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세계화 한강 노벨문학상 연계 사업 본격 추진
독일·영국서 4·3기록물 첫 특별전·심포지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가능성 확인”
제주도가 제주 4·3 세계화를 본격 시동한 가운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연계한 사업을 추진한다.
제주도는 제주4·3과 한강의 소설을 주제로 국제문학 세미나를 개최하고 소설 배경인 중산간 마을·학살터 등의 4·3 유적지에 대한 다크투어(역사 탐방)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21일 밝혔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제주4·3 당시 ‘해안에서 5㎞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로 간주해 총살한다’는 조치(소개령)와 계엄령 선포에 따른 중산간 마을 초토화 작전 등으로 인해 희생된 주민의 이야기가 다뤄졌다.
제주 서귀포시 가시리 등 중산간 피해 마을에는 4·3 유적지들이 산재해 있다.
현재도 4·3 당시 초토화작전 등으로 마을이 불탄 후 사라진 ‘잃어버린 마을’ 유적지와 학살터인 정방폭포 인근 소남머리·성산일출봉 주변 터진목, 수용시설인 주정공장 터, 주민들이 동굴로 숨어든 큰넓궤·다랑쉬굴 등이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를 꿈꾸는 역사탐방 유적지로 활용되고 있다.
또 동광마을, 의귀마을, 북촌마을, 금악마을, 가시마을, 오라마을, 소길마을, 아라마을 등 8곳을 걸으면서 4·3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제주4·3길’에도 많은 탐방객들이 찾고 있다.
조상범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제주4·3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제주4·3기록물의 세계유산등재 추진이 탄력을 받게 됐다”며 “제주4·3 관련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작가와 접촉해보려고 하고 있지만 한강이 밝힌 소신이 있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장은 “4·3이라는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 뒤에 가려진 아픈 역사를 조명한 ‘순이삼촌’ 현기영 작가와 ‘돌담에 속삭이는’ 임철우 작가, 한강 작가가 함께 제주와 서울 등에서 북콘서트를 하게 된다면 4·3 세계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피력했다.
앞서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 14일과 16일 ‘제주4·3기록물:진실과 화해에 관한 기록’을 주제로 각각 독일 베를린과 영국 런던에서 심포지엄을 열었다.
행사에는 현지 한국학 전문가, 역사, 경제,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현지 언론인, 학생 등 200여명이 참석해 제주4·3의 세계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특별전은 제주4·3의 역사적 맥락과 현대사적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했다. 전시는 4·3의 연대기를 통해 동서 현대사 속에서 제주4·3 발생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현기영의 ‘순이삼촌’,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등 4·3 관련 문학 작품을 전시해 문학을 통해 본 4·3의 의미를 전달했다.
과거사 해결을 위한 정부와 민간의 노력은 패널, 영상, 사진, 4·3피해조사서 등 기록물 복제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했다. 이를 통해 현지인들에게 비극적 역사와 기억 보존의 중요성, 제주4·3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유해 발굴 현장인 다랑쉬굴과 비설 조형물의 전시는 4·3의 실상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강력한 매개체 역할을 했다. 외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4·3 관련 영상을 제작해 현지인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또한, 동백나무 모양의 메시지 벽을 설치해 참관객들이 직접 희망의 메시지를 남길 수 있게 했다.
개막식에서는 김애숙 정무부지사의 개회사와 함께 독일에서는 임상범 주 독일 대한민국 대사, 독일연방의회 외교위원회 위원인 토비아스 바헐레가 축사를 했다. 영국에서는 김시운 주영국 대한민국 공사, 권오덕 대한노인회 영국지회 명예회장이 축사를 통해 제주4·3의 역사적 의미와 화해의 상생 정신을 공유했다.
◆한강 4·3 소재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전시 ‘주목’
이번 특별전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작가 한강의 4·3 소재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함께 전시돼 현지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많은 관람객들이 제주 방문단에게 한강 작가의 수상 축하를 전하기도 했다.
특히 참석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 것은 한강의 소설 내용과 유사한 아픔을 겪은 제주4·3유족회 문혜형 할머니의 증언이었다. 문 할머니는 75년 전 대구형무소에서 수감됐다가 6·25전쟁 중 행방불명된 아버지 문순현 씨가 남긴 편지를 소개했다. 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이 편지는 형무소 수감 중 배우자에게 보냈던 것으로, 4·3기록물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신청에 포함됐다.
김종민 이사장은 ‘4·3기록물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제주인들의 화해와 상생을 통해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과 맥을 같이 한다”며 “앞으로 이번 유럽 특별전을 계기로 제주4·3의 갈등 해결 과정을 세계적 기준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국제적 공감대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제주도와 평화재단은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4·3의 세계화를 위한 다양한 후속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10월 제주4·3평화포럼, 11월 국제4·3인권 심포지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홍보캠페인, 12월 사진전 등을 통해 4·3을 한국을 넘어 세계적 역사로 발돋움시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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