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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김탁환 “태평양 건너기 위해선 오래 구상하고 심장을 바꾸고 멈추지 말라”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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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5-02 10:00:00 수정 : 2021-05-04 14: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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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뭔가 방향을 틀지 않는다면, 평생 소설만 읽다가 죽겠구나.’ 1995년 어느 비오는 날 오전, 진해 해군사관학교 앞 바다를 바라보던 국어교관 김탁환에게 문뜩 한 생각이 피어났다. 학사장교로 입대해 매일 오전 7시30분이면 어김없이 출근한 그였다. 대학 선후배나 동료들은 여전히 연구실이나 도서관에서 소설을 읽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그 역시 그럴 터였다. 학부 4학년 시절부터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수료할 때까지 연구자들끼리 팀을 이뤄 조선 후기의 ‘대소설’(지금의 대하소설)을 읽어왔다. 5년간 대략 200~300권 정도. 그가 애초 상정한 인생 행로는 해사 교관을 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제대한 뒤 고전문학 교수가 되는 길이었다. 함께 소설을 읽던 선후배 역시 대체로 그러했다. 소설을 읽고 분석하는 삶 역시 나쁘지 않고 괜찮았지만, 그 순간 그를 뒤흔든 건 한 생각이었다. ‘혹시 나에게 소설 쓰는 재능이 있다면, 한 번 써볼까.’

 

김탁환에게 ‘한 번 써볼까’의 대상은 단편소설이나 시가 아니라 자신이 내내 읽어온 장편 또는 대하소설을 의미했다. 그때부터 퇴근 후에 흑백다방 등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군 복무 중 4000매를 쓰고 제대한 뒤 나머지 원고를 완성해 1998년 대하소설 '불멸의 이순신'을 펴냈다. 책은 큰 인기를 끌었고 드라마로도 제작되면서 그를 학자의 길이 아닌 소설가의 길로 낚아채 가버렸다.

 

그는 이후 평균적으로 매년 책을 한 편 이상 내는 식으로 25년간 무려 30편(권수로는 60여권)의 장편소설을 펴냈다. 그의 장편 '불멸의 이순신'과 '나, 황진이', '허균, 최후의 19일' 등은 드라마로 제작됐고, '열녀문의 비밀', '노서아가비', '조선마술사', '대장 김창수' 등은 영화로 제작됐다. ‘역사소설의 대가’, ‘대표적인 장편소설 작가’, ‘장편소설의 대호’ 등 다양한 상찬이 붙었지만, 그 역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다.

 

“단편소설이나 시는 빛나는 감수성으로 처음부터 잘 쓸 수도 있지만, 장편소설은 처음부터 잘 쓰는 작가는 없습니다. 분량에 눌릴 뿐만 아니라, 장편이 지닌 수많은 난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장편 쓰기를 ‘태평양 건너기’로 자주 비유하는데, 제대로 준비를 해서 시작하지 않으면 태평양에 빠져 죽습니다. 저도 계절마다 출간할 정도로 책을 많이 펴냈지만, 실패도 많았고 사실은 출간하지 못한 책이 더 많았지요.”

김탁환은 왜 장편소설에 매혹됐고,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장편을 꾸준히 써낼 수 있었을까. 앞으로 그가 펼쳐 보일 파란만장의 장편 세상은 어떤 것일까. 지난달 장편소설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전2권, 해냄) 출간을 핑계로 그를 지난 26일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하얀 셔츠에 머리까지 하얗게 샌, 하지만 다정한 그와 마주 앉아 문학의 대지를 함께 내달렸다. 그의 대답은 늘 질문보다 한두 걸음 앞서갔다.

 

신작은 자신만의 속도를 꿈꾸는 열정적인 본질주의자 유다정이 일과 사랑을 매개로 욕망하고 갈등하면서 한 뼘 더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독고찬의 청혼을 거절한 후 자신의 꿈이던 가방을 만들어 승승장구하던 다정은 더 큰 성장을 위해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가방을 만들어주는 오더메이드 서비스 ‘트로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지만 첫 고객 아서를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꿈꾸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1권, 30쪽)고 했는데, 이번 신작은 어떻게 시작됐는가.

 

“장편이란 인생과 세상의 큰 주제를 가지고 작업해 나가는 것인데, 이번 작업은 크게 보면 주제가 2개였다. 하나는 꼭 써보고 싶은 주제였던 의식주 가운데 무엇을 어떻게 입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책 제목이 나타내듯이 만남이었다. 사람이 산다는 건 만나는 문제이다. 주인공이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일들이 벌어지며, 그 사람들과 헤어진다. 인생을 살다보면,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어쩌다가 이 인간을 만났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만남이란 큰 주제와 의(衣)의 문제가 합쳐져서 이런 형식으로 나온 것이다.”

 

―주인공 유다정은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어떤 인물인지 조금 설명해 달라.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라는 시(정현종의 「방문객」 부문)가 있는데, 이것을 제 식대로 말하면,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 사람의 이야기도 함께 오기 때문이다, 라고 바꿀 수 있다. 유다정은 자본주의의 꽃인 오랜 역사의 패션 산업에서 세계적인 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을 꿈꾸는 회사의 대표이다. 질 좋은 제품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키고 성장하려는, 자연을 가방 안으로 녹이려고 하는 무모한 본질주의자이다. 자기 영혼을 강건하게 만들고 더욱 고양시켜 나가는 인물형이기도 하다. 패션업계 여성 CEO로서 나중에 업적을 이룬다면 유리천장을 깬 성공사례일 수도 있다. 피해자로서의 여성에 머물지 않고, 그 고통과 상처를 극복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2권으로 이뤄졌는데도 끝까지 읽게 되더라.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은 무엇일까.

 

“저는 처음부터 최대한 구상을 하고 들어간다. 작품은 유다정 입장에선 도대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계속 확인해 가는 과정이고, 독자 입장에선 아서라는 남자가 도대체 누구인가를 추리하게 만들 것이다. 두뇌 게임도 하게 될 것이다. ‘1부 아서라는 마음’에선 남녀 이야기가 따로 따로 나아가고, ‘2부 그레이스라는 몸’에선 남녀의 관계가 고객과 회사 대표간 갑을관계로 바뀌며, ‘3부 아서와 그레이스’에선 이야기가 합쳐져 진실을 드러내게 된다.”

―“지독한 경험주의자”(2권, 351쪽)라는 말처럼, 작품을 위해 1년간 매주 가방회사를 찾았다고 하는데. 디테일한 묘사나 문장도 돋보인다.

 

“작품을 보면 가방이나 옷 등 머리에서 발끝까지 구체적인 브랜드가 나오는데, 남성 독자들에겐 암호처럼 읽힐지도 모르겠다. 유다정은 패션업계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이기에 그의 입장에선 이렇게 얘기해야 진짜인 것이다. 물론 제가 이것을 처음부터 알았을 리가 없다. (배경이) 현대가 됐던 조선시대가 됐던, 풍속을 제대로 그리는 게 장편이다. 관념을 쓰는 것이 아니고, 관념을 쓰기 위해서라도 주인공의 삶의 현장이나 무엇을 입고 먹고 마시는지 등을 최대한 디테일하게 그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매주 목요일마다 지하철을 한 시간 넘게 타고 가방회사 ‘아서앤그레이스’를 찾아갔다. 가죽을 만든 장인들을 만나서 어떻게 만드는 것도 보고, 만든 것이 어떻게 전시되는지도 봤다. 다음날 오전 백화점이 개장하기 전 매장 세팅하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실제로 서울의 어느 백화점에서 밤샘을 하기도 했다.(작품에 나오는 횡성호수나 옥정호 등을 모두 다녀왔다고 하더라) 많은 한국 소설이 도시의 한 가운데 복작거리다가 내면의 상처를 받았다고 이야기가 끝나기도 하는데, 그런 건 안타깝다. 러시아 소설 등을 보면 남녀가 만나 알콩달콩하는 것도 있지만 마차를 타고 나가면 대자연이 펼쳐지고 내면의 상처 등을 풍경으로 보여주고 다시 내면으로 들어오곤 한다. 인간 세계뿐만 아니라 자연 세계까지 모두 아우르는 것이 장편의 품격 아닌가 싶다. 소설 속 장소들은 제가 특별히 감동받은 곳이지만 독자들도 삶을 위로와 용기 같은 것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작품은 김탁환의 문학세계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지난해 쓴 에세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는 의식주 문제 가운데 농업과 생태의 문제, 환경 먹거리 문제를, 이번에 출간한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는 옷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두 작품의 착상을 비슷한 시기에 같이 했지만 옷을 다룬 소설은 분량도 많고 작업도 힘들어 늦게 나왔다.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를 보면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냐, 움베르토 에코나 남미의 작가 영향을 받은 것이냐, 라고 사람들은 질문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원래 우리의 방식이었다. 18, 19세기 무수히 쏟아져 나온 우리 이야기 방식으로, '대소설의 시대'를 쓰고 화해한 뒤 그 방식을 현재화시켜 앞으로 나는 이렇게 가보겠다고 보여주는 첫 작업일 수 있다.”

 

1968년 진해 출신으로 서울대 국문학과 학사와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한 김탁환은 1994년 계간문예지 '상상'에 평론 「동아시아 소설의 힘」을 발표하며 평론가로, 1996년 장편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이야기'를 출간하며 소설가로 각각 데뷔했다. 데뷔 이후 '불멸의 이순신'을 비롯해 장편소설을 대거 쏟아냈다. 문화잡지 '상상'의 편집위원과 '1/n'의 주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데뷔 이후 엄청난 속도로 많은 장편을 쏟아냈다, 이유나 배경이 무엇이었나.

 

“처음 서른 살에서 마흔 살까지는 교수이면서 작가인 조건에서 최대한 많이 쓰자고 생각했다. 제 또래 가운데 문운이 있는 친구들은 20대 초반에 작가가 됐지만, 나는 작가에 뜻이 없다가 서른이 다 돼 뒤늦게 소설가가 됐으니까. 바둑기사 서봉수님을 매우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처럼 실전에서 일단 많이 써보고 배워가자고 생각했다. 서봉수는 처음 조훈현과 대결할 때에는 승률 차이가 컸다. 하지만 그는 계속 지면서도 대결을 이어가며 실력을 키웠고 나중에는 조훈현의 타이틀 일부를 빼앗으며 한국의 대표 기사가 됐다. 이를테면 ‘잡초 바둑’이었다. 그래서 초기 엄청나게 장편을 많이 썼다. 계절마다 출간할 정도였다. 하지만 실패도 많았고, 출간 못한 책이 더 많다. 스토리가 막히고 인물에 문제가 생겨 실패하면서도 계속 썼다. 장편 소설을 써보니 300~400년 된 장편 소설의 역사가 있더라. 이런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장편을 쓰겠다는 건 시건방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10년간 쓰면서 배우자고 생각했고, 최대한 다양한 장르들을 써나갔다. 초기 흔히 역사소설을 썼다고 하지만 장르는 모두 달랐다. 예를 들면 '나, 황진이'는 고백소설이고, '부여현감 귀신체포기'는 환타지이며, '방각본 살인 사건'은 추리소설이었다. 각 장르에 맞는 선배들이 있고, 그런 것을 공부하며 선배들과 싸워가면서 썼다.”

 

해군사관학교 국어교수를 거쳐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부교수 등으로 재직하던 그는 2009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전업 예술가는 환상”(1권, 202쪽)이라고 했는데.

 

“자본주의 시대에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뭔가를 항상 생각하는데, 전업 작가가 된다는 건 들판에 혼자 서 있는 것이다. 어렵다면 어렵고…. 뿌듯함과 고통스러움이 같이 있는 것 같다. 2009년 교수직을 그만둘 때, 나 빼고 나를 아는 사람 모두 반대했다. 교수직을 유지하면 제 시간의 절반 이상을 강의와 연구에 써야 한다.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온전히 장편을 쓰기 위해 시간을 쏟아붓고 싶었다. 좋은 장편을 쓰려면, 박경리 선생이 말했지만, ‘두루마리 시간’ 즉 자유롭게 쓸 긴 시간이 필요하다. 장편은 하드한 일이다. 머리만 굴려 쓸 수 있는 세계가 결코 아니다. 제대로 장편을 쓰려면 몸과 마음을 다 써야 한다. 기자처럼 취재도 해야 하고 인터뷰도 많이 해야 한다. 늘 새로운 질문을 하고 새 세계를 보여줘야 하는 장편의 세계는 쌓이는 세계도 아니다.”

 

이 시기를 전후해 그의 문학 세계도 바뀌었다. 질문이나 주제 의식은 커진 반면 작품의 양은 확 줄었다. '밀림무정', '혁명-광활한 인간 정도전', '뱅크' 등이 이 시기 대표 작품이다.

 

“마흔 살이 되니까 장편을 제대로 써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장편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죽음, 선과 악, 의식주, 사랑이란 무엇인가 등 클래식한 주제, 유행을 타지 않고 시간이 흘러가더라도 인류가 반복해서 하는 질문들, 몇 만 년 동안 반복되고 인류와 함께 하는 질문들을 잡고 전력투구해보자, 하는 생각을 했다. 오십 살까지 작품 네 개만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2년 반에 작품 하나 정도 쓰더라. 먼저 자연과 인간은 어떻게 대결해왔는가를 쓰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인 '밀림무정'이었다. 인간이 자연과 대결하는 마지막 양상은 자연의 가장 힘 센 존재와 싸우는 것이었다. 바다에서 싸우는 것은 고래이고, 그것이 멜빌의 소설 '모비딕'이다. 육지로 옮기면 그것은 호랑이다.”

 

그는 이어 한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혁명가로 평가받는 정도전을 소재로 혁명의 문제를 다룬 '혁명-광활한 인간 정도전'을, 자본주의란 도대체 무엇이고 이 땅의 자본주의는 어떻게 시작됐는가라는 질문을 담은 '뱅크'를 차례로 써내려 갔다.

 

2014년 4월, 수백 명의 목숨을 잃은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김탁환의 삶과 문학인생도 요동쳤다. 당초 의식주, 즉 무엇을 입고 어떻게 먹고 어디서 살 것인가에 관해 쓰려던 그는 '거짓말이다',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살아야겠다',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 등 소위 ‘사회파 소설’을 집중적으로 쓰게 됐다.

“전쟁이 난다든지 코로나19가 터진다든지 대형 참사가 벌어지면 작가는 충격이나 상처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지 발언한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흔히 말하는 사회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들 소설은 원래 내 계획에는 없었다. 사회파 소설들을 쓰면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레마르크가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썼고 스페인내전에 뛰어들었던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리나'를 쓴 게 이해가 되더라. 작가는 평화적인 시기에는 장기간 미리 계획한 대로 쓸 수 있지만 역사가 급박하게 돌아갈 때에는 이에 대처해야 할 책무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작업을 했다.”

 

시간이 흘러 당초 계획한 대로 돌아가려 했지만, 쉽게 돌아오진 못했다. 사회파 소설을 쓰며 만난 사람들과 조선 영조시대의 광대 ‘달문’을 모티브로 한 장편 '이토록 고고한 연예'와 '대소설의 시대'를 쓴 뒤에야 자신의 트랙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특히 '대소설의 시대'를 쓰면서 18, 19세기 대소설의 시대와 화해하고 자신의 길을 나아갈 수 있었다.

 

“2년 전(2019년) 백탑파 다섯 번째 소설 '대소설의 시대'를 썼는데, 개인적으로 중요한 작품이었다. 20대 때 읽은 대소설과 40대에 더하여 읽은 대소설을 가지고 쓴 것인데, 작품 속에는 23년 동안 대소설 '산해인연록'을 집필하고 있는 대하소설 작가 임두가 등장한다. 단편을 많이 쓰는 다른 작가와 달리 나는 왜 장편을 계속 쓰는가, 그것을 생각해보니 제가 원래 소설을 많이 읽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박사과정을 수료할 때까지 5년간 18, 19세기 조선의 장편소설을 많이 읽으면서 그것이 머리 안에 가득 찼다. 그 시기 러시아에선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미국에선 멜빌, 프랑스에선 발자크와 졸라가 많은 장편을 쓰는 등 장편의 시대였고, 우리나라 역시 박경리 선생처럼 장편을 쓰는 작가들과 그것을 읽고 즐기는 독자들이 등장했다. 장편을 쓰면서 그 동안 고전소설을 읽는 연구자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20년 넘게 해마다 장편을 쓰면서 사는 나의 삶이야말로 18, 19세기 대소설을 쓰던 소설가의 삶이더라. 현대 소설가들과 호흡했다기보다는 원래 매혹된 이야기의 세계, 그 작가들의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시절 읽은 조선 대소설의 세계를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사람들의 삶을 21세기에 반복하고 있었다. 그 소설을 쓰면서 18, 19세기 대소설의 시대와 화해하고 나의 길을 가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탁환은 이제 문학인생 제4막의 초입에 서 있다. 지난해 의식주 문제 가운데 농업과 생태의 문제, 환경 먹거리 문제를 다룬 에세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와 이번 장편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는 그 4막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쯤 될 터다.

 

―추구하는 문학은 어떤 것인가.

 

“내 문학은 다정이라는 것이 핵심이구나, 이런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사람에 대한 것이든, 동물에 대한 것이든, 풍경이 됐든, 다정함을 느끼는 건 좋은 것 같다. 한번 보고 지나치지 않고 다시 보게 되고. 다정함이 공감을 낳고, 공감이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 같다. 작년 에세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를 쓸 때, 농부 이동현씨가 쌀에 감정이입을 하더라. 아침마다 벼에 가서 인사하고 오늘은 햇살이 세니 물을 대줄게, 이렇게 다정하게 설명하더라. 그걸 보고서 지금까지 사람에게만 저런 마음을 가졌는데 앞으론 나도 다른 생명체에게도 가져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소설의 여자 주인공 이름도 다정이라고 지었다. 유다정은 애뜻함을 보고 가방으로 표현하려고 했지만, 저의 경우 대상을 보고 애뜻함을 느끼면 글의 형태로 표현하려고 하는 예술가가 아니었을까.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 때 현장에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정과 자유가 저의 제일 큰 화두다.”

 

―서울과 곡성 작업실에서 주로 보낸다는데, 요즘 어떻게 사느냐.

 

“공간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서른한 번째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을 잘 쓰기 위해서 서울보다 곡성에서 쓰는 게 낫겠다고 판단이 들어 거기 내려가서 쓰고 있다. 쓰려는 이야기에 따라 작업실 위치를 옮겨왔다. 30대는 학교 교수였으니까 주로 충청도 쪽에 있었고, 서울에 올라온 뒤에도 여러 군데 있었다.”

 

―“정확하게 쓰는 건 참으로 어렵소”(2권, 11쪽)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고 쓰는가, ‘김탁환표 장편’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가.

 

“저는 구상을 길게 하는데, 문제의식이 닦아졌고 이제 쓸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확 달려들어서 2, 3년 안에 집중해서 집필하는 스타일이다.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도 써볼까 하고 생각한 것은 7년 정도 된 것 같고, 지금 쓰고 있는 작품도 5년 이상 구상을 했다.이순신을 쓸 때는 이순신이 돼야 하듯이, 주인공의 영혼과 제 영혼이 접신해야 한다. 그것은 심장을 바꿔 끼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작년까지 농부의 심장이었다면 이번 작업을 할 때는 가방회사 여사장의 심장이었다. 하나의 심장으로 살면 어렵지 않지만, 작업할 때마다 심장을 바꿔 끼워야 하는 건 고통스럽다. 특히 남성 작가로서 1인칭 여성의 시각으로 글을 쓰는 것은 늘 어렵다. 반대도 마찬가지고. 대하소설을 쓰려면 필수 코스이다. 등장인물이 100명이 나오는데 모두 남자로 꾸릴 수는 없다. 남녀 50명씩이라면 내 성이 아닌 성의 인물 50명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래서 여성들의 삶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따지게 되며 계속 관찰하고 흉내 내야 한다.”

 

그는 그러면서 장편 작가의 태도랄까 자세를 강조했다. 좋은 장편 작가는 “내가 이렇게 쌓았다, 이 정도 쌓았으니까 삼라만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식의 태도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편을 쓰기 위한 취재의 과정은 자신이 무식하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다. 개인적으로 좋지 않기도 하면서도 또 좋다. 이십여 년 소설을 썼지만 40여년 가방을 만든 장인 앞에 서면 저는 문외한이다. 하나도 모르는 세상이 있구나, 하고 작업을 할 때마다 느낀다. 계속 무너지는데, 무너지는 게 너무 좋다. 장편소설은 굉장히 힘들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세계이다. 문제는 장편 작업이 자본주의와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편을 쓸려면 최소 3년이 필요한데 자본주의는 점점 빨라진다. 지금 준비해도 3년 뒤에 책이 나오는데 3년 뒤를 알 수 없다. 트렌드와 유행을 좇아서 갈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본질의 세계이다. 3년이 지나도 질문이 유효할 것이고 그 물음을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는 세계다.”

 

―“자고로 백퍼센트 인간이기만 한 인간은 없소”(2권, 20쪽)라고 했는데, 장편작가로서 습관이나 리추얼은 어떤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일단 시간을 정해놓고 쓴다. 매일 오전 4시간씩 쓴다. 30대에는 매일 30매씩 썼는데, 지금은 10매 정도만 쓴다. 제 모토는 ‘소설은 복잡하게, 인생은 단순하게’다. 체크리스트가 100개가 넘을 정도로 장편의 세계는 복잡하다. 내 삶까지 복잡하면 쓸 수가 없더라. 집중해야 하니까 에너지를 업(up)시켜서 오전 4시간을 쓰고 오후에는 아무렇게나 산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책도 읽고 자전거도 타고 어쨌든 다음날 아침에는 다시 쓴다. 이십 몇 년 째 계속 그렇게 한다. 또 작업을 시작하면 1주일 단위로 돌지 않고 작업이 끝날 때까지 주말 없이 계속 쓴다. 주말을 쉬면 힘들다. 왜냐하면 내가 쉬면 등장인물도 역시 쉬니까. 삶이 두 층위가 있다. 오전에는 내가 정해놓은 시간 속에서 쓰고 있는 작품 속 인물과 같이 살고, 오후에는 생물학적으로 산다. 어떤 사람들은 헷갈린다고 싫어한다. 만약 18세기 인물을 그린다면 21세기의 나의 삶이 18세기 인물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18세기 인물의 삶이 21세기의 나의 삶에 영향을 준다.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간다. 독자들도 영화를 본다든지 하면 두 가지 층위를 짧게 경험할 것이다. 작가는 3년 정도 같이 살아야 하니, 그 만 배 정도를 경험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음악 이야기를 꺼내 이어갔다. “바이올린이나 플루트, 피아노 음악은 듣지 않는다. 날이 좋은데 내가 뭐하지, 이런 생각을 들게 하고 엉덩이를 가볍게 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려면 평상시보다 더 가라앉아야 한다.” 그는 대신 글을 쓸 때 늘 바하의 무반주 첼로 협주곡을 듣는다고 했다. 그것도 이십 몇 년을 계속 들어왔다고. 3년 가까운 장편 창작의 긴 시간 엉덩이를 고정시키면서도 내적으론 멈추지 않고 창작의 성으로 진군하도록 감정을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저는 베이스나 첼로의 음악으로 마음을 가라앉힌다. 바하의 무반주 첼로 연주를 듣는다. 바하의 무반주 첼로가 좋은 이유는 감성을 가라앉으면서도 혼자 진군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장편은 작품을 다 써야만 독자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세계이다. 내가 무엇을 쓰고 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들은 이해를 못한다. 그때까지 첼로 연주자처럼 혼자 쭉 가는 것이다. 그걸 틀어놓으면 그 음악이 나랑 같이 가고 있는 느낌이다.”

 

요컨대 발자크 같은 방대한 소설 세상을 꿈꾸는 김탁환이 장편소설의 대가가 된 데에는 오랜 구상과 치밀한 취재, 주말도 없이 완성까지 지치지 않고 밀고 가는 성실함, 음악까지도 철저하게 관리하는 습관 등이 어우러진 장인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많은 상찬과 화려한 조명 뒤편에서 ‘소설노동자 김탁환’은 글과 사투 중이었다. 작품 속 글 “지금 못 만들면 죽겠단 생각이 들 때까지 작품을 만들지 말 것”(1권, 288쪽)을 읽어주며 앞으로 쓰고 싶은 소설이 무엇인지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묻자, 그는 자유라는 화두를 이야기했다. 그 자유가 향하는 곳엔 룰(rule)도, 양도 다 넘어선 장편의 세계가 펼쳐질 터였다. 기자 역시 그가 그러하길 간절히 희망하고 응원한다.

 

“30대는 지나치게 많이 썼는데, 2009년부터 많이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지요. 장편은 3년마다 하나씩 쓰는 것이니까 쓸 수 있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더구나 장편은 80, 90세에 쓸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의료기술이 발달했기에 풍속이 풍부한 장편을 70대까지 쓸 수 있겠지요. 3년에 한편씩 쓴다면 앞으로 6, 7편이 남은 셈인데, 골라서 써야 하겠지요. 끌린다고 무조건 써선 안됩니다. '이토록 고고한 연예'부터 시작해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를 쓰면서 자유로움을 많이 느꼈어요. 300~400년 쌓여왔던 장르의 룰이 있는데, 20년 글을 쓰면서 그런 룰을 알게 됐고, 지금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치기 위해 내가 룰을 이용하지요. 점점 더 자유로워집니다. 쓰는 나도 자유스럽고 읽는 독자들도 너무 자유로워서 이것이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려고 판을 벌일 것일까, 하고 걱정스러운 그런 글들을 쓰고 싶어요. 이 작가는 점점 더 자유로워 졌구나, 하는 게 받고 싶은 칭찬이지 않을까요.”(2021.5.1)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이재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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