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의 여름이었다. 그 여름이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기운이 가득해지니 이젠 가을인가 싶다. 나뭇잎들도 오는 가을을 알리듯 제각각 제철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는다. 아직은 싱그러운 초록빛이 대지를 덮고 있지만 그사이에 노랑 빨강의 단풍이 자리를 잡아간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의 작품에서는 선명한 색채가 가을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그런데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그대로이기보다 작가의 마음을 담은 색채 같다. 느낌에 따라서 그린 것 같은 거친 붓 자국 색채들에 거칠게 찢긴 선과 형태들을 덧붙였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가을날 숲 속에서 느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
앙리 마티스와 함께 야수파 활동을 했던 블라맹크는 색이 자연을 나타내는 것을 넘어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림이란 설명적인 구체성보다 인간 내면의 느낌을 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티스 작품의 밝고 화사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작품으로 자신을 알렸다.
그림을 다시 자세히 보자. 바람이 몰아치는 음산한 정경을 배경으로 찢어진 형태들로 나타낸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선들은 끊어졌다 다시 연결되고 또다시 끊어지는 불연속적인 리듬을 이루고 있다. 색의 선택도 주관적인 기준으로 이루어진 듯 나무에는 강렬하고 거친 붉은색과 파란색을 칠했고, 주변 풍경의 색채들과도 부조화를 이루게 했다. 음산한 가을 풍경 속에서 느끼는 작가 자신의 마음의 고통이 느껴진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야수파는 과학과 물질문명이 이루지 못한 신비의 세계가 있으며 예술이 그것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블라맹크는 미술의 모든 원리나 교육을 경멸하며, 단지 느끼고 그릴 뿐이라는 말을 자랑처럼 하고 다녔다. 그래서 정상적인 자연의 모습보다 불균형과 부조화로 가득한 색채의 감각적인 표현으로 스산한 느낌을 구사했고, 선과 형태도 의도적으로 왜곡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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