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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지자체 공무원의 줄서기 악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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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4-04 23:07:23 수정 : 2022-04-04 2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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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서울시 출입 시절 공무원의 ‘은밀한 줄서기’는 지방선거 직후 논공행상(論功行賞)식 선심성 인사나 보복성 인사로 귀결됐다. 정부는 “미리 살피고 감시해야 한다”고 했지만 빈말에 그쳤고, 선거 이전부터 줄 세우기에 나선 단체장이나 후보자들의 구태도 피할 수 없었다.

민선 4기 출범 이후 서울의 모 구청에선 부구청장을 비롯해 국·과장 등 간부 직원 25명이 강제 전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민선 5기에도 보궐선거로 당선된 모 구청장이 특정 지역 ‘솎아내기’에 나서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4·5급 간부공무원 13명에게 전출을 종용했는데 이 중 12명이 호남 출신이었다. 전출 통보를 거부한 일부 국장과 동장은 대기발령을 받았고, 강당에 놓인 책상으로 출근하는 서글픈 장면이 연출됐다. “특정 지역 출신이란 게 무슨 죄냐”며 분통이 터져 나왔지만, 해당 구청장은 “(직원 중) 특정 지역 편중 현상이 심해 이를 해소하려는 전보 인사”라고 반박했다.

오상도 사회2부 차장

서울 지역 다른 구청에서 근무하던 지인 A도 민선 5기 들어 사실상 강제 전출을 당했다. 지근거리에서 일하던 전임 구청장이 3선 도전에 실패하자 홍보팀장이던 그는 외곽에서 산림 감시를 맡게 됐다. 후임 구청장이 표적 삼아 좌천 인사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날 A가 하소연을 해왔다. 정년 퇴임을 얼마 남기지 않아 다니던 직장에서 공직을 마무리하길 원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압박’을 견디지 못한 A는 스스로 인근 구청으로 전보를 택했다.

오는 6월1일 치러지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중립’과 ‘공직기강’은 화두이다. 행정안전부도 특정 후보자에 대한 줄서기와 내부자료 유출 등 지방공무원의 개입 행위를 집중 감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공무원의 줄서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고질적 병폐로 보인다. 개인의 양심과 자질을 탓하기에 앞서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끼리끼리’ 문화를 바로잡지 못한 위정자의 책임이 크다. 선거 때마다 이를 부추긴 당사자 역시 단체장 아니었던가. 특정 무리에 소속돼 보험을 들어놓지 않으면 선거 이후 도태될 것이란 불안감과 학습효과 역시 공무원들을 암묵적 선거 운동으로 이끈 요인으로 풀이된다.

어느덧 경기도로 온 지 만 2년이 됐다. 이곳에서 처음 맞는 지방선거에서도 이 같은 미묘한 분위기는 다소 감지된다. 어느 기초단체장이 특정 지역이나 학교를 선호한다든지, 어느 고교 출신이어야만 시장 측근이나 핵심 간부가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종종 회자된다.

공직선거법 60조는 공무원의 선거 관여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이후 여태 고질병을 치유하지 못했다면 차라리 선거 중립을 깨고 법정 한도 내에서 공무원의 선거 참여를 일부 허용하는 건 어떨까. 이도 아니라면, 선심성 혹은 보복성 인사를 막을 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하다. 선출직의 악의에 휘둘리지 않고 ‘늘공’(직업공무원)의 선의가 정당하게 평가받을 방어막이 없다면 어떻게 주민복리를 위한 행정이 이뤄질 수 있겠는가.


오상도 사회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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