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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을 오르다 보니 잎이 진 단풍나무는 가시 같고 흘러내린 자갈이 길을 막는다. 뾰족한 돌이 낙엽에 가려 있다 발을 딛자 삐져나오는 바람에 넘어질 뻔했다. 손으로 진흙을 짚고 일어났다. 뒤따라오는 사람의 웃음거리가 될까 붉은 낙엽 하나를 주워들고 기다렸다. 실학자 박제가가 쓴 ‘묘향산소기’의 한 대목이다. 요즘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실수가 드러날까 봐 남 탓을 하며 진흙을 뿌릴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터지자 전임 정부 시절부터 누적된 부동산 적폐 탓으로 돌렸다.

옛날에 청렴을 내세웠으나 실은 재물을 탐하는 자가 있었다. “아무 날은 내 생일이니 삼가 선물을 바치지 말도록 하라.” 그는 이렇게 방을 내건 뒤 고을 사람을 모아놓고 백로를 제목으로 시를 짓게 했다. 자신의 청렴한 행동을 널리 알리려는 속셈이었다. 한 사람이 문득 읊었다. “날아올 젠 학인가 싶더니만 내려앉아 어느새 고기를 찾네.” 우암 송시열의 ‘옥천군이망재기’에 나오는 글이다. 위선을 꼬집는 선비의 붓끝이 칼보다 매섭다. 우리 사회지도층의 표리부동과 닮지 않았나. 공정을 외친 조국 전 법무장관은 자녀 입시에 반칙을 일삼았고, 서민 임대료를 걱정하던 위정자들은 자기 집 전월세를 먼저 올렸다.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단이 그제 금강과 영산강의 보(洑)를 개방한 후 수질이 최대 30~40% 나빠졌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집권세력은 4대 강 수질을 ‘녹차라떼’로 조롱하며 보 해체를 주장했다. 막상 조사해 보니 보를 허문 뒤 녹조현상은 일부 개선됐으나 수질이 전반적으로 악화됐고 보를 존치한 낙동강에선 수질이 되레 좋아졌다. 4년 만에 거짓과 진실이 뒤바뀐 셈이다.

유대인에게 이런 속담이 있다. “한 가지 거짓말은 거짓말이고 두 가지 거짓말도 거짓말이나 세 가지 거짓말은 정치인의 것이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정치인들의 언어는 거짓이 진실인 것처럼 보이도록 왜곡하는 술수로 가득하다”면서 “거짓이 판치는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곧 혁명”이라고 했다. 온 나라에 거짓이 홍수처럼 범람한다. 지금이 바로 ‘진실의 혁명’을 시작할 시점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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