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광장] 애덤 스미스 vs 존 케인스 유진 파마 vs 폴 크루그먼 해결사인가, 문제의 일부인가 입력 2013-10-17 21:55:45, 수정 2013-10-17 21:55:45 유진 파마(74) 시카고대 교수의 노벨경제학상 수상 소식에 혀를 차는 이들이 꽤 있다. 국내 한 경제학자는 “다시 한번 노벨경제학상의 불필요함을 인지하게 됐다”고 혹평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61) 프린스턴대 교수도 틀림없이 혀를 찼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파마에게 상을 주는 방법을 찾아낸 노벨위원회를 존경해야 한다”고 비꼬았다.
일찍이 크루그먼의 비판은 신랄하다. 그의 눈에 파마는 ‘새빨간 거짓말을 멈추지 않는 엉터리’다. 직접적 표현은 아니지만 압축하면 그렇다. 그는 지난 4월 국내에 번역·출간된 저서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End this depression now!)에서 파마를 ‘상위 1%를 위한 경제학자’로 묘사했다.
논란의 유진 파마는 금융경제학의 거장으로 통한다. 금융경제학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뗄 수 없는 관계다. 금융규제 완화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위기의 길을 텄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파마의 ‘효율적 시장 가설’에서 버블(거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버블 걱정 없는 파마의 ‘완벽한 시장’에서 금융파생상품은 확대 재생산되며 버블을 키웠고 마침내 폭발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가설이 현실에 들어맞지 않았으면 폐기처분하거나 적어도 수정하는 게 옳다. 그런데도 그는 그대로다. 여전히 “버블은 없으며 금융규제 완화 이후에 놀라운 성장의 시대가 이어졌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크루그먼의 표현) 떠들어댄다. 그와 함께 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67) 예일대 교수는 수상 후 기자회견에서 “전 세계에 부동산 버블이 재연될 조짐이 있다”고 다시 경고하는 마당이다. 그는 2005년 미국 주택시장의 버블 붕괴를 예측했다.
‘놀라운 성장’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극소수의 사람들은 말 그대로 ‘놀라운 성장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미 의회예산국(Congressional Budget Office)에 따르면 1979∼2007년 소득 하위 20%는 18% 성장에 그친 데 비해 상위 1%는 277.5%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크루그먼은 “금융 이론에 관한 콘퍼런스를 후원하는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놀라운 성장을 경험했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비꼬았다.
 | |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 일시적이고 우연한 논란이 아니다. 파마와 크루그먼의 반목은 오랜 전쟁의 연장선에 있다. 갈림길은 ‘인간은 합리적인가’라는 물음이다. 거대한 경제학의 두 줄기가 여기서 갈린다. 늘 합리적, 이성적이라면 시장은 완벽하다. 정부가 끼어들 필요가 없다. 경제주체들은 ‘이기적 경쟁’만 하면 된다. 그럼 시장기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경제 전체의 효율성이 극대화한다. 고전경제학의 대표학자 애덤 스미스(1723∼1790)의 이론으로 지난 30여년 세계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의 뿌리다. 유진 파마는 이 진영의 선두주자이다.
그러나 불완전한 이론이었다. ‘시장실패’는 반복됐다. 1929년 대공황,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대표적이다. 대안으로 경제학의 새 줄기가 만들어졌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으로 고전경제학을 뒤엎었다. 인간은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직감과 같은 비이성적 심리로 경제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야성적 충동은 불완전한 시장에서 버블을 쌓고, 신자유주의 경제는 심장부인 월스트리트에서 무너져 내렸다.
전쟁은 계속되겠지만 적어도 유진 파마의 진지한 성찰은 필요해 보인다. 스웨덴 중앙은행이 주는 노벨경제학상이 그의 완벽함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예측가능성을 높여 인류의 보편적 삶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경제학이 다 무슨 소용인가. 크루그먼은 저서에서 “위기가 터졌을 때 경제학자들이 종교적 싸움으로 덤벼든다”고 개탄했다. 그럴수록 경제학자는 해결사가 아니라 스스로 문제의 일부가 될 뿐이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