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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리뷰] 반딧불이 가로수

생물발광 에너지 조명에 활용
올 연말 ‘형설의 거리’ 어떨까

중국 동진의 차윤이 초를 살 돈이 없어 반딧불이를 모아 공부했다는 이야기에서 ‘고생하면서도 꾸준히 학문을 닦는다’는 뜻의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반딧불이는 짝짓기 할 때와 먹이를 사냥할 때 꼬리에서 빛을 발하는 딱정벌레류의 곤충으로 충분히 많은 수의 반딧불이를 잡는다면 실내에서 책을 읽는 정도의 밝기를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종호 과학저술가
반딧불이가 빛을 내는 것은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효소의 작용 때문이다. 즉 루시페라아제라는 효소가 루시페린이라는 물질을 변환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빛이 난다. 생물의 발광에는 체외 발광과 세포 내 발광이라는 두 종류가 있다. 체외 발광을 하는 동물은 두 가지 형의 세포를 갖고 있다. 한 쪽 세포에는 루시페린이라는 커다란 황색 과립이 들어 있고, 또 다른 한 쪽 세포에는 작은 발광효소 입자가 들어 있다. 동물이 근육을 수축시키면 이들 물질이 세포 사이나 체외로 밀려나온다. 이때 루시페린이 산화돼 빛을 내는 것이다. 반면 세포 내 발광의 경우는 루시페린과 발광효소 두 가지가 세포 안에 들어 있다. 루시페라아제에 의한 발광은 비방사선으로 인체에 무해하고 신속하게 유전자 조작을 확인할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유전공학 기법을 사용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도출해 냈다. 생물발광으로 얻어지는 에너지를 빛 에너지로 직접 교환해 건물 조명에 이용하는 것이다. 생물발광을 조명으로 사용할 경우 장점이 많다. 우선 전선이 필요하지 않다. 게다가 효율이 가장 좋아 봉입한 이중 코일 전구의 경우 발광 효율이 12% 정도인 데 반해 발광생물은 열을 내지 않는 냉광이므로 거의 100% 빛으로 변환시킨다. 방법은 간단하다. 발광세균을 플라스틱 컵이나 유리컵 속에서 살게 하기만 하면 된다. 세균 한 마리가 내는 빛은 매우 약하기 때문에, 1와트 정도의 빛을 내기 위해서는 컵 속의 세균수가 500조마리 이상이 돼야 하지만 세균은 대단히 미세하기 때문에 상당한 밝기의 ‘램프’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1935년 파리해양연구소에서 국제학회가 열렸을 때 해양연구소의 큰 홀을 발광세균으로 조명했다.

가장 놀라운 연구는 루시페라아제 효소를 만들어 내는 유전자를 식물 유전자와 재조합시켜 아름다운 빛을 내는 식물로 만드는 것이다. 식물과 동물은 작동 기전이 다르므로 융합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유전공학은 이들 경계에 도전했다. 바로 ‘반딧불이 가로수’이다. 반딧불이 특유의 발광 유전자를 빼내 가로수로 많이 사용되는 은행나무 유전자에 도입해 은행나무가 도입된 반딧불이의 발광 유전자의 지시에 따라 해가 지면 스스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1986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헬린스키 박사는 북미 반딧불이에서 루시페라아제 유전자를 분리했다. 같은 대학 하우엘 박사는 루시페라아제의 cDNA(상보적 DNA)를 당근배양세포의 프로토플라스트에 전기 펄스로 세포에 도입하는 방법인 일렉트로플레이션으로 주입시켰다. 담배에도 아그로박테리아를 통해 도입시켰다. 어두운 데서 엑스선 필름을 대어 빛을 쪼이자 뿌리와 줄기, 잎의 일부가 빛났다.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셸 그룹은 반딧불이 대신 발광세균의 루시페라아제 유전자를 사용해 담배와 당근을 빛이 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법을 은행나무에 도입하는 것이다.

이제 곧 연말이다. ‘반딧불이 가로수’가 등장한다면 연말연시마다 장식등으로 가로수를 장식하는 것보다도 도시 분위기를 보다 낭만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종호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