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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 화약무기가 전면 등장한 첫 전쟁, 임진왜란 [조선생활실록(實LOG) 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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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상하던 왜군 저지한 평양성 전투
한중일 군사력, 한 곳서 극적 충돌
명군, 여러 화포 발사해 성곽 타격
왜군 북상 막고 남쪽 철수를 강요
행주산성에서도 화력이 승패 갈라
우리 국방부도 포병 등 화력에 진심
“불랑기, 호준포, 멸로포 등 무기를 사용하였습니다. 성에서 5리쯤 떨어진 곳에서 여러 포를 일시에 발사하니 소리가 하늘을 진동하는 것 같았습니다.”『선조실록』(선조 27년 3월 20일)
임진왜란 때 치열했던 평양성 탈환 전투를 그린 10폭 병풍. 평양성 탈환 전투는 동아시아 전쟁사 가운데 화력을 전면에 내세운 첫번째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임진왜란 때 치열했던 평양성 탈환 전투를 그린 10폭 병풍. 평양성 탈환 전투는 동아시아 전쟁사 가운데 화력을 전면에 내세운 첫번째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요즘 국방부를 포병 화력에 진심이라는 뜻으로 ‘포방부’라고 부르곤 한다. 이는 육해공군 가운데 육군과 포병 전력이 한국군을 대표할 만큼 큰 규모이기 때문이다. 전투를 결정짓는 기동, 화력, 정보, 인력, 보급 등 여러 요소 중에서 왜 한국은 유독 ‘화력’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일까? 또 우리 역사상 화력(Fire Power)을 중심으로 전쟁이 전개된 것이 언제부터일까?

 

화력에 집중하는 모습은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우리 역사에서 화력 중심의 큰 전쟁을 치른 경험은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화력전이 전면에 나타났던 임진왜란에서 그 경험이 시작된다.

평양성탈환도 가운데 칠문 공략 부분(좌)으로, 화포를 사용하여 성문을 타격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평양성탈환도 가운데 칠문 공략 부분(좌)으로, 화포를 사용하여 성문을 타격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지금의 동아시아 정세를 형성한 가장 큰 사건은 아마도 고구려의 멸망과 이에 따른 중화질서의 완성, 그리고 일본의 조선 침공인 임진왜란 이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각축을 꼽을 수 있다. 임진왜란은 전국시대를 거치며 세력을 키운 해양세력 일본이 기존 중화질서에 도전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임진왜란은 제1차세계대전 이전에 발발한 전쟁 중 그 피해 규모를 3~4위로 꼽을 만큼 극심했다. 임진왜란 이후 동아시아 세계 질서에 큰 변화가 나타난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아울러 임진왜란은 세계 제국인 명나라와 도전 세력인 일본, 그리고 동아시아 국제 정세의 안정에 주요 역할을 하던 조선이 한반도라는 한 공간에서 자국 전력을 여지없이 드러낸 전쟁이었다. 특히, 화약 무기를 전면에 내세워 진행된 동아시아 최초의 전쟁이라는 점에서 임진왜란은 아시아 역사는 물론 세계 전쟁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임진왜란에서 한ㆍ중ㆍ일의 대규모 군사력이 한 장소에서 극적으로 충돌했던 첫 대규모 전투는 평양성 탈환전이었다. 평양성 탈환전은 1593년 1월 6일에서 8일까지 3일간 전개되었다.

20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평양성도 병풍으로 펼친 길이는 377cm에 달한다. 대동강과 높은 성곽, 성내 모습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20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평양성도 병풍으로 펼친 길이는 377cm에 달한다. 대동강과 높은 성곽, 성내 모습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 탈환전을 참관했던 이덕형은 이전과 달리진 전투의 양상을 그대로 보고했다. 그는 평양성 탈환전을 선조에게 보고하며 철옹성이라 하여도 화력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당시 사용한 각종 화포와 그 성능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이덕형의 보고에 따르면, 평양성을 공격할 때 명군은 불랑기, 호준포, 멸로포 등 각종 화포를 일제히 발사하여 성곽을 타격해 파괴했고, 쏟아져나오는 일본군을 섬멸하며 성안으로 진입했다.

평양성 전투 때 명군이 사용한 후미장전식 대포인 불랑기포의 모포(母砲). 전장식이던 기존 대포와 달리 불랑기포는 모포와 자포로 분리되며, 화약을 장전한 자포를 교체하며 발포할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평양성 전투 때 명군이 사용한 후미장전식 대포인 불랑기포의 모포(母砲). 전장식이던 기존 대포와 달리 불랑기포는 모포와 자포로 분리되며, 화약을 장전한 자포를 교체하며 발포할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다른 자료를 보면, 당시 명군은 불랑기 등 화포 이외에 대형 화포인 ‘대장군포’와 로켓 무기라 할 ‘화전’도 대량으로 활용하였다. 다량의 화포 사격으로 철옹성이라 일컫던 평양성의 성문과 성벽 위 작은 담장인 ‘여장’은 순식간에 파괴되었고, 조ㆍ명군은 성내로 진격하여 일본군을 공격할 수 있었다.

 

화약 무기를 전략 전면에 내세웠던 평양성 탈환 전투를 계기로, 화력전의 중요성은 점차 증대되었다. 반대로 화력이 약한 경우 패배하는 전투도 나타났다.

 

평양성 전투가 끝나고 20여 일이 지나 파주 벽제관에서 명군과 일본군은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경무장 기병이 주력이었던 명군은 매복한 일본군의 대규모 조총 사격에 큰 피해를 봤다.

 

다음 달 행주산성 전투에서도 화력은 승패를 판가름하는 핵심 전력이었다.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은 승자총통의 대량 발사가 가능한 ‘화차’를 활용하여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이러한 전투는 화력의 우위가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전력으로 기능했음을 보여주었다.

조선시대 시한폭탄의 일종인 비격진천뢰. 도화선을 감는 목곡을 이용하여 폭발 시간을 조절했다. 임진왜란 당시 경주성 탈환에 사용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시대 시한폭탄의 일종인 비격진천뢰. 도화선을 감는 목곡을 이용하여 폭발 시간을 조절했다. 임진왜란 당시 경주성 탈환에 사용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

1593년 1월 평양성 전투는 일본군의 북상을 저지하고 한반도 남쪽으로의 철수를 강제했던 분수령이었다. 이 평양성 전투는 임진왜란의 판세를 바꿨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전투는 ‘화력’이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 전력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전쟁의 전통적 전략을 뒤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또 화력이 전장을 지배하는 핵심 전력으로 부상하면서, 아시아를 호령해 왔던 유목세력의 군사적 우위는 차츰 빛을 잃게 되었다.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화력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후 조선 조정은 조총과 불랑기 등 신형 화기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조선은 17세기 중반 이후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조총 부대를 양성했다. 아울러 조선 조정은 개인 화기는 물론, 성곽 및 해안 방어를 위한 불랑기 등 신형 화포 성곽에 대량으로 배치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포병 전력을 갖추게 된 배경에는 아마도 16세기 말 전장을 뒤흔든 ‘화력의 충격’이 우리 내면 깊숙이 아로새긴 역사적 DNA가 영향을 준 게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사총서 22)

 

노영구 국방대 전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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