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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13 23:36:45 수정 : 2021-04-13 23: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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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시대 IT 업계들 호황
억대 연봉에 직업 쏠림 심화
젊은 직장인 상대적 박탈감
기업·정부 ‘일할 환경’ 조성을

지난 9일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30)씨 표정은 밝았다. 지인 소개로 만난 김씨는 소위 잘나가는 게임업체에 다닌다.

올해 입사 2년차인 그는 직장생활에 꽤 만족스러워했다. 조심스럽게 연봉 얘기를 꺼내자 그는 잠시 머뭇거린 뒤 “5500만원 정도에 성과급은 따로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사에서 근무하는 800여명의 평균 연봉은 1억원대”라고 귀띔했다.

김기환 산업부장

2019년 기준 국내 500대 기업 직원 평균 연봉은 7920만원이었다. 이 가운데 1억원이 넘는 곳은 총 33곳이었다. 김씨가 다니는 게임업체는 연봉 기준으로 우리나라 30위권에 들어가는 셈이다. 김씨의 목표는 5년 안에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김씨와 같은 연배인 박모(30)씨는 서울 구로구 가산디지털단지 내 반도체 관련 회사에 다닌다. 입사 18개월째인 그의 연봉은 2700만원이다. 성과급은 지난 설에 떡값으로 받은 30만원이 전부다.

그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서울서 취직했다고 좋아하시는데 월세 내고 밥값 하면 용돈이 빠듯하다”며 “연봉을 더 받을 수 있는 기업으로 이직을 늘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박씨뿐 아니라 주변 친구들의 화제로 억대 연봉을 주는 다른 기업들 소식이 심심찮게 오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IT기업 중심으로 고액 연봉과 스톡옵션 부여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올 들어 신입사원(개발 직군) 연봉을 국내 최고 수준인 5000만원으로 올리기로 결정한 넥슨코리아의 파격 행보는 기업의 힘을 새삼 느끼게 한다.

신입 연봉 5000만원은 대기업 평균(3347만원)보다 50나 높고, ‘초일류’ 삼성전자(4676만원)보다도 많다.

최근 네이버는 한성숙 대표를 포함한 임원 120명에게 3111억원 규모의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주기로 했다. 1인당 약 26억원어치다. 직원 3253명에게는 2~3년 뒤 행사할 수 있는 스톡옵션 111만4143주(3624억원어치)를 지급하는데 직원 1인당 평균 1억원이 조금 넘게 돌아간다.

이들 기업에서 억대 연봉자가 속출하고 거액의 스톡옵션으로 부러움을 사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종목이 바이오·배터리·인터넷·게임(BBIG) 위주로 재편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문제는 이들의 ‘독주’를 바라보는 많은 직장인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의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의 격차가 컸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수준으로 어려운 대기업 입사를 위해 목숨을 거는 젊은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최근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임금 상위 100개 기업의 경우 2018년 기준 평균 연봉이 9800만원인 반면 하위 100개 기업은 4734만원에 그쳤다. 두 집단 간 격차가 무려 5068만원이나 된다. 이는 2014년 4262만원에서 18.9(806만원) 더 벌어진 수치다.

연봉을 올려주기 어려운 중소기업이나 전통 제조업체 임원들은 IT 기업, 스타트업계의 연봉 인상, 상여금 잔치 소식에 오금이 저린다고 한다. 한 식품업체 임원은 “가뜩이나 실력 있는 인재들을 구하는 게 갈수록 어렵게 느껴지는데 IT업계발 연봉 뉴스를 보면 누가 라면과 김치를 만들려고 할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여기에는 소비자들이 경험하는 제품보다 그것을 전달하고 매매하는 플랫폼이 더 높은 가치를 얻어가는 사회, 경제적 변화에 대한 불안이 깔려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IT 개발업자들이 우대를 받는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그 일에 뛰어들 수도 없고 그런 쏠림 현상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자동차에 소요되는 부속품을 만들어야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완구를 만들어야 하며, 해외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K-푸드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일을 하는 이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덜 느끼고, 자기 일에 자긍심을 갖고 일할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기업과 정부의 역할이다. IT업계뿐 아니라 한국 제조업의 미래도 인재 확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김기환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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