 주변 사람의 평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강한 것도 수직적·수동적인 직장생활에 익숙한 직장인들이 많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다만 프로젝트 단위로는 부하직원들도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은 많았다. 직장인의 75.3%가 사원이나 대리급이라고 해도 프로젝트를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현재 사원 및 대리·주임)의 이런 의견이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일을 기획하고 프로젝트를 만들고 이끄는 것을 선호한다는 의견은 44%로 적은 수준이었다. 직장문화에 대한 생각과 실제 개인의 행동에는 상당한 온도 차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로, 특히 앞서 사원이나 대리급도 프로젝트의 리더가 될 수 있다는데 가장 많이 동의한 사원과 대리·주임의 경우 앞장 사서 일을 기획하고,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의견이 각각 27.5%, 40.6%에 불과했다.

◆회사에서의 인간관계 vs 개인적인 인간관계 구분해야

한편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회사 내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직장생활과 개인생활의 인간관계를 구분하려는 성향이 강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직장인의 84.5%가 현재의 내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함께 일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에 동의하는 직장인들도 76.5%에 이르렀다.

직장동료 및 선후배와 조화로운 관계를 맺고 있어야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 큰 것으로, 특히 연령이 높아질수록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강조하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할 필요성을 많이 느끼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런 직장생활에서의 관계를 사적인 영역으로 바라보지는 않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직장인의 65.9%가 회사에서의 인간관계와 개인적인 인간관계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다른 연령에 비해 30대 직장인이 직장과 개인의 인간관계를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다.

또한 회사에 개인적으로 친구하고 싶은 동료가 있다는 데는 절반 이상이 동의했지만,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이 많거나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친구가 있다는 직장인은 적은 편이었다. 직장인 10명 중 3명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회사에서 맺은 인간관계는 정리할 것이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