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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인간의 비극”

입력 : 2021-04-20 20:40:24 수정 : 2021-04-20 20: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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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40년’ 최수철 작가 인터뷰
소설집 ‘사랑의 다섯 가지 알레고리’
의자·가면·모래시계·욕조·매미 활용
추상적 개념 형상화 통해 사랑 표현

1981년 신춘문예 ‘맹점’ 당선 데뷔
감각적인 언어로 삶의 본질 담아내
‘사랑’이란 주제로 다섯 가지의 알레고리로 변주한 다섯 편의 중·단편을 묶어낸 등단 40년의 최수철 작가는 “인간은 사랑을 해야 하는 실존적 운명”이라면서도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인간의 비극”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사랑은 인간의 삶보다 초월적이고 위대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사랑을 해야 하는 존재인데,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인간의 비극입니다. 사랑을 해야 하는 실존적 운명을 타고 났는데,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사랑을 모르니까요. 사랑을 알게 되면 더 이상 필요 없으니까 굉장한 재앙이 됩니다.”

최근 발간된 연작소설집 ‘사랑의 다섯 가지 알레고리’(문학과지성사)는 다섯 가지의 알레고리를 사용했지만 결국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최수철 작가에게 “사랑은 무엇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사랑을 해야 하는 존재임에도 사랑을 알지 못하는 인식 사이의 간극과 그 간극이 낳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죽고 다음 세대로 다시 이어지면서 사랑은 무엇일까, 하고 끝없이 찾아 헤매다가 끝나는, 어떤 의미에서 죽음이야말로 사랑을 완성시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번 소설집에는 ‘사랑’이라는 단일한 주제로 의자와 가면, 모래시계, 욕조, 매미라는 다섯 개의 알레고리를 사용한 ‘고해하는 의자’, ‘변신’, ‘모래시계 속의 남자’, ‘감각의 순례’ 등 다섯 편의 중·단편이 담겼다. 알레고리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대상이나 상황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뜻한다.

“사랑은 인간의 삶보다 초월적이고 위대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최 작가를 비가 긋다 말다 한 지난 16일 경기도 분당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차를 몰고서 그는 용인에서 올라왔고, 기자는 서울에서 내려갔다.

첫 번째 단편 ‘고해하는 의자’는 신문기사에서 출발해 목수, 상인, 노숙자, 사기꾼, 정치가, 심령술사, 청년 등을 거쳐 성당의 고해실로 들어온 우주적 표상을 가진 의자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이다.

―작품의 시작을 왜 신문기사에서 출발한 것인가, 기사는 사실인가.

“작품 속 신문기사는 사실이다. 아마 검색하면 나올 것이다. 소설을 쓰는 방법에는 진짜처럼 쓰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낯설기 기법’이라는 방법이 있다. 여기에선 낯설기 기법을 택한 것인데, 꾸며진 이야기이니 독자들과 같이 만들어 보자는 의도였다. 처음부터 상상력으로 바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신문기사를 보고 생각이 떠올랐는데, 같이 한번 추론을 해봅시다, 저는 의자를 상정합니다, 라고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이다.”

중편 ‘변신’은 화자가 8살 아래의 여성 유희의 사랑을 돌리기 위해 변신을 거듭하는 이야기다. 육체적, 정신적, 영혼적 변신을 넘어 우주적이고 윤회적인 변신을 통해 수만의 사랑을 그린다.”

―작품 속에서 여러 세계에 걸쳐 사랑하는 모습은 불교의 윤회사상, 특히 ‘화엄경’의 ‘10법계 사상’과 맥이 닿아 있는 느낌이 들더라.

“화엄의 의미가 강하다. 모든 것이 유희에 의해 만들어지고 변전하는 유희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다. 인도의 차크라(Chakra)나 불교의 화엄사상에도 단계가 있는데 가장 보편적인 틀을 뽑은 것이다. 육신, 정신, 영혼, 영을 초월하는 우주적 기운까지 넘어가는 단계를 설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중편 ‘모래시계 속의 남자’의 경우 학원 강사였다가 나중에 병원 사무장이 된 김시준의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주제 의식을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삶에서 시간의 의미가 무엇인가, 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은 추상적이어서 알레고리가 구체적이어야 했고, 그래서 모래시계로 형상화한 것이다. 시간에 뒤처지거나 앞서가는 등 시간과 인간의 삶과 관련되는 일화를 모아 종합한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 샤워기를 담그는 장면이 몇 차례 나오는데, 무슨 의미인가.

“우리에게서 시간이 속수무책으로 빠져나가고 존재들 역시 모래시계 속에서 빠져나가는데, 속수무책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흐름 속에서 정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성공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는 멈추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대책 없는 것보다는 막아서 실존을 의식해야겠다는 발상이 샤워기를 잠그는 것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중편 ‘감각의 순례’는 오두수라는 남자가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 수많은 감각의 경험을 담은 작품인데, 주제는 무엇인가.

“삶이란 어떤 것인가, 라는 궁극적인 질문을 한다는 것은 상징을 찾는 일이다. 상징을 찾지 않으면, 감각만 있다면 인간은 동물과 똑같다. 그렇다면 상징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난데없이 기독교의 삼위일체 등에 들어가서 찾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감각에서 스스로 찾아야 한다. 어떤 강하게 흔드는 감각, 열망하는 감각들이 있는데, 그런 감각들을 찾아 의미를 찾다 보면 우리 일상을 넘어서는 상징을 찾을 수 있다. 충실하게 감각과 만날 때 진정한 정체성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춘천 출신인 최수철은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맹점’이 당선돼 등단했다.

―어떻게 문학의 세계에 들어온 것인가.

“집에 책이 많아서 문예지 등을 뒤져볼 수 있었다. 심심하니까 막 뒤지다가 자연스럽게 문학이 체화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람들이 물어보니까 그렇게 생각한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분노의 포도’, ‘폭풍의 언덕’, ‘쿼바디스’ 같은 소설이었는데, 집에 굴러다니니까 본 것이다. 독서하려면 10, 20대에 해야 하는데, 우리 때는 거의 못했다.”

1958년 개띠인 그는 이 대목에서 혹독한 입시 때문에 독서를 거의 못한 데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유신의 영향으로 수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며 “우리 세대가 문학적 소양 등에서 좀 약하다”고 안타까워했다.

“77학번인데, 그 전에는 문화운동 같은 것이어서 정부도 관망했지만, 유신으로 넘어가면서 학생들의 항쟁이 극렬해졌다. 나야 갈팡질팡했던 사람에 불과했지만, 당시 서울대 인문대 학생 180명 가운데 6명이 제적을 당했다. 매학기 대학 수업은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됐다. 교실에서 수업하려고 하면 최루탄이 터지고 학생들이 교실로 뛰어들어와서 동지들 도와줘, 하는데 어떻게 수업이 제대로 될 수 있었겠느냐. 난장판으로 대학을 보냈고,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우리 세대는 문학적 소양이 깊기가 어려웠다.”

―소설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한 것인가.

“대학 2학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시는 직관적인 능력 같은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포기하고, 좀더 분석적이고 서술적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통찰하는 것보다는 무엇 하나를 파고드는 것을 좋아했다. 2학년부터 소설을 써서 응모하기 시작했고, 4학년 때 교내 ‘대학문학상’을 받았으며 그 다음해 신춘문예에 등단했다.”

최수철은 등단 이후 꾸준히 작품을 써왔다. 소설집으로 ‘공중누각’(1985), ‘화두, 기록, 화석’(1987), ‘내 정신의 그믐’(1995), ‘분신들’(1999), ‘매미’(2000), ‘포로들의 춤’(2016) 등을, 장편소설로는 ‘고래 뱃속에서’(1989),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랑’(4부작, 1991), ‘벽화 그리는 남자’(1992), ‘불멸과 소멸’(1995), ‘페스트’(2005), ‘침대’(2011), ‘사랑은 게으름을 경멸한다’(2014), ‘독의 꽃’(2019) 등을 펴냈다.

―등단 40년인데, 작품 세계를 조금 설명해 달라.

“처음에는 소설을 쓸 때 모자이크 개념을 생각했다. 주제를 생각하고 집중적으로 공부하거나 그 반대로 그런 과정을 통해 현실의 의미 지점을 포착해 묶어내곤 했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이 단절돼 있고 매듭 식으로 소설을 썼다. 이념의 시대여서, 자연히 문학도 인간의 현실 인식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소설들이었다.”

―언제부터 작품 세계가 바뀐 것인가.

“장편을 기준으로 보면 1989년 ‘고래 뱃속에서’부터 스토리텔링의 단계로 들어간다. 스토리텔링을 의식하기 시작해 삶에 대해 인상적인 장면을 스토리로 풀어나가는 작업을 했다. 약 3분의 1의 시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2005년 ‘페스트’부터는 스토리텔링을 본격적으로 의식하고 감각과 상징으로 더욱 구체화했다.”

그는 1993년 중편 ‘얼음의 도가니’로 이상문학상을, 2019년에는 장편 ‘독의 꽃’으로 동인문학상을 포함해 윤동주문학상, 김유정문학상, 김준성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재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성남=글·사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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