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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 제갈량의 흔적… 삼국지로의 여행

‘삼고초려의 무대’ 中 융중 & 샹양고성

‘삼고초려’ 하면 ‘초(草)’라는 단어 때문인지 외진 시골이 떠오른다. 고사 속 제갈량은 벽지의 은둔지사 이미지다. 삼고초려 무대인 중국 후베이성 샹양(襄陽)시 고융중(古隆中)을 찾았다. 제갈량이 살던 곳에 가보니 이런 선입견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었다. 

고융중에 가면 역사적 인물이 살던 땅이 의외로 작은 산골이라는 데 놀란다. 소박한 자연환경은 제갈량의 신화화된 비범함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고융중은 샹양 서쪽으로 13㎞ 떨어진 서산에 둘러싸여 있다. 우뚝 솟은 산이라 ‘융중’이란 이름이 붙었다. 바로 눈앞이 산으로 막힌 전형적인 산골이다.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넓은 평야와 장대한 한수 물줄기를 놔두고 제갈량은 왜 산골에 숨어들었을까.

중국 후베이성 샹양시 샹양고성의 한쪽에는 청 말기 건물을 복원한 동네가 펼쳐져 있다.
송은아 기자
산둥성에 살던 제갈량은 17살 때 전쟁을 피해 삼촌과 융중으로 왔다. 유비가 그를 찾아온 27살까지 청년기를 이곳에서 지냈다. 융중의 산과 들이 그의 재능을 길러낸 셈이다. ‘산골 청년’ 제갈량은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학식을 익혔다.

제갈량의 집은 융중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집터는 오래전 다른 이의 차지가 됐다. 명 태조 주원장의 6대손인 주견숙의 무덤과 비석이 이곳에 들어섰다. 명당은 명당인 모양이다. 다행히 제갈량이 마시던 우물 육각정은 1800년이 지난 지금도 맑은 물을 길어내고 있다. 깊이는 5m쯤. 중국에서는 집 앞에 우물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집 뒤에 우물을 쓰면 후손이 끊어진다고 여긴다.

제갈량 사당인 무후사.
융중의 볼거리는 몇 백년을 버티기 힘든 건물이 아니라 산야 그 자체이다. 제갈량이 거닐면서 큰 뜻을 품었을 자연을 보는 것만으로 의미가 깊다. 지금은 빈터마다 나무가 초록의 벽처럼 빽빽이 들어찼다. 지형을 한눈에 보기는 어렵다. 요즘 인기인 ‘숲속 학교’ 효과의 실례가 제갈량인가 하는 장난스러운 의문이 든다.

융중에 가면 먼저 제갈량을 모신 무후사를 지난다. 제갈량 사당은 그의 사후 361년에 현지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뒤 수리와 증축을 거듭했다. 겹겹의 건물이 경사진 지형을 타고 올라앉아 있다. 이외에 삼고초려와 융중대책을 기념한 삼고당, 도원결의를 기리는 삼의전 등이 발길을 붙든다.

드라마 촬영용 제갈량의 집.
드라마 촬영을 위해 제갈량의 집을 재현한 세트장도 있다. 역사적 가치는 없으나 구경거리로는 볼 만하다. 지붕은 초가이지만, 집 자체는 응접실 건물과 안채인 침실 건물 등으로 이뤄져 규모가 있다. 제갈량이 촌부가 아니라 아랫사람을 두고 벗들과 놀러 다닌 지주였음을 새삼 느낀다. 먹고살기 바빴다면 유비에게 “무력으로 조조와 손권을 이기기는 당분간 어렵습니다. 그러나 손권과 연맹을 맺을 수는 있습니다” 하고 즉석에서 융중대책을 내놓지는 못했으리라.

중국 후베이성 샹양시 샹양고성은 육로와 수로가 교차하는 군사 요충지에 세워졌다.
중국국가여유국 서울지국 제공
고융중과 가까운 거리인 샹양시에는 샹양고성이 있다. 옛부터 방어가 쉽고 공략하기 힘들어 ‘쇠로 만든 샹양’으로 알려졌다. 역사는 2800년. 길이는 7322m에 이른다. 샹양은 인구 300만명에 불과하나 수로와 육로가 교차하는 군사 요충지다. 샹양시를 지나는 한수를 뚫으면 강을 따라 곧장 후베이성 우한시까지 진격할 수 있다. 육로로는 허난(河南)성에서 후베이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이다. 과거 허난성에서 양쯔강 유역으로 내려오려면 반드시 샹양을 거쳐야 했다.

성에 오르면 넓은 한수 너머로 현대식 빌딩이 들어선 샹양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강을 사이에 두고 관우와 조조의 군대가 대치했다고 한다. 반대편으로는 청 말기 건물을 복원한 고풍스러운 동네가 보인다. 10여년 전 콘크리트 건물에 벽돌을 붙이는 식으로 복원했다 하나, 겉보기에는 그럴듯하다. 건물은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거리를 거니는 주민들의 모습도 과거로 돌아간 듯 느긋하고 정겹다. 당장이라도 누군가 2층 창을 열고 ‘어이’하고 부를 듯 하다. 샹양은 내륙 지역이라 전쟁을 적게 겪다 보니 유명인사들이 많이 은거했다. 제갈량과 방통을 제자로 둔 사마휘가 대표적이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형주의 주 무대라 역사적 일화를 많이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샹양(중국)=송은아 기자 sea@segye.com

여행정보=인천공항에서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까지 대한항공 직항 노선을 이용할 수 있다. 2시간쯤 소요된다. 항공편으로 상하이까지 간 뒤 중국 국내선으로 갈아탈 수도 있으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우한은 인구 1000만명의 대도시로 한창 개발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곳곳에 교통 체증이 발생한다. 우한 어느 지역에 묵느냐에 따라 시내를 빠져나오는 시간이 달라진다. 우한에서 서북쪽으로 280㎞쯤 올라오면 샹양, 우한에서 서북쪽으로 440㎞ 달리면 우당산이다. 우한에서 우당산지까지 차로 이동하는 거리는 5∼6시간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