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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리면 쏜다”… 김정은이 군복 입고 “핵, 핵, 핵” 외친 이유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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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4-30 06:00:00 수정 : 2022-04-30 10:4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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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선제 핵공격 공개 선언… ‘핵 독트린’ 깨버려
핵전쟁 확대 계기 먼저 잡아 주도권 장악 의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 참석, 손을 들어 경례를 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 없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 연설의 키워드는 핵무기였다.

 

국제사회의 전방위 압박과 제재 속에서도 지난 10년간 핵과 미사일 전력 구축에 총력을 기울였던 북한은 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핵무기 사용에 대해 세부적으로 언급하며 미국, 중국 등 핵보유국과 동등한 지위에 있다는 점을 과시했다.

 

연설문을 세밀하게 뜯어보면 한 가지 특이한 부분이 눈에 띈다.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뒤집어 말하면 “근본이익을 침해하면 핵공격을 하겠다”는 뜻이다. 

 

기존 핵보유국은 ‘상대가 우리를 핵공격하지 않는 한 먼저 핵을 쓰지 않는다’는 기조를 내세운다. 비핵국가에게는 ‘핵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니 핵 개발에 나서지 말라’는 의미를, 핵보유국에게는 ‘전쟁 상황에서도 핵을 쓰지는 말자’는 의미다. 

 

그런데 북한은 선제 핵공격을 공개 선언했다. 핵보유국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핵 독트린을 깨버린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핵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는 계기를 먼저 잡아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뜻이다. 한미 연합군이 갖고 있는 전력 우위를 근본적으로 뒤엎겠다는 의지다.

지난 25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극초음속미사일 화성-8형이 이동식발사차량에 실린 채 이동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전쟁이 벌어져도 지는 싸움은 안한다”

 

핵무기를 더 많이 가진 쪽이 핵전쟁에서 이긴다. 이는 냉전 시절부터 당연한 이치로 굳어져온 핵전쟁 교리 중 하나다. 양적, 질적으로 우위에 있는 핵보유국은 핵전쟁의 확산을 결정한 주도권을 지닌다. 반면 열세에 있는 핵보유국은 보복을 의식, 핵공격을 시도하는데 주저하게 된다.

 

북한이 미국령 괌과 본토를 겨냥해 중장거리 미사일을 계속 발사했지만, 미국이 고강도 대응을 하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핵탄두 숫자에서 미국이 압도적이므로 북한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전략은 미국의 인식에 있는 빈틈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근본이익’이라는 것은 매우 추상적 개념이다. 군사적, 비군사적 의미가 모두 포함된다. 대북 제재에 의한 경제난 등도 근본이익 침해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은 추상적이고 애매한 개념을 앞세워 선제 핵공격 범위를 대폭 늘렸다. 미국이 핵무기 규모를 이용해 핵전쟁 주도권을 장악한다면, 북한은 언제든 선제 핵공격을 감행해 미국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겠다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핵무기의 다종화, 다양화다. 북한이 ICBM으로 워싱턴을 선제 핵공격하면 미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격할 것이다. 이는 김정은 정권의 멸망을 뜻한다.

 

하지만 위력이 작은 전술핵을 전시 미 증원군이 들어올 부산항이나 한미 연합 군사시설 등에 사용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전술핵공격을 전략핵무기로 반격하면 전쟁의 확산이 불가피하다.

지난 25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미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차량에 실린 채 이동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따라서 미국은 전술핵으로 북한군을 공격하는 수준에서 반격을 끝낼 수밖에 없다. 이른바 제한핵전쟁이다. 이를 위해서는 핵배낭부터 전략핵탄두에 이르는 모든 종류의 핵무기를 미리 갖춰야 한다.

 

이같은 제한핵전쟁은 한미가 대북 군사행동에 나서기 전에 북한의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의식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전쟁이 벌어지면 언제든 핵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군사행동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를 통해 북한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김정은 정권은 지킬 수 있는 셈이다. 

 

북한이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전술핵 개발을 천명한 것도 이같은 ‘주체 핵전략’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이는 중국, 인도, 러시아, 미국 등 기존 핵보유국들의 핵무기 개발 과정과도 맞물려 있다. 핵개발 초기에는 가상 적국 수도 공격에 초점을 맞춰 전략핵무기를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이같은 전력 구축이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판단되면,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전술핵 등의 무기 개발에 나선다. 이를 통해 전술적, 전략적 차원의 핵무기를 확보해 전쟁에서 쓸 수 있는 핵옵션을 최대치로 늘린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다만 선제 핵공격이라는 미치광이 전략이 추가됐을 뿐이다. 이 전략은 한반도 정세와 북미 관계를 흔드는 강력한 잠재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예사롭게 볼 수는 없다.

지난 25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이 이동식발사차량에 실린 채 이동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공격적 성격 강해진 북한, 저지할 방법 있나

 

북한의 이같은 전략은 2016년 노동당 7차 대회에서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당시 북한은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핵으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이미 천명한 대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근본이익이라는 개념 대신 자주권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제외하면 김 위원장의 열병식 연설과 유사하다.

 

반면 지난해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는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우리를 겨냥해 핵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남용하지 않을 것을 다시금 확언한다”고 밝혔다. 기존 핵보유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기조였다.

 

대신 군사정찰위성과 무인정찰기 등 감시정찰분야 전력증강 방침을 밝혔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열병식에선 당 7차 대회 수준으로 바뀌었다. 앞서 올해 초에는 군사정찰위성을 배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윤석열정부의 대북 선제타격 기조에 맞서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는 길을 열겠다는 뜻이다. 

지난 25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극초음속미사일이 이동식발사차량에 실린 채 이동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의 극초음속미사일과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 미니 SLBM은 핵무기를 탑재할 잠재력을 갖췄다. 빠른 속도와 활공능력을 발휘해 한미 연합군의 미사일방어망을 돌파할 수 있다.

 

군사정찰위성과 무인정찰기 등이 추가되면 선제 핵공격을 감행하는데 필요한 수단을 어느 정도나마 갖출 수 있다. 단순한 위협용이 아닌, 실전에서 사용 가능한 핵무기를 앞세운 ‘북한판 킬 체인’이 모습을 드러내는 셈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한미 연합군에 상당한 고민을 안겨준다. 북한이 핵무기를 다양화, 다종화하면서 탑재 플랫폼을 늘려가면, 한미가 감시해야 할 범위는 한층 넓어진다. 

 

수백대가 넘는 이동식발사차량(TEL)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려면 감시정찰 자산을 대폭 늘려야 하는데, 이는 단기간 내 해결하기가 어렵다.

 

북한이 어떤 과정을 거쳐 핵무기를 사용할 것인지, ‘근본이익 침해’를 북한 전쟁 지도부는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이는 북한 권력 핵심부에 접근해야 알 수 있다.

 

미국의 지원을 받거나 상호 정보공유를 강화하는 방법이 있지만, 미국이 정보공유를 얼마나 진행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북한군 TEL을 포착해도 문제는 남는다. 매우 짧은 시간 동안 북한군 TEL이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것인지, 단순한 무력시위인지를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지난 25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KN-23 개량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이동식발사차량에 실린 채 이동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은 탄도미사일 발사 준비를 진행하다가 돌연 철수하거나, 주요 간선도로에 TEL을 등장시키는 등의 기만술을 사용한다. 또한 전자전부대를 운용하면서 우리측 감시자산에 대해 전자전을 시도할 수도 있다.

 

북한의 기만술을 간파하지 못한 채 의사결정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군의 감시정찰 자산과 정보판단 프로그램, 지휘통제 시스템 등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한국형 3축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언급만으로는 부족하다.

 

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맞아 김 위원장이 밝힌 핵 사용 원칙은 미 본토를 타격할 ICBM 능력과 더불어 한반도에서도 핵무기를 사용하는 길을 활짝 열겠다는 의지다. 남한을 핵공격 사정권에 넣겠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에 골고루 탑재해 전쟁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북한의 의도를 한미가 저지할 수 있을까.

 

미군이 한반도에 전략자산을 거듭 전개했지만,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는 못했다. 지난달 북한의 ICBM 발사 직후 미국이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일대에 투입하지 않은 것은 기존의 전략자산 전개 카드가 실효성을 잃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핵무기로 워싱턴과 서울을 위협하는 김정일 시절의 전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핵무기 고도화와 전략 개발 등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가 ‘근본이익’이란 개념과 전술핵이다.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 준비를 마친 북한의 행보가 남한에 미칠 영향이 우려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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