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내적 긴장 놓을 수 없어…'주름' 개작 아직 진행중" 육군간부·가족 대상 강연 앞두고 인터뷰 입력 2015-07-24 10:48:52, 수정 2015-07-24 11:10:36 ![]() 박씨는 "내적인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논산행을 결정했다. 대학 교수직에서 정년퇴직하고 난 어느 날, 집 서재에 가득한 책을 봤다. '그럴듯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 여유가 오히려 불안으로 다가왔다. 곧이어 가족과 헤어져 혼자 논산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박씨를 지난 23일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만났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육군본부의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업무협약을 기념해 열린 작가의 북 콘서트를 앞두고 있었다. ![]() 논산은 작가가 가난하고 방황하던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다. 성인이 돼 고향을 떠날 때는 미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일흔 가까운 나이에 돌아간 고향에는 금세 애정이 생겼다. 논산에서의 소회를 적은 산문 '논산일기'를 연재했고 2013년작 장편 '소금'은 논산을 배경으로 했다. 그는 "작가는 내적인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데 안전한 일상, 안정된 생활공간에서는 그게 잘 안 된다"며 "논산에서는 밥도 내가 혼자 해야 하는 불편함, 긴장이 작품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씨는 올해 2월부터 출판사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장편 '꽃잎보다 붉던'을 연재해 이달 10일 완결했다. 소설은 70대 후반 부부가 치매에 걸려 함께 죽어가는 사랑 이야기이며 10월에 책으로 출간 예정이다. 그에게 이 작품의 영감을 준 것은 가수 최백호의 노래 '길 위에서'다. "긴 꿈이었을까 저 아득한 세월이 거친 바람 속을 참 오래도 걸었네"라는 가사에서 감명을 받고 남자 주인공 이름은 '호백'이라고 지었다. 그는 "치매를 앓는 이웃 분도 계셨고, '우리에게 불멸은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작품을 쓰게 됐다"며 "노인 이야기를 자주 쓰는 것은 내가 노인이 다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다작하는 작가에 속한다. 1993년 절필을 선언하고 3년간 집필을 중단한 것을 빼놓고는 글 쓰는 것을 쉰 적이 거의 없다. 최근에는 1999년 출간한 장편 '침묵의 집'을 개작한 '주름'을 한 차례 더 개작해 펴냈다. 2006년 첫 개작 당시 분량을 원고지 2천600장에서 1천500장으로 대폭 줄이고 제목을 바꾼 데 이어, 두 번째 개작에서는 결정적인 장면의 서술을 일부 바꾸고 분량을 300여장 더 줄였다. 책은 개발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명령에 따라 평생을 산 남자 주인공 김진영이 여성 시인 천예린을 만나면서 자기 파멸로 인생을 몰고 가는 이야기다. 작가는 이미 대폭 줄인 이 소설의 문장을 더 쳐내서 7∼8년 뒤에는 현재의 절반 길이로 만들겠다고 했다. 수사가 너무 많고 감정이 과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작품을 한 번 쓰면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는 그가 '주름' 개작에 공을 들인 이유는 이 작품이 '은교', '촐라체', '고산자' 등 그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이른바 '갈망 3부작'의 효시라고 보기 때문이다. 박씨는 "어떤 초월적인 것에 대한 욕망, 삶의 유한성에 대한 슬픔, 존재론적 주제에 대한 관심이 생긴 '갈망기'가 '주름'을 씀으로써 열렸던 것 같다"며 "'소금'의 남자 주인공도 '주름'의 주인공과 매우 닮은 인생을 살고, '은교'의 이적요도 '주름' 주인공의 다른 버전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특히나 사랑한 소설 3편이 '주름',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더러운 책상'인데 오히려 이 3권이 가장 안 팔렸다"면서 "'뭔가 잘못됐나'하는 심리적인 이유도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신경숙 소설가의 표절 논란에 대해서는 "작가는 단독자로 살아가는 것이지, 다른 작가에 대해서 감 뇌라 배 놔라 비판할 마음이 없다. 문제가 된 작품을 모두 보고 확인해야 말을 할 수 있다"면서 말을 아꼈다. 작가는 이날 군 간부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사랑과 시적 감수성은 모두가 하늘로부터 공평하게 부여받는 것"이라며 "군대의 역사에서 가장 뜨겁게 자기 역할을 감당해낸 이순신, 유관순, 잔 다르크의 생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시인처럼 살았다. 군인도 시인의 파토스적 정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