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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한 서울을 이야기가 있는 도시로”

한강 나들목 프로젝트 참여 홍택·김찬중 시스템랩 공동대표

“새로운 건축은 단조롭고 따분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고, 그러면 새로운 가능성이 생깁니다.”

건축설계사무소인 시스템랩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홍택(42)·김찬중(40) 공동대표는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도시를 꿈꾼다. 건축계에서 40대 초반의 젊은 그룹인 이들은 고려대 건축공학과 선후배 사이. 각자 따로 일을 해오다 2005년 의기투합해 함께 회사를 설립했다. 이들은 개인의 주거공간부터 기업의 지점이나 사무실, 카페, 공공건물 등 갖가지 건물을 설계했다. 최근에는 공공사업인 한강 나들목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시스템랩 김찬중(왼쪽)·홍택 공동대표. 이들은 “건축을 통해 활력 있는 도시를 만들고 싶다”며 “서울은 가능성이 많은 도시”라고 말한다.
청담동에 들어서게 될 영국 브랜드 폴스미스의 플래그십스토어의 설계도 맡았다. 상점과 사무실, 전시공간이 합쳐진 이 건물은 LA, 도쿄에 이은 폴스미스의 세 번째 해외 지사 건물이다. 이들이 가장 고려하는 것은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새로운 소재로 건축하는 것”이다.

서울시가 ‘한강 르네상스’ 일환으로 진행 중인 한강 나들목 사업은 한강둔치로 진입하는 터널 25군데를 리모델링하는 사업이다. 4팀 중 1팀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잠실과 여의도에 설치하는 터널을 플라스틱 외벽으로 만들었다. 플라스틱은 건축 자재로 생각하기 쉽지 않은 데다 무엇보다 경제적이다. 또 2010년 완공될 예정인 압구정 터널은 천장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고드름을 촘촘히 매달고, 여기에 천장의 불빛이 어떤 특정한 사람을 따라가게 만들 예정이다. “예를 들면, 두 사람이 함께 가는 경우에 불빛이 생길 수도 있고, 빨간 옷을 입은 사람만 따라갈 수도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공개하지 않겠지만, 시민들이 이 터널을 지나면서 저절로 비밀을 풀 수 있게 되겠지요.”

◇천장에 고드름이 달린 압구정나들목 이미지.
이들은 이처럼 따분한 도시 속 이야깃거리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다. “서울은 건축적으로 이야깃거리가 없습니다. 도시 내 작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서 시민들이 이런저런 상상을 했으면 좋겠어요.”

◇터널벽을 플라스틱으로 만든 한강 신천나들목.
2006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한국관 작가로 참여해 선보였던 서울시 납골당 프로젝트도 상상력이 빛나는 작품이다. 우리나라 전통 제례와 현대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것으로, 휴대전화를 이용해 디지털로 헌화한다는 아이디어다. 110m 높이의 구조물에 납골 5만여 기를 채워넣고, 각 납골함의 번호로 전화를 걸면 납골함이 불빛을 낸다는 내용이다. 김 대표는 “죽은 사람이 그리워질 때 산 사람이 전화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해당 납골함이 빛나게 되는 거죠. 죽음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혐오시설이 아닌 일상적으로 보고 느끼며 정서적으로 치유하는 ‘힐링 타워’(healing tower)로 만들고자 했어요. 서울시에 이 같은 내용을 제안했는데 너무 민감한 문제라 아직까지 쉽지는 않습니다.”

올해 초 연희동 골목 가에 들어선 전시공간인 연희동프로젝트도 눈에 띈다. 연희동에 뜬 독특한 흰색 코팅 외벽의 건물로 관심을 모은 이 건물은 ‘냉장고 같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휴대전화기에서 착안했다. “오늘날 미술은 완전한 순수 영역이라기보다는 거래가 되는 일종의 상품이잖아요. ‘상품’(product)이라는 키워드에서 착안해, 이 시대 가장 대표적인 ‘상품’인 휴대전화기를 본떴어요. 휴대전화기의 매끈한 외벽과 둥그스름한 모서리 등도 건축에 그대로 가져왔어요.”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지만, 이들은 예술가와 다르다. 건축은 한번 지어지면 수십년 또는 수백년 이어지는 공공건물이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자기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건축가는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공공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 투자를 하는 건축주를 고객으로서 만족시켜야 하는 서비스업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건축주의 의도대로만 하기보다는 건물이 도시와 주변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 공공성이 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건축주는 기존 건물처럼 안전한 길로 가고 싶어하죠.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것을 시도해 도시에 활력을 주고자 합니다. 이는 건축가의 사회적 직무입니다.”

나아가 이들은 사람들의 문화적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덧붙였다. “독특한 건물이 생기면 사람들은 당장은 외관의 신기함에 반응하겠지만, 더 넓게 봐서 건축을 통해 사람들이 새로운 가치와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하고 싶습니다. 건축가로서 문화적 인식을 전환하는 데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