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이야기가 됐다가 때론 시가 됐다가… 황정은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 입력 2014-11-06 16:58:58, 수정 2014-11-06 20:11:25 돌아보면 한 번도 이야기가 각광받지 않던 시대는 없었다. 이야기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세헤라자드의 목소리에 실려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세월의 장강대하를 흘러 바람에 날리면서 쉼 없이 ‘계속해’ 왔다. 제아무리 디지털문명시대라지만 그 디지털도 정작 이야기가 없으면 외면당하는 허당이다. 돌고 도는 비슷한 이야기이지만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다시 독자와 대중은 열광하고 눈물짓는다. 인생 자체가 돌고 도는 것이어서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어느 시각에서 어떤 태도로 무슨 이야기를 포착하느냐에 따라 늘 새롭고 다를 수밖에 없다. 신선한 화법으로 서사를 노래하는 작가 황정은(38)이 새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창비)를 펴냈다. 돌고 도는 핍진한 현실의 이야기를 새롭게 전달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소라와 나나의 엄마 이름은 애자다. 사랑 애(愛)가 들어간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네는 “그 이름 그대로 사랑으로 가득하고 사랑으로 넘쳤다.” 그 사랑으로 가득찬 여자의 남편, 소라와 나나의 아버지 금주씨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거대한 톱니바퀴에 말려들어 형체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애자는 살아 있어도 이미 그때 죽었다. 정신줄을 놓아버린 어미 대신 반지하 세상 옆집 순자씨가 이들 자매의 도시락을 싸주면서 거둬먹였다.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은 가난한 자들 연민의 연대였다. 그 순자씨 아들이 나기인데, 이 남자는 나나의 간절한 구애에도 불구하고 홀로 일본으로 떠나갔다가 송곳니가 빠진 채 추레한 형색으로 돌아와 식당을 연다. 이 남자의 지독한 사랑은 남자였다. ![]() 황정은의 진술 형식은 툭툭 던지고 뒤로 돌아 자신이 던진 말을 받아내 돌아서서 껴안는 듯한 인상이다. 외롭고 시적인 대목에서는 단어 하나, 혹은 짧은 문장 하나 뒤로 바로 행갈이를 해서 시처럼 한쪽 가까이 메워버린다. 다시 이야기가 동하면 조근조근 풀어가는데, 그러다가 슬퍼지거나 고통스러우면 다시 시처럼 서사를 풀어버리는 방식이다. “외롭지 하나뿐이니까 하나뿐! 피 빠는 파리 같은 게 들끓는 정글 같은 곳에서 하나뿐인 씨발 원주민처럼 나는 하나뿐. 너는 아니냐? 공평하게 너도 하나뿐인데? 괜찮아. 공평하게 괜찮지 않아? 모두가 공평하게 하나뿐이니까. 하나뿐이야. 하나뿐이라는 이름의 부족. 하나뿐으로 사라질 뿐이다. 그뿐이다. 너도 나도 결국은 이렇게 하나뿐이라는 부족으로 엎어지는 존나….” 나기가 사랑했던 남자인 ‘너’가 나기의 송곳니를 부러뜨리며 통곡처럼 내뱉는 외로운 대사. 황정은은 소라와 나나와 나기의 서사를 빌려 인간은 결국 멸종할 종인데, 그 멸종의 시간은 천만년 정도여서 서서히 멸종하기 때문에, 망하려 해도 쉬 망해지지 않은 이 세상을 견디며 살아낼 수밖에 없다고 시처럼 설파한다. 작가의 말도 없고 해설도 없고 책날개에 약력도 없다. 스카프로 목을 깊이 감싼 작가의 얼굴 사진만 덜렁 있다. 황정은 서사의 춥고 따스한 썰렁함과 썩 어울린다. 그네는 이번 소설 마지막에 썼다, 계속해보겠다고.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계속해보겠습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