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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맞선 민주화 상징… ‘타는 목마름으로’ 큰 반향

입력 : 2022-05-08 23:00:00 수정 : 2022-05-08 2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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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지하 투병 끝 별세

‘오적’ 발표로 투옥 후 풀려나
사형위기 넘기며 활발한 활동
‘죽음의 굿판…’ 칼럼으로 논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토지’ 故 박경리 사위로도 유명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 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타는 목마름으로’ 부분)

 

1975년 수많은 지식인과 대학생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타는 목마름으로’를 비롯해 필화사건을 초래한 ‘오적’ 등을 창작하며 군사정권과 정면으로 맞섰던 김지하(본명 김영일) 시인이 8일 별세했다. 향년 81세.

 

시인은 최근 1년여 동안 투병생활을 한 끝에 이날 오후 4시쯤 강원 원주시의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계했다고 토지문화재단 관계자가 전했다.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목포중학교 2학년 재학 시절인 1954년 아버지를 따라 원주로 이주했고, 원주중학교와 서울 중동고를 거쳐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비’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하’는 필명으로,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 이후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의 상징이자 대표 문인으로 주목받았다. 1970년 정치인과 재벌, 관계의 부패와 비리를 질타한 담시 ‘오적(五賊)’을 ‘사상계’에 발표해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투옥됐다가 풀려났다. ‘오적’이란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다섯 부류를 가리킨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못해 문들어져 오리(汚吏)가 분명쿠나/ 산같이 높은 책상 바다같이 깊은 의자 우뚝 나직 걸터앉아/ 공(功)은 쥐뿔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 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 돼, 안 될 것도 문제 없어, 책상 위엔 서류뭉치, 책상 밑엔 지폐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청(請)해먹고…”(‘오적’ 부분)

 

1970년 12월 첫 시집 ‘황토’를 출간한 그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체포된 후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1980년대 이후에는 후천개벽의 ‘생명 사상’을 정립하는 데 몰두했고,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상상력으로 많은 시를 쏟아냈다. 특히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경찰에 맞아 숨지고 이에 항의하는 분신자살이 잇따르자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칼럼을 기고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생명 존중에서 비롯된 칼럼이었지만, 당시 진보개혁세력과 맞서는 모습이 되면서 변절 논란이 일었다.

 

대표작으로는 시집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애린’ 등과 산문집 ‘생명’ ‘율려란 무엇인가’ ‘흰 그늘의 길’ 등이 있다. 2018년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마지막으로 절필을 선언했다.

 

1975년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 로터스상, 1981년 국제시인회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비롯해 이상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받았다.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다.

 

1973년 대하소설 ‘토지’를 쓴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와 결혼해 아들 둘을 두고 있다.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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