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비는 평소와 달랐다. 홍콩을 상징하는 붉은 리본을 단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여기저기서 광둥어와 영어가 들렸다. 홍콩특별행정구 정부가 주최하는 ‘홍콩위크 2025@서울’의 하이라이트 공연이었다. 9월 말부터 시작된 이 문화교류 축제는 무용, 음악, 영화, 패션 등 14개 프로그램, 65회의 공연으로 두 도시를 연결하고 있었고, 그 정점에 리오 쿠오크만이 이끄는 홍콩필하모닉이 놓여 있었다.
문화교류라는 말은 쉽게 쓰이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일이다. 서로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앉아 음악을 듣는다고 해서 저절로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낯섦을 감당하는 일, 그게 관건이다. 특히 그것이 동시대 음악일 때 더욱 그렇다. 우리는 익숙한 멜로디를 기대하고, 예측 가능한 화성에 의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짜 만남은 그 기대를 내려놓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공연은 한국과 홍콩을 대표하는 두 현대 작곡가, 진은숙과 찰스 쾅의 작품으로 문을 열었다. 아시아의 두 도시가 지금 이 순간 만들어내는 음악을 나란히 듣는 것, 그 기획 자체가 흥미로웠다. 진은숙의 ‘수비토 콘 포르차’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위해 쓰인 5분짜리 파편이 몰아치는 폭풍우다. 시작의 강렬한 일격이 청중의 귀를 깨우고, 현의 속삭임 사이로 베토벤의 선율 조각이 번쩍이며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질적인 질감이 파도를 만들고, 우리는 그 흐름에 의식을 맡긴 채 같은 방향으로 흔들렸다.
찰스 쾅의 신작은 역설적인 제목처럼 ‘천천히 서두르는’ 음악이었다. 작곡가는 유럽의 강물 소리를 극도로 늦춰 재생하다가 소리가 미세한 입자로 갈라지는 경험을 음악으로 옮겼다고 했다. 느린 현의 흐름 위로 목관의 짧은 문장이 반짝이고, 금관이 색을 더하며, 타악기가 에너지를 점층한다. 시간은 늘어나는 듯하면서도 앞으로 툭툭 걸음을 옮긴다.
솔직히 이런 음악은 처음 듣는 귀에 쉽지 않다. 노래할 멜로디가 없고, 다음 화성을 예견할 단서도 드물다. 어느 지점을 붙잡아야 할지 막막해지는 순간, 객석은 도리어 조용해졌다. 숨이 고르고, 귀가 커졌다. 곡이 끝나고 작곡가가 무대에 오르자 관객은 머뭇거림 없이 박수를 보냈다. 작품을 다 이해하진 못했어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박수 소리가 홀을 가득 채우는 가운데, 문득 듣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물리적인지 새삼 깨달았다. 연주자가 만든 활의 압력과 관의 울림이 공기를 흔들고, 그 물결이 내 귓속에 자리한 얇은 막을 진동시킨다. 그 떨림은 신경을 타고 뇌로, 결국 마음으로 번진다. 이렇게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타인의 몸짓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오도록 문을 여는 일이다. 낯선 감각을 내 안에서 살도록 허락하는 일, 나는 그것을 환대라고 부른다.
이런 자세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획자가 동시대 작품을 꾸준히 올리고, 해설과 녹음이 쌓이며, 청중의 귀가 조금씩 익숙해질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머리로 받아들이기 전에, 모르는 것 앞에 머무는 법을 배우는 데 있다.
서울과 홍콩이 음악을 나누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닿아 있지 않을까. 그날 밤 공연장을 나서며 생각했다. 타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 낯선 리듬에 몸을 맡기는 일은 단지 음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다른 도시, 다른 언어, 다른 삶 앞에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한다. 닫을 것인가, 열 것인가.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우리의 세계는 그만큼 넓어질 것이다.
이상권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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