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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창구 '점심시간 휴무제'…밥 먹을 권리 vs 민원인 불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력 : 2021-11-23 06:00:00 수정 : 2021-11-23 08: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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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지자체 현장은

광주, 7월 광역시 최초로 실시 주목
12시되자 출입구에 ‘점심시간’ 팻말
사무실 소등하고 1시간 업무 ‘멈춤’
“예전엔 밥도 못 삼키고 일해… 환영”

직장인들 대면업무 처리 어려움 호소
“점심시간에 매매계약 등 몰리는데…”
부동산 중개업계도 업무 차질 우려

도입 4년 양평 “지속 홍보에 성패 달려
불만 모니터링·다양한 대안 모색 중”
민원창구 점심휴무제 시행 넉달째인 19일 광주 동구 지산1동 행정복지센터가 점심시간을 맞아 소등과 함께 접근 차단선이 쳐진 채 텅 비어 있다. 광주=한현묵 기자

지난 19일 낮 12시5분 광주시 동구 지산1동 행정복지센터. 마지막 민원인이 상담을 마치고 나가자 출입구에는 ‘점심시간 휴무제’를 알리는 팻말이 내걸렸다. 민원 접수창구 앞에는 3m 정도 길이의 빨간색 줄을 연결하는 두 개 차단봉이 설치됐다. 민원인의 출입을 막는 선이다. 곧이어 행정복지센터 사무실의 모든 불이 꺼졌다. 직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민원 업무를 보던 담당자 4명도 다른 직원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시간, 민원 업무도 잠시 멈췄다.

민원 담당자가 교대로 점심식사를 하던 두 달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이날 낮 12시 전후 민원인들 발길도 뚝 끊겼다. 이 행정복지센터는 법원 부근에 위치해 가족관계증명원 등 하루 민원 발급 건수가 150건이 넘는다. 점심시간에만 50건가량의 민원이 몰린다. 민원창구 점심시간 휴무제 시행 전 민원 담당자는 점심식사를 거르기 일쑤였다.

◆법으로 보장된 점심시간…왜 굶어야 하나

광주시 5개 지자체가 지난 7월1일 이후 전국 광역시에서는 처음으로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행해 주목을 받고 있다. 22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광주지역본부와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민원창구의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행하는 지자체는 광주시 5개 지자체와 경기 양평·양주·오산, 충북 보은, 충남 부여, 전북 남원, 전남 순천·무안·담양·장성·곡성·고흥, 경남 고성 등 18곳이다.

고성군과 양평군이 2017년 전국에서 가장 먼저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행했다. 경기 화성시는 지난해 1월부터 시범실시하고 있다. 점심시간 휴무제 대상은 민원 업무를 처리하는 지자체 민원실과 교통과·세무과, 행정복지센터 민원담당 부서 등이다.

광주시 5개 지자체가 지난 7월 전면 시행에 들어가면서 점심시간 휴무제가 전국 지자체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기초단체에서 광역단체로 이어지면서 전국 지자체로 확대되고 있다. 부산시와 16개 자치구, 경남도와 18개 시·군 공무원 노조는 내년 1월 시행을 목표로 단체장들과 점심시간 휴무제 도입을 둘러싼 교섭을 벌이고 있다.

점심시간 휴무제는 지방공무원 복무규정에 명시돼 있다. 복무규정 제2조에는 ‘공무원의 1일 근무시간은 9시부터 18시까지로 하며, 점심시간은 12시부터 13시까지로 한다. 다만, 단체장은 직무의 성질, 지역 또는 기관의 특수성을 고려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1시간 범위 내에서 점심시간을 달리 정해 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모든 공무원은 점심 1시간의 휴식권을 법으로 보장받아야 한다. 민원담당 공무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단체장의 지시에 따라 민원 담당자는 점심시간 1시간을 30분씩 나눠 식사하는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광주지역본부 박수진 지부장은 “민원담당자의 점심시간 근무는 근무외 시간으로 시간외 수당 청구도 하지 못한다”며 “그동안 민원인 불편을 고려해 담당 공무원들이 정신적 피로 등을 감수하면서 관행적으로 점심시간에 교대근무를 해왔다”고 말했다.

짧은 점심시간에 민원인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민원 담당자들은 제때 교대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행정복지센터 사회복지민원은 업무 특성상 상담이 길어져 시간을 맞춰 교대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시간에 쫓겨 사무실 한켠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아예 점심을 거른 경우도 있다.

광주 남구 봉선1동 행정복지센터의 한 직원은 “점심시간에 대기번호표가 계속 뽑아지고 민원인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밥먹으러 간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며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점심을 거르고 오후에 일하는 민원 담당자들의 경우 배고픔과 피로 누적 등으로 업무에 집중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밥 먹을 권리냐? vs 민원인 불편이냐?

민원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점심시간 휴무제 시행을 반기는 분위기다. 동료 직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데다 그 시간만큼은 편안하게 쉴 수 있어서다. 광주 북구청 민원담당 직원은 “점심을 먹다가 민원인이 오면 밥을 미처 삼키지 못하고 나올 때가 있다”며 “점심시간 휴무제 시행 이후에는 업무 집중도와 능률이 올랐다”고 말했다.

점심시간 휴무제의 사전 홍보가 비교적 잘돼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민원인들의 불만이나 불편이 크지 않다는 게 공무원노조 광주본부의 판단이다. 공무원노조와 지자체, 행정복지센터는 시전에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금융기관 등 공공 및 민간기관에 공문을 발송해 점심시간 휴무제 시행을 알렸다.

공무원노조 광주본부는 1년 이상 5개 구청장과 협의를 거치면서 점심시간 휴무제 시행으로 우려되는 민원인 불편 해소에 나섰다. 광주 5개 지자체는 행정복지센터에 비대면으로 각종 민원서류 100여종의 발급이 가능한 무인민원발급기 74대를 추가로 설치했다. 고령층의 원활한 민원발급기 사용을 위해 행정복지센터에 ‘공공근로 도우미’를 배치했다.

이 같은 대책에도 민원인들의 불편과 불만은 여전하다. 간단한 서류 발급은 인터넷이나 무인발급기 등 비대면으로 가능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감증명과 여권발급, 전입신고 등 민원창구에서 대면으로 처리해야 하는 업무의 경우 점심시간에는 불가능해 민원인들 불만이 잇따르는 상황이다.

부동산 중개인들도 점심시간 휴무제의 불편을 호소했다. 광주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박모씨는 “아파트와 주택 매매 시 직장인 대부분이 점심시간을 이용한다”며 “부동산 계약 시 인감증명서 발급과 서류 확인이 필요한데 점심시간에 이런 일을 하지 못해 중개업무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점심시간을 이용해 각종 민원서류를 떼 온 직장인들은 “민원서류를 발급하기 위해 외출이나 휴가를 내야 하느냐”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점심시간 휴무제 도입 4년째인 경기 양평군은 시행 초기에 혼란이 있었지만 6개월가량 지나면서 정착됐다는 평가다. 일부 주민들은 점심시간에 꼭 처리해야 하는 시급한 민원의 경우 처리를 못해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양평군 관계자는 “점심시간 휴무제의 성패는 주민들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에 달려 있다”며 “민원인 불편을 줄이기 위해 모니터링과 함께 다양한 대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행안부는 지난 8월 장관 주재 중앙·지방정책협의회에서 점심시간 휴무제를 안건으로 상정했다. 행안부는 점심시간 휴무제 시행이 지자체 권한이지만 민원인들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인감증명과 여권 등 대면 발급이 필요한 경우 사전예약제를 시행하고 무인민원발급기의 실외 설치, 시행 전 충분한 홍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점심시간 보장 17년 걸려…양질 서비스 제공 계기” 

 

“철저한 준비로 민원인 불편을 최소화했습니다.”

 

지난 7월 광주 5개 지자체의 민원창구 점심시간 휴무제 시행을 주도한 전국공무원노조 광주본부동구지부 김대현(사진) 지부장은 민원 담당 공무원들이 온전히 점심시간을 보장받기까지 17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광주본부 차원에서 2004년 처음으로 민원창구 담당자의 점심휴무제를 구청장협의회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며 “하지만 당시 주민들의 거부감과 반대 등으로 추진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광주본부가 본격적으로 점심휴무제를 꺼낸 것은 지난해 6월. 김 지부장은 “점심휴무제가 시장 공약사항인 데다 행정복지센터 순회 때 점심을 굶는다는 직원들의 민원을 들었다”며 “광주본부에 점심시간 휴무제를 제안하고 구청장협의회 안건으로 상정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지난해 공무원노조 광주본부와 구청장협의회는 2021년부터 점심시간 휴무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올 들어 점심시간 휴무제는 3월에서 5월로, 다시 7월로 세 번이나 연기됐다. 지자체가 무인민원발급기 확충과 일부 업무 제약 등 현실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기를 요청했다.

 

김 지부장은 “민원인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수막과 손팻말, 전화연결음 등을 통해 사전에 점심시간 휴무제를 알리는 홍보에 집중했다”며 “민원인 불편이 우려된다고 복무규정에 나오는 공무원의 휴식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법에 보장된 권리인데도 그동안 각 지자체가 소홀히 해온 경향이 있다”며 “점심시간 휴무제 실시로 일선 공무원들이 양질의 민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기 화성시가 올 1월부터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범운영한 것과 관련해 김 지부장은 “모든 ‘면’이 아닌 일부 면·동에서만 시행해 ‘풍선효과’라는 부작용을 낳았다”며 “점심시간 휴무제는 전면적으로 실시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조언했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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