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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의시대정신] 권력은 어떻게 부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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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덕질’ 대상 되는 순간
이성적인 판단보다 욕망이 작동
진정성 있는 일꾼을 뽑기 위해선
의심과 감시는 시민들의 책무다

앞으로 여섯 걸음, 뒤로 여섯 걸음. 탱고의 기본 스텝이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대표작 ‘사탄탱고’는 이 스텝을 소설의 뼈대로 삼는다. 총 열두 개의 장이 둘로 나뉘어 앞으로 여섯, 되돌아 여섯. 출구 없는 시대를 소설의 형식 자체에 새겼다. 숙제 같았던 두툼한 소설을 끝내자마자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떠올랐다. 두 작품 모두 한때의 이상이었던 집단농장을 배경으로 한다. 오웰이 권력의 탄생을 해부했다면,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이후의 폐허를 응시한다.

‘동물농장’은 빠르다. 혁명으로 인간을 몰아내고, 영리한 돼지들이 권력을 잡고, 그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일곱 계명이 변질되는 과정이 150쪽에 압축된다. 오웰은 이 날카로운 우화를 19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 승리 이후 스탈린 체제의 정점을 바라보며 썼다. 당시 소련은 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이었고, 서구 지식인 사회에서 공산주의는 파시즘에 맞서는 대안이자 이상이었다. 그 도취의 한가운데서 오웰은 펜을 들어 권력의 타락을 고발했다. 독자들은 나폴레옹(우두머리 돼지)의 기만에 속아 묵묵히 돌을 나르는 동물들을 보며 분노하다가, 꿈꿨던 평등 사회가 허상이었음을 깨닫는다. 끝내 남은 단 하나의 계명은 이렇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김동기 강원대 초빙교수·전 KBS PD
김동기 강원대 초빙교수·전 KBS PD

‘사탄탱고’는 반대다. 느리고 질척거린다. 혁명은 빛바랬고 남은 건 버려진 집단농장의 절망뿐이다. 소설은 동구 공산권 해체를 몇 년 앞둔 1985년에 쓰였다. 오웰이 권력의 전성기를 보며 그 타락을 예견했다면,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몰락한 체제의 말년을 안에서 목격했다. 그는 독자를 헝가리 시골의 진흙탕에 밀어 넣고 좀처럼 꺼내주지 않는다. 죽은 줄 알았던 이리미아시가 돌아온다는 소문에 무너진 공동체가 들썩이는 장면은, 희망과 맹목이 얼마나 쉽게 착취의 도구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가짜 메시아를 불러들인 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 사람들이다. 헛된 믿음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그들의 몸짓은 사탄이 지휘하는 우스꽝스러운 탱고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두 소설이 여전히 낡지 않은 건, 이들이 비추는 거울이 특정 체제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 본성 자체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패의 본질은 권력자 개인의 타락에만 있지 않다. 동물농장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은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며 자기 몸을 갈아 넣어 충성하던 말, 복서의 죽음이다. 참담한 것은, 그의 성실한 헌신이 결국 권력의 타락을 떠받치는 자양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탄탱고의 이리미아시는 주민들에게 구세주처럼 추앙받지만, 뒤에서는 그들을 경멸한다. “그자들은 뼛속까지 노예지. 부엌에서 꾸물거리고 으슥한 데서 똥 싸고 창가에서 남들이 뭐 하나 몰래 훔쳐보기나 하고. 그게 다야. 손바닥 들여다보듯 내가 훤히 아는 게 바로 그자들이라고.” 결국 권력은 자신들만의 특권을 견고히 쌓는 방식으로 부패하거나(동물농장), 대중의 절망을 동력 삼아 희망을 팔고 그 희망을 기만하는 방식으로 부패한다(사탄탱고).

문학을 통해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권력의 속성과 맹목의 비극이 이토록 선명하다. 그러나 현실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2026년의 대한민국에도 여전히 수많은 ‘복서’와 ‘농장 주민’들이 존재한다. 감시와 비판은 사라지고, 기꺼이 권력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이 기이한 열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PD 시절 현장에서 본 바로는 ‘대가리가 깨져도 ○○○’라는 문구는 원래 아이돌 팬덤에서 시작됐다. 내 ‘최애’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도 감수하겠다는 일종의 충성 맹세였다. 그런데 이 구호가 2017년 대선에서 돌연 소환됐다. 지금은 상대 지지층을 조롱하는 멸칭처럼 쓰이지만, 처음의 ‘대깨문’은 지지자들이 스스로 만든 말이었다. 지금은 ‘대깨명’도 있고 ‘대깨윤’도 있다. 열렬한 덕후들은 농담처럼 ‘이생망’이라며 자조하곤 한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이다. 내 일상과 지갑이 망가져도 상관없을 만큼 덕질의 쾌감이 강렬하다는 고백이다. 그러나 그 열광의 대상이 정치인이 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 삶이 망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국가가 망한다.

오래전 스피노자가 물었다. “왜 인간은 마치 그것이 자신의 구원인 것처럼, 자신의 예속을 위해 싸우는가.” 들뢰즈는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이 질문을 끌어와 답한다. 대중은 속지 않았다. 특정한 순간, 그들은 노예 상태를 스스로 욕망한다. 오늘날의 팬덤 정치는 집단적 욕망이 권력의 공식과 결탁한 결과다. 맹목적 충성이 주는 소속감, 적을 향한 분노가 주는 자극, 진영 안에 머무는 안도감이 이성적 판단보다 먼저 작동한다. “머리가 깨져도 좋다”며 권력의 호위무사가 될 때, 대중은 각자도생의 현실에서 벗어나 강력한 권력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권력자의 승리가 곧 나의 승리가 되니 그 도파민이 얼마나 짜릿하겠는가.

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있다. 광장은 진영의 깃발을 흔들며 서로를 삼킬 듯한 소란으로 가득하다. 후보 중에는 진짜 시민의 삶을 돌볼 사람도, 그저 제 안위만 챙기려는 ‘나폴레옹’도 있을 것이다. 이를 가려낼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내가 속해 있다고 믿는 진영의 끈을 언제든 끊어낼 수 있는 용기, 의심하고 또 감시하는 것. 시민의 책무는 거기에 있다.

 

김동기 강원대 초빙교수·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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