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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 주연의 1995년 작 ‘서유기 월광보합’과 ‘서유기 선리기연’은 중국 고전 서유기를 재해석한 영화다. 유치함과 기괴함으로 무장한 여타 주성치 주연 영화와 달리 나름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 이유는 탄탄한 각본 때문이다. 슬랩스틱 코미디의 반복을 통한 유머와 스릴러적 요소가 절묘하게 버무려졌다. 여기에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타임머신을 판타지 무협영화에 접목한 것도 흥행을 이끈 배경이다.

서유기는 중국의 사대기서 중 하나다. 당나라 승려 현장(삼장)법사가 장안에서 머나먼 서역으로 불경을 얻기 위해 떠나는 과정에서 겪는 수난사를 다뤘다. 삼장의 세 제자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갖가지 괴물과 요괴가 등장한다. 허무맹랑해 보이는 판타지소설이지만 깨달음을 향한 여정 속에서 무능하고 부조리한 관료사회에 대한 풍자와 해학을 만날 수 있다.

인물과 서사의 다양성 때문에 서유기는 아시아에서 여러 방식으로 변주돼왔다. 일본 만화 ‘드래곤볼’도 그중 하나다. 드래곤볼은 주인공인 손오공이 소원을 들어주는 여의주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2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됐을 정도로 인기몰이했다. 지난 3월8일 드래곤볼 작가 도리야마 아키라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외교부는 이례적으로 추모 메시지를 발표했다. 드래곤볼이 일본에서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원작 서유기에 대한 자부심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싶다.

최근 세계 게임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 8월 출시된 ‘검은 신화: 오공’ 때문이다. 중국 업체 게임사이언스가 개발한 이 게임은 서유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뛰어난 그래픽과 개성 있는 전투시스템으로 출시 두 달 만에 20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역대 게임 중 가장 빠른 기록이다. 액션 롤플레잉(RPG)인 오공은 중국 최초의 트리플A(AAA) 게임이다. 트리플A는 게임 시장의 트렌드를 이끄는 대작을 일컫는다. 인기가 어디까지일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서구와 일본의 전유물이었던 트리플A 게임 전쟁에 중국이 자국 IP(지식재산권)를 가지고 참전했고, 그 역량 또한 글로벌 게임 시장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정도로 놀랍다는 점이다. ‘K게임’에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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