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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선택, 유족까지 악영향… 지원 넓혀 악순환 고리 끊어야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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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08 06:00:00 수정 : 2022-09-07 23: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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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자살예방의 날’

한해 1만3000여명 스스로 목숨 끊어
충격 받은 유족 경제·사회 문제 직면

최근 심리 부검 면담 83.3% 우울 경험
유족 자살 위험 일반인보다 8배 이상 ↑

서울·인천 등 9개 지역서 유족 서비스
장례 절차 끝나면 심리·법률 등 지원

센터와 경찰·소방 유기적 연계 중요
“자살 유족 인지 즉시 서비스 제공을”

A씨의 배우자는 사업체를 운영하다 수십억원대 부채를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학생 자녀와 함께 남겨진 A씨는 막막함과 우울감에 시달렸고, 자신도 생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다. 그러다 자살유족원스톱서비스를 받으면서 삶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A씨는 원스톱서비스 전담팀의 도움으로 사망신고와 상속 포기 등 법률·행정적 처리를 진행했다. 자녀 학자금도 일부 지원받았다. A씨는 “원스톱서비스가 없었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며 “고인 사후 문제가 해결돼 희망을 갖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오는 10일 자살예방의 날이다.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1만3000명 안팎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더 큰 문제는 남은 사람들이다. 한 사람의 자살로 영향을 받는 사람이 최소 5명이라고 한다. 매년 6만5000명 이상의 유족이 발생하는 셈이다. 자살 유족은 정신적 충격과 여러 가지 경제·사회적 문제를 겪으며 삶의 의지도 약해지기에, 이들에 대한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

◆심리 상담부터 학자금 지원까지

7일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 따르면 자살 유족들은 ‘자살유족원스톱서비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2019년 9월 인천, 강원 일부 지역과 광주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지난 7월 인천·강원 전 지역, 서울, 대구, 제주, 세종, 충북, 충남으로 확대됐다.

서울 을지로 중앙자살예방센터. 연합뉴스

자살 유족이 발생하면 경찰·소방이나 주민센터 등은 자살예방센터(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락한다. 원스톱서비스 전담팀은 유족을 찾아가 위로의 말을 전하며 받을 수 있는 도움에 대해 개략적으로 설명하고 서비스 제공 동의를 받는다. 장례 등 절차가 끝나면 심층 면담을 통해 유족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한다. 애도 상담과 자조 모임, 정신건강치료비(1인 최대 100만원) 지원 등 심리 영역부터 법률적 지원이나 특수청소, 학자금(1인 최대 140만원) 연계 등 사회·경제적 영역까지 광범위하다.

2019년 9월∼2021년 12월 시범사업 지역에서 4만591건의 심리 상담이 진행됐고, 669명은 자조 모임에 참여했다. 환경·경제 지원과 치료비 지원은 각각 541가구, 254명에게 이뤄졌다.

자살 유족 지원이 필요한 이유는 이들이 일반적인 사망과 다른 복합적인 슬픔과 고통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데다가, 사회적 편견에 위축되면서 심각한 심리적 문제를 겪는다. ‘2015∼2021년 심리부검 면담분석 결과’를 보면 면담에 참여한 유족 952명 중 793명(83.3%)이 우울 증상을 경험했고, 이 중 580명은 중증 이상의 우울 상태였다. 수면 문제(71.4%), 음주 문제(20.6%)도 적지 않았다. 유족의 59.5%는 자살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국내외 연구를 보면 자살 유족은 자살 위험이 일반인보다 8배 이상 높다.

◆만족도 높아… 서비스 확대·개선 지속

원스톱서비스를 받은 이들은 큰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자녀가 숨진 뒤 B씨는 술에 의존하는 날이 늘었고, 또 다른 자녀도 형제를 잃은 상실감에 괴로워했다. 유족들은 전담팀을 통해 특수청소업체를 소개받아 비극이 발생한 방을 청소했다. 또 지속적인 애도 상담과 정신건강치료를 통해 서로 의지하며 가족들은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B씨는 식당을 개업하고 지역행정복지센터에 반찬을 기부하며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

C씨는 처음에는 지원을 거부했다. 외부와 차단한 채 식욕 저하 및 불면에 시달렸다. 전담팀의 설득으로 정신건강 치료를 받으면서 고통을 덜 수 있었다. C씨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내용이어서 서비스를 안 받았는데, 지원 덕분에 숨을 쉬고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업의 확대와 보완은 계속해나가야 할 과제다. 정부는 내년 전국 시행을 계획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경찰·소방과의 유기적 연계다. 지난달 자살예방법 개정으로 경찰·소방에서 당사자 동의 없이도 3일 이내 자살 고위험군 정보가 전달되지만, 경찰 조사 후가 아니라 조사 과정에서 전담팀이 유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상호 긴밀한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각 지역 센터는 정기적 교육, 우수 사례 포상 등 경찰·소방과 소통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서비스 이용에 지역적 제한이 있는 점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인천의 경우 발생한 자살 사건 중 유족이 원스톱서비스 사업 미실시 지역에 거주하는 사례가 60%가 넘는데, 이들에게는 심리 지원 외 다른 도움을 줄 수 없다. 전담팀이 출동하기에 물리적 제약이 있고, 예산도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같은 아픔을 가진 동료 지원가 양성에도 신경 써야 한다. 자살예방국가행동계획에 포함돼 양성 중이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다. 이들은 유족의 심리적 특성을 이해하기에 서비스를 설명하고 제공할 때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다.

김민혁 원주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첫 자살 유족을 인지한 단계에서 서비스로 유입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경찰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동료 지원가·전문 인력 등을 양성해 경험을 축적한 인력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족 스스로 극복 어려워… 전문 인력과 함께 고통 분담을”

 

“자살은 유족의 잘못이 아닙니다. 고통은 유족 스스로 극복하기 어렵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2019년부터 자살유족원스톱서비스를 운영해 온 강승걸 인천광역시자살예방센터장(가천대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7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살 유족들이 죄책감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사고로 인한 사망도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자살 유족은 더 큰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한다. 자신이 한 행동이나 말 때문이 아닐까 하는 미안함과 죄책감, 여러 문제를 남기고 떠났다는 원망과 분노, 자신을 비난하는 듯한 불편한 외부 시선에 따른 수치심 등 매우 다양한 감정을 겪는다. 이런 것들이 심리적·정서적 문제로 파생돼 또 다른 희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강승걸 인천광역시자살예방센터장(가천대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강 센터장은 “자살 사망은 한 가지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 스트레스 등도 이유가 되겠지만, 체질적인 부분이나 충동적인 부분도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며 “남은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그는 지난해 시민단체 ‘생명존중시민회의’가 해외 자료를 정리한 ‘자살 유가족 권리장전’을 소개했다. 권리장전은 △죄책감에서 벗어날 권리 △자살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않을 권리 △감정과 느낌을 표현할 권리 △살 권리 △희망을 유지할 권리 등 13가지다. 유족이 온전한 삶을 회복하고 사회와 주변 사람들도 잘못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그러나 유족 스스로 벗어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원스톱지원서비스도 이런 이유로 시작된 것이다.강 센터장은 “자살 유족은 자살 위험성, 정신질환 발생률이 상당히 높다”며 “특별한 관리 또는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유족들이 원스톱지원서비스라고 해서 접근했을 때 불편해하기도 하는데, 고인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고, 기억과 추억을 잘 정리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신과적 치료를 받고, 다른 유족들과의 자조 모임을 통해 같은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면 극복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시주거비, 법률·행정 처리 비용 등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면 심리·정서 상담으로 이끄는 데 장애물이 줄어든다”며 “어느 곳에서나 유족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지 않을 수 있도록 서비스가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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