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정치변혁의 무대… 법정서 바라본 세계사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부터 英 ‘독불 군주’ 찰스 1세 재판 등 동서고금 ‘세기의 판결’들 소개 입력 2014-06-06 16:41:27, 수정 2014-06-06 19:42:32  | L 레너드 케스터·사이먼 정 지음/현암사/2만원 | 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 31/L 레너드 케스터·사이먼 정 지음/현암사/2만원
법의 붕괴는 곧 공동체의 붕괴다. 사회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합의, 구성원이 강제성을 부여한 약속의 총합이 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판은 공동체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는 과정이며, 그 결과인 판결은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신념이 변화에 직면했음을 보여주는, 혹은 오랜 세월 지킨 약속이 달라졌음을 증명하는 판단들이다. 마땅히 법의 충실한 반영이어야 할 것이나 그렇지 못해 큰 실망을 안기기도 하는 것이 판결이다. ‘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 31’과 ‘신들을 위한 여름’은 그런 판결의 내용과 의미를 짚는다.
먼저 ‘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 31’은 동서고금의 결정적 판결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가장 오랜된 것은 기원전 399년 아테네에서 열린 소크라테스 재판, 가장 최근의 것은 2011년 일본 벤처기업인 호리에 다카후미에 대한 판결이다. 31개의 결정적 판결을 ‘권력투쟁과 정치공작의 무대’, ‘생각을 심판하다’, ‘자본주의 규칙을 발칵 뒤집은 판결들’ 등 8개의 작은 주제로 나눴다.
첫머리에 올린 ‘제왕의 목을 자른 판결들’의 주인공은 처형된 왕이다. 사형대 위에 나뒹구는 왕의 잘린 머리는 수천년을 이어 온 왕정의 몰락을 의미했다. .
찰스 1세를 피고인으로 한 1649년 1월의 재판은 영국 정치체제 변혁을 상징했다. 군자금 조달을 두고 벌어진 찰스 1세와 의회의 대립은 내전으로 치달았다. 전쟁은 의회파의 승리로 끝났지만, 왕당파의 공세가 이어졌다. 의회파의 선택은 전대미문의 것이었다. 왕당파의 구심점인 왕을 법정에 세우기로 한 것. 가장 존엄한 존재인 왕을 재판한다는 것은 수천년 이어온 왕정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었다. 찰스 1세는 “1000년 동안 세습된 왕의 지위”를 근거로 부당성을 따졌지만 재판부는 “폭군, 반역자, 살인자이자 공공의 적으로 판정하여” 사형을 선고했다. 책은 찰스 1세 처형 이후 왕정과 공화정을 혼란스럽게 오가던 영국 정치체제가 “‘명예혁명’을 거쳐 국왕의 권력은 대폭 축소되고 대의민주주의가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 에드워드 J 라손 지음/한유정 옮김/글항아리/2만3000원 | 신들을 위한 여름/에드워드 J 라손 지음/한유정 옮김/글항아리/2만3000원
‘신들을 위한 여름’은 1925년 7월 미국의 소도시 데이턴에서 벌어진 ‘스콥스 원숭이 재판’(Scopes Monkey Trial)의 자세한 내막을 다뤘다. 피고인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한 테네시주의 법을 어긴 과학교사 존 스콥스. 재판은 스콥스의 범법행위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창조론을 옹호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와 진화론을 지지하는 근대주의자의 대결로 확대됐다.
진화론과 창조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관점에서 재판의 배경과 전개 과정, 결론에 이르기까지 공평하게 다뤘다. 종교와 과학, 법의 관계와 상반되는 신념에 객관적 접근을 시도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재판에 참여한 두 거물의 대립은 흥미진진하다. ‘미국의 최연소 대통령 후보자’ 경력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창조론을 옹호하고, 저명한 인권변호사 클래런스 대로는 진화론을 앞세운다. 브라이언에 대한 대로의 심문은 미국 사법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재판은 스콥스에게 100달러의 벌금을 선고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결은 계속된다. 펜실베이니아, 캔자스 등에서 유사한 재판이 이어졌다.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라는 점에서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에 대한 1633년 종교재판을 떠올리게 한다.
 | 찰스 1세(오른쪽)와 그에 대한 재판을 묘사한 그림. 찰스 1세는 의회파와의 대립에서 패해 피고인으로 법정에서 선 뒤 ‘반역자’, ‘공공의 적’이란 판결을 받고 처형당한다. 찰스 1세의 사후 영국 정치체제는 공화정과 왕정복고를 오가다 명예혁명을 맞는다. 현암사 제공 | 두 책 모두 재미있다. 재판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어려운 법정 용어 같은 것은 없다. 소개한 재판마다 인류가 당면한 묵직한 주제를 다루지만, 경쾌하게 읽힌다. 재판을 둘러싼 당대의 사회 현실과 논쟁이 밀도 있게 제시돼 책 읽기의 깊이를 담보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