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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세종을 기억하는 유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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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08 22:53:47 수정 : 2021-10-08 22: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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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영릉.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오늘은 세종이 1443년 12월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 3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이를 반포한 575주년 한글날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1446년 9월 상한(上澣, 1~10일)에 훈민정음을 반포했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9월 10일을 양력으로 계산한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세종은 집현전의 설치, 자격루 등 과학기구의 발명 등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우리글 훈민정음의 창제는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이다. 훈민정음 반포 후 세종은 용비어천가를 노랫말로 지어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하기도 했다. 1만원권 지폐에 있는 세종의 초상 오른쪽에 ‘불휘기픈 남간’으로 시작하는 용비어천가 2장이 기록돼 있는 것도 찾아보기 바란다. 한글이 점차 보급되면서 백성들은 자신의 생각과 뜻을 글로 적을 수 있게 됐고 억울한 민원도 해소할 수 있었다.

세종은 1397년 4월 10일 한양의 북부 준수방, 현재의 서촌 지역에서 태어났다. 스승의 날로 기념하고 있는 5월 15일은 세종이 태어난 4월 10일을 양력으로 계산한 것이다. 서촌의 통인시장 인근 사거리에 세종대왕 탄생지라는 표지석이 있는 것은 이러한 연고 때문이다. 경복궁은 세종과 특히 인연이 깊은 궁궐이다.

1418년 상왕인 태종이 참석한 가운데 근정전에서 즉위식을 올렸고, 집무 공간 사정전, 침전 강녕전에서 주로 생활을 했다. 태종 때 건립한 경회루는 세종이 자주 휴식을 취한 공간이었다. 경회루 남쪽에 있는 현재의 수정전 자리에 세종은 집현전을 건립했다. 이곳에서 배출된 인재인 성삼문, 신숙주 등은 훈민정음 반포에 큰 공을 세웠다.

세종은 자신의 무덤 자리를 생전에 정한 왕이기도 하다. 아버지 태종의 무덤(헌릉)이 조성된 곳 서쪽에 묻힐 곳을 미리 정해 놓았고, 사후 이곳에 묻혔다. 그러나 이곳이 풍수지리적으로 문제가 있음이 계속 지적되고 문종, 단종, 의경세자 등 적장자 출신이 연이어 요절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예종은 세종의 무덤을 경기도 여주로 옮겼다. 세종의 영릉(英陵)이 여주로 옮겨지면서 여주시는 세종대왕과 인연이 깊은 도시임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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