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BJ가 직접 신인 BJ 섭외·발굴…블루오션 된 엑셀 방송
"OO 오빠 어서 오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오빠. 열심히 할게요!"
화면 한가운데 무대로 나와 몸매가 드러나는 옷차림으로 섹시 댄스를 추는 여성 BJ(인터넷방송인)들이 줄을 잇는다. 무대 뒤쪽엔 방송을 주도하는 대표 BJ와 다른 게스트 BJ들 10여 명이 나란히 서서 음악에 맞춰 합창하는 등 분위기를 띄운다.
노래방처럼 색색의 화려한 조명이 돌아가고 잘게 자른 색종이를 공중에 흩뿌리거나 바람과 함께 하얀 연기가 치솟는 등 다양한 특수 효과도 동원된다. 최근 몇 년 새 인터넷방송 플랫폼 '숲'(SOOP·옛 아프리카TV)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엑셀 방송'의 한 장면이다.
신인 여성 BJ들 모집해 별풍선 후원 경쟁…'엑셀 방송' 열풍
엑셀 방송은 BJ 커맨더지코(본명 박광우·44)가 2021년 다른 BJ들과 회사 놀이 콘셉트로 기획한 '광우상사' 방송에서 시작됐다. 유명 BJ가 사장을 자처하고 신인 BJ들을 '사원'으로 뽑아 별풍선을 더 많이 얻는 BJ에게 기여도만큼 '월급'을 주는 식이다. 게스트 BJ들이 각자 얼마나 별풍선 수익을 올렸는지 엑셀 표로 보여준다고 해서 '엑셀 방송'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별풍선이란 시청자들이 구매하는 사이버머니로 개당 100원의 가치를 갖는다. 시청자가 방송을 보고 별풍선을 선물하면 BJ는 일정 수수료를 제외하고 별풍선을 실제 돈으로 환전할 수 있다. 즉 별풍선은 BJ들의 주요 수입원이자 인기를 보여주는 대표 지표다.
'숲'은 별풍선 후원이나 구독자 수가 많은 BJ에게 일정 시간 이상 방송 지속 조건을 달아 베스트 BJ나 파트너 BJ 등으로 지명한다. BJ 등급이 높을수록 '숲'이 제공하는 수수료 우대 정책이 적용돼 일반 BJ는 개당 60원, 베스트 BJ는 70원, 파트너 BJ는 80원으로 별풍선을 환전받을 수 있다.
초기 엑셀 방송은 젊은 남녀 BJ들이 함께 술을 먹고 놀며 '회식'을 즐기는 자리였지만 별풍선 '큰손'들의 주목을 받으며 2022년 하반기부터는 점차 여성 BJ 비중이 높아졌고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춤을 추는 유흥업소 콘셉트로 진화했다. 참여하는 BJ의 직급을 인턴-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으로 세분화, '승급전'을 치르는 서바이벌 방식도 차용하면서 현재의 엑셀 방송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엑셀 방송은 사실상 큰손 시청자들이 각자 응원하는 BJ를 위해 경쟁적으로 별풍선을 후원하는 '별풍선 대잔치'나 다름없다. 시청자가 특정 BJ를 호명하며 별풍선을 후원하면 해당 BJ가 무대로 나와 춤을 추면서 자신의 매력을 뽐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BJ는 다른 시청자 눈에도 들 가능성이 커지고, 기여도도 올라가면서 더 높은 직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별풍선 수익 2년 만에 14배 '껑충'…게스트 BJ 수입만 수억 원대
엑셀 방송을 주도하는 대표 BJ의 별풍선 수익이 급상승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별풍선 통계 사이트 '풍투데이'에 따르면 커맨더지코가 방송으로 후원받은 별풍선은 2021년 2763만 개에서 2022년 6690만 개, 2023년 3억 9756만 개로 급격히 늘었다. 2년 만에 14배 넘게 폭증한 것이다. 올해는 10월 20일까지 집계된 별풍선 개수만 2억 9872만 개다.
엑셀 방송이 별풍선을 쓸어 담자 다른 유명 BJ들도 앞다투어 엑셀 방송에 나섰다. 커맨더지코를 포함해 현재 숲에서 별풍선 수익을 가장 많이 올리고 있는 최상위 BJ 10명은 모두 엑셀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올 10월 기준 현재 이들 BJ 10명이 얻은 별풍선 개수는 모두 15억 2071만 개, 누적 시청자 수는 1억 5150만 명에 달한다.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실이 '숲'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최상위 10명 BJ가 별풍선을 환전한 금액은 2021년 132억 원에서 2022년 214억 원, 2023년 656억 원으로 2년 만에 5배 가까이 증가했다. 작년 기준 별풍선을 가장 많이 환전한 1위 BJ는 약 200억 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2위는 110억 원, 3위는 100억 원 수준이다.
다만 엑셀 방송으로 얻은 별풍선 환전 금액은 대표 BJ가 모두 가져가지 않는다. 참여한 게스트 BJ들에게 기여도에 따라 차등 배분하는 만큼 전체 매출액에서 게스트 BJ에게 '월급'을 지급하고 남은 대표 BJ의 수입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는 알기 어렵다.
중간 정산이라는 명목으로 게스트 BJ들의 '월급'이 공개되기도 하는데, 최근 커맨더지코 방송 내용에 따르면 게스트 BJ들은 최소 2000만 원에서 최대 3억~5억 원가량 지급받는다고 한다. 이때도 대표 BJ의 월수입은 공개되지 않지만, 게스트 BJ들의 수입을 고려하면 최소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 방송만으로는 힘들어"…스타 BJ들이 살아남는 방법
엑셀 방송 열풍은 1인 방송 위주였던 인터넷방송이 블록버스터화, 기업화되는 최근의 추세를 보여주는 사례다. 커맨더지코는 지난 7일 자신의 채널에 올린 신입 BJ 모집공고에서 "개인 방송만으로는 힘들어진 대(大) 크루의 시대"라며 "방송에서 상향을 꿈꾸시는 분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진입 장벽이 낮고 경쟁이 치열한 인터넷 방송계에서는 유명한 BJ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콘텐츠가 없으면 언제든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 연예인들마저 유튜브와 인터넷 방송계로 진출하는 요즘, 기존 BJ들이 살아남으려면 협업과 조직화가 필수다. 엑셀 방송은 스타 BJ들이 대규모 구독자를 자산으로 신인 BJ들을 끌어들여 수익을 창출하는 블루 오션인 셈이다.
물론 경쟁력과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의 스타 BJ가 다른 BJ와 합동으로 방송하며 시너지를 이끌어내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엑셀 방송은 단순한 합방 차원을 넘어선다. 대표 BJ가 일정한 계약 조건을 내걸어 신인 BJ들을 모집하고, 이들의 매력으로 별풍선 후원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기획사나 매니지먼트 사업과 유사한 행태를 보인다.
유명 BJ이자 유튜버 김계란이 기획한 4인조 걸그룹 밴드 'QWER'(큐더블유이알)은 작년 10월에 데뷔해 실제 연예계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인플루언서들이 영상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차원을 넘어 연예 기획사로 사업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개인 방송에 머무를 때보다는 (여러 BJ들이) 합쳤을 때 기존 방송들과 견줄 만큼 블록버스터화되고 이벤트성이 강해진다"며 "시장이 커지면서 유튜브 등 SNS에서 기획자가 인플루언서를 발굴해 사업화하는 방식이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뉴스1>뉴스1>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