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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에너지 부족 초비상… ESG, 뛰기도 전에 발목 잡히나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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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13 22:00:00 수정 : 2021-11-13 22: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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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탄소 역설 ‘그린플레이션’

물류난·생산차질 속 원자재값 급등
산업 연쇄적 타격… 물가 상승 파장
일부國 화석연료 소비 다시 늘리기도

경제정상화 나아가려는 시점에 위기
“먹고 살기도 힘든데” ESG 회의론도
전문가 “결국 가야 할 길 인식 지배적”
사진=AFP연합뉴스

탄소중립, 탈탄소를 선언하며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자 했던 세계 경제가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며 화석연료를 탈피하자’, ‘내연기관차 시대에서 전기차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 등의 내용은 더 이상 논란이 아니라 명제가 됐지만, 실제 상황은 너무도 다르다. 세계 각지에서 연료 및 에너지 부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탄소중립에 앞장서던 선진국들도 임기응변으로 다시 석탄과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소비를 늘리고 있고, 자원부국들도 제 코가 석 자다. 신흥국에서는 물류난과 생산 차질 등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현 인류에게 탄소체제가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은 ‘그린플레이션(그린인플레이션)’으로 불리며 많은 국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친환경에너지(그린) 수요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여러 산업이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으며 경제 전반의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셈이다. 이미 2년에 가까운 시간을 ‘코로나19’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는 데 소모한 뒤 경제 정상화로 막 이행하는 시점에 닥친 터라 더욱 뼈아프기만 하다.

 

이에 따라 친환경 정책이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등에 대한 회의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과거에도 여러 번 그랬듯 ‘먹고 살기 급급한 판에 무슨 배부른 소리냐’라는 것이다. 작금의 상황에 대해 큰 위기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일시적인 것으로 극복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탈탄소라는 청사진이 다시금 기로에 섰다.

 

◆코로나19 터널 빠져나오니 원자재 가격 상승

 

12일 국제 통계 사이트 인덱스문디 등에 따르면 지난 5일 1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F)는 배럴당 81.27달러를 기록했다. WTI는 지난달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한 이후 이달 들어서도 좀처럼 80달러 밑으로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올해 초(1월 평균가격)와 비교하면 40% 가까이 오른 수준이다.

 

석유 대체재로 꼽히는 천연가스 가격도 고공행진이다. 글로벌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 5일 기준 MMbtu(열량 단위)당 5.516달러로, 연초 대비 두 배 넘게 올랐다. 유럽의 경우 전력발전의 16%가량을 담당하던 풍력발전에 차질이 생기면서 전력 생산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천연가스 발전소 가동률을 높인 부분이 천연가스 가격을 끌어올렸다.

 

세계 최대의 석유·천연가스 생산국인 미국의 경우 두 자원의 가격이 급격히 오르면서 석탄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은 올해 미국 내 석탄 사용량이 5억3700만t으로 전년 대비 23% 이상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석탄 사용량이 증가하는 것은 2013년 이후 8년 만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친환경 정책을 앞세워 당선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러한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미국이 석유, 유럽이 가스 가격으로 신음하고 있다면, 중국은 석탄으로 인해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중국 또한 코로나19 사태를 빠져나와 경제 정상화를 모색하며 에너지 수요가 폭증했는데, 여기에 호주와 외교분쟁에 따른 석탄 수입 감소와 폭우와 같은 각종 자연재해로 인한 탄광 폐쇄 등 여러 상황이 겹쳤다. 이로 인해 지난 9월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은 1년 전 대비 10% 넘게 상승하며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96년 이후 25년 만에 최고치를 새로 썼다.

 

지구촌 인구의 다수가 집중된 북반구에 곧 겨울이 닥친다는 점도 위기감을 더욱 끌어올리는 요소다. 겨울철 난방 등으로 이들 화석연료 수요는 결코 줄어들 수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경기 회복이 탄력을 받을수록 에너지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난감한 대목이다.

원자재 상승은 에너지원인 화석연료에 국한되지 않았다. 전기차·배터리 등 친환경 산업 확장에 따른 수요가 지속 상승할 전망이다. 반면, 친환경 규제 여파와 콩고를 비롯한 주요 생산국의 정세 불안정으로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구리, 니켈 등 금속자원 가격이 치솟았다. 지난 5일 기준 구리 가격은 t당 9587달러로 연초와 비교해 20% 가까이 올랐다. 알루미늄은 t당 2595.75달러로 연초 대비 30%가 올랐다. 알루미늄 또한 전기차나 태양광 패널의 주요 소재로 쓰이는데, 생산 과정에서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하는 금속이다. 세계 최대 산지인 중국 정부가 환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규제에 나서면서 가격 상승이 더욱 가팔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아연 등 다른 원자재의 가격 상승으로 영향이 미치고 있다.

 

◆에너지·농산물·요소수까지… 부족 도미노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전력 생산 등 각종 에너지 생산 및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뿐 아니다. 농산물 등 생활필수품의 상승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우선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비료 가격 상승을 촉발했다. 비료의 핵심 재료인 암모니아가 천연가스에서 추출되기 때문이다. 치솟는 천연가스 값을 감당하지 못해 유럽에서 주요 생산기업들이 생산 감축에 나섰고, 비료 원료 최다 생산국인 중국은 수출을 제한했다.

 

이 같은 비료값 상승은 결국 농산물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 밀의 지난 9월 평균가격은 t당 269.73달러로 지난해 10월 대비 30% 넘게 올랐다. 면화의 경우 지난 9월 ㎏당 평균가격이 2.29달러로 지난해 10월 대비 40% 가까이 상승했다. 비료값 상승으로 인한 타격이 식생활과 의생활에까지 미친 것이다.

12일 오후 경기 부천시 한 주유소에 요소수 품절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요소수 부족 사태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요소는 석탄이나 천연가스에서 암모니아를 추출해 생산한다. 중국이 석탄 가격이 급등한 이후 요소 수출제한에 나서면서 물량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던 우리나라가 초유의 물류난을 겪게 된 것이다. 사태 초기에 정부가 요소수를 긴급 수입하기 위해 군수송기까지 동원하면서 요소 값보다 연료비 지출이 더 큰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요소수 대란은 유럽 각국에서도 발생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유럽에서 2015년 배출가스 규제인 ‘유로6’가 도입되면서 디젤차 운행에 요소수가 필수품이 됐지만, 이번 사태로 친환경 정책이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친환경정책, 순항할 수 있을까

 

물가 상승을 비롯한 현실 문제가 닥치면서 국가별로 친환경 정책을 비롯한 ESG 경영에 대한 반감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금리 인상 등 코로나19 탈출과 관련한 금융정책이 아닌 원자재 상승으로 인한 변동성이 확대됨에 따라 국가경제와 기업활동, 가계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영향이 미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재계 단체 등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제시된 이후에도 재계와 산업계에서는 “IMF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등 과거 경제위기 때보다 원자재 가격 상승 폭이 커 기업이 대응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직까지 제조업 기반의 수출 현실을 고려할 때 기업활동과 국민의 삶, 일자리 등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사진=AP연합뉴스

경영계를 중심으로 화두였던 ESG 경영 또한 동력을 잃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기업의 수장과 임원진이 총동원돼 ESG 경영 실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올해 중반이 넘어가면서 마케팅 등 여러 측면에서 관심이 덜하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초 ESG에 대한 학습이 덜 된 상태에서 당위성을 부르짖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기업과 산업별로 학습하면서 내실을 다지는 분위기”라며 “보다 실질적인 대응에 나서는 시기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선을 앞두고 정부의 관심도 시들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녹색금융의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올해 초 조직개편 과정에서 녹색금융 전담부서를 임시조직으로 발족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조직은 최근 다시 사라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올해 초 녹색금융 기본계획 등 정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임시조직이 원래대로 되돌아간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ESG에 대한 관심도가 하락하는 과정에 금융위원장 교체 등이 맞물리며 전담조직이 사라졌다는 부분에 업계에서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기존에도 별다른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던 정부가 전담조직마저 없앴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상황에도 친환경은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 SK증권 이효석 연구원은 “탈탄소 경제 전환 시나리오들을 살펴보면 예외 없이 에너지 가격 상승 부분이 반영돼 있다”며 “최근 나타나는 그린플레이션 부분도 어느 정도 반영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코로나19 발발 이후 ‘경제도 어려운데 무슨 전기차냐’ 했던 것처럼 올겨울에도 ‘추워 죽겠는데 무슨 ESG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만, 결론은 ‘에너지 가격이 상승해도 탈탄소는 가야 한다’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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