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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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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09 23:09:10 수정 : 2025-06-09 2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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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

이따금 이른 저녁이 오지 않는 날이면 오래전 잃어버린 고막이 웅웅거려 한밤중에 깨어납니다

밤새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봅니다 여전히 막차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한 번도 답장하지 못한 채 우체통을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천천히 세수하고 귀밑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것을 우두커니 바라보았습니다

 

이제는 자주 담배 대신 향을 피우고, 술 대신 드라마를 찾아봅니다

그래도 여전히 차를 마시는 습관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중략)

그러다가 다시 생각이 들 때면 서둘러 양치하고, 이부자리를 깔고, 강아지와 한바탕 씨름을 합니다 그렇게 따뜻해진 강아지를 안고 잠드는 이른 저녁

 

그때를 생각하던 일은 다만

 

그러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누군가 근황을 물을 때마다 괜히 머뭇거리게 된다. 요즘 나는 어떻게 지내더라? 스스로를 돌아보자면 딱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제와 오늘이 그리 다르지 않고, 내일 또한 그러할 텐데. “양치하고, 이부자리를 깔고, 강아지와 한바탕 씨름을” 하듯 소소한 일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 적당히 괜찮고 적당히 힘겨운 보통의 리듬으로 저물어갈 텐데, 싶은 것이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이런 무료함이란, 무탈함이란….

하지만 이야기할 수 없겠지. 깊숙이 묻어둔 어떤 불안에 대해. 상처에 대해. “오래전 잃어버린 고막이 웅웅거려 한밤중에 깨어납니다” 하는 식의 진짜 근황을 고백할 수는 없겠지. 누군가 물으면 다만, 잘 지냅니다, 답하는 것. 미처 “답장하지 못한” 서글픈 기억이 불쑥 솟아나려 할 때마다 향을 피우고, 드라마를 찾아보는 것. 잠시 피식거리다 잠드는 것.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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