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우주의 질서를 닮으려는 몸짓, 색은 본질로 통하는 가장 적합한 지름길” 빛의 작가 하동철 5주기 기념전 입력 2011-10-03 16:37:26, 수정 2011-10-03 17:47:58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질서 위에서 가능하다. 사물은 단지 그 질서 위에 잠시 모여 든 단위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찰나에 사라질 현상적 사물들을 사진기에 담듯 화폭에 옮겨가는 노력의 허허로움이여, 예술이란 우주의 질서를 닮으려는 몸짓인가 보다. 색이란 본질로 통하는 가장 적합한 지름길이다.”
물감을 머금은 실을 튕겨 화면에 빗줄기 같은 사선의 흔적을 만드는 먹줄 표현은 화면에서 진동과 에너지를 느끼게 해준다. 빛이 비처럼 내리고 있다. “매직으로 그어보았는데 그 결과는 생각이 옮겨갈 뿐이었어요. 물감을 사선으로 흘려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창에 흐르는 빗물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했지요. 비는 바람과 에너지와 리듬이 합쳐진 것입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연결하는 기운은 결국 튕기면서 드러나는 선에 의해 가장 명징하게 시각화된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의 이러한 기억들은 빛을 담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00년대 이후 제작된 작품들은 빨강과 파랑 두 가지 색이 기조를 이루고 있다. 거친 붓질에 의한 표현적 바탕이 사라지고 대신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가 맴도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가장 분명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작가의 체질적 조형의식으로부터 온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이차원적 화면의 물질성을 벗어나 무한한 공간으로 나아간다. 물질인 물감으로 비물질적인 빛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스프레이를 통해 번져나가는 빛의 향연들 사이로 먹줄을 튕겨가며 균일하게 새겨진 검정색 먹 선들은 화면에 공간감을 구축해 준다. 빛의 작가로 알려진 하동철 작가의 5주기를 맞아 12∼25일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서 기념전이 열린다. ‘트렌드 예술’이 각광받고 있는 시대에 5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빛’이라는 하나의 소재와 주제를 끝없이 탐구한 하동철의 작품세계를 일별해 볼 수 있는 자리다. 시간의 흐름에 맞춰가거나 혹은 맞서는 것이 아닌 시대를 초월하는 메시지가 예술의 본질이라 할 때, 하동철의 추상회화는 예술의 근원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자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02)735-9938 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