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언론법 침묵 文, 여야 합의에 한숨 돌려…비판 여론 부담 여전

입력 : 2021-08-31 13:11:27 수정 : 2021-08-31 13:11:2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언론 자유·독립 공약했던 文…조국 사태 후 언론 책임 강조
與, 입법 폭주 과정 지켜본 靑…절차적 정당성 훼손에 '중재'
여야, 언론중재법 본회의 상정 제외…文, 거부권 부담 덜어

"언론이 없는 좋은 사회보다 나쁜 언론이 있는 사회가 낫다는 말처럼,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정당한 보도와 평가에 대한 가치는 존중해야 한다. 그런 태도는 예전부터 갖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발간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문재인이 답한다' 속에서 밝힌 대(對) 언론관을 기초로 놓고보면 현재 여당 주도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처리에 침묵으로 일관할 수 밖에 없는 대통령의 입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언론 자유의 필요성을 일관되게 주장해 온 자신의 철학과 정면 배치되는 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추진되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는 데 궁극적인 고민이 닿아있다. 삼권분립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게 청와대가 내세우고 있는 표면적 명분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생각하는 것 만큼 상황이 단선적이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 편성 국면에서 국회가 파행을 거듭할 경우 국정운영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대통령과 청와대로 돌아오게 된다는 점에서다.

 

"국회에서 논의할 사안"이라며 여당 발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에 철저하게 선을 그어오던 청와대가 물밑으로 중재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철희 정무수석은 여야 협상에 난항을 겪던 지난 30일 국회를 찾아 윤호중 원내대표에게 법안 처리에 관한 청와대의 입장을 전달했다.

 

이후 민주당은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뼈대는 유지한 채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과 기사열람청구권을 원안에서 삭제하는 절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서 거부하며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31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법안 자체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보다는 국정운영의 입장에서 언론중재법 갈등으로 인한 정기국회 파행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이라며 특히 "백신과 방역이 포함된 내년도 정부 예산안 처리 국면에서 국회 대치 상황에 대한 우려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부적으로는 지난 25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는 과정에서부터 적잖은 우려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의원이 퇴장한 가운데 여당 단독 처리로 법사위 문턱을 넘은 것이 절차적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과거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 추진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처리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윤 총장이 추후 징계위 결과에 불복할 명분을 줘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라는 게 문 대통령 주문의 취지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던 윤 총장 징계안은 실패로 돌아갔고,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를 낳게 됐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법조인 시절 다져진 절차적 정당성 확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원칙과 철학은 민주당이 추진 중인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청와대 관계자는 "평소 대통령이 원칙을 강조해 온 율사(律士)적 관점에서 여러 생각들을 해오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대(對) 언론관은 2011년 정치 입문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은 2012년 저서 '사람이 먼저다'에, 언론의 공정성에 대한 필요성은 2012년 대선 패배 직후 백서 성격으로 펴낸 '1219 끝이 시작이다'에 비교적 자세히 소개돼 있다.

 

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에서 "권력은 언론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권력은 언론을 통제하면 안 된다"고 썼다.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는 "언론이 눈을 부릅뜬다면 비상식이 기세등등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언론이 공정한 심판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만이 우리 정치가 정상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9대 대선 국면에서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회복 관점에서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겠다고 공약했었다. 언론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하고,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을 정권차원의 탄압으로 규정했다.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에 공약의 방점이 찍혀 있다.

 

2019년 10월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 이후 보여준 문 대통령의 대(對) 언론관이 비교적 명징하게 드러났다는 평가도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스스로의 자정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10월14일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 발언에서 "언론 역할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며 "언론 스스로 성찰하면서 신뢰받는 언론을 위해 자기 개혁의 노력을 해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10월25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진행된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조국 사태 과정에서 보여준 일련의 언론의 보도행태에 관해 "과연 우리가 진실을 균형있게 알리고 있는지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나 노력이 필요하다"며 "(국가발전)에 앞으로도 많은 기여를 해줘야 할 막중한 역할과 책임이 언론에 있다"고 강조했었다.

 

문 대통령의 가장 최근 언론관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7일 한국기자협회 창립 57주년 축사를 통해서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언제나 함께 하겠다"고 했다. 다만 청와대는 헌법상 원론적 가치를 언급한 것일 뿐 현재의 언론중재법과는 연계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야권에서는 이러한 맥락에 근거해 여당의 언론중재법 입법 폭주의 최종책임이 문 대통령에게 있다며 거부권 행사를 압박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 "(문 대통령이) 만약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모든 절차를 진행하려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국회가 의결해 보낸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해당 법률안을 국회로 돌려 보내 재의(再議)를 요구할 수 있는 헌법상의 권리를 의미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중 2차례, 이명박 전 대통령은 1차례 각각 거부권을 행사한 전례가 있다. 문 대통령의 경우 임기 중 '타다 금지법' 등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요구받아 왔지만 수용한 전례가 없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여부에 관해서는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거부권을 행사하든, 하지 않든 언론중재법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것만으로도 당청 간 갈등이 불가피하다. 다급해진 청와대가 사전 중재에 나설 수밖에 없던 이유다.

 

실제로 여야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제외한 나머지 쟁점 안건을 처리키로 합의했다. 안건에서 제외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경우 다음달 27일 본회의에 상정하되, 협의체를 구성해 피해구제 등 세부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정면충돌 고비를 넘긴 것으로 풀이된다.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임기 말 당청 갈등이 전면에 부각될 수 밖에 없다"면서 "당초 대통령이 거부권까지 염두에 뒀다면 입법 과정에서 민주당과 조율을 거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아프간 수송 작전 성공, 백신 수급 정상화 등 모처럼 지지율 상승 국면에 있는 상황에서 당 주도로 언론중재법을 강행하는 것이 불편한 게 청와대의 기류"라면서 "9월 중 시간을 갖고 천천히 처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