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수출 족쇄’ 여전… 日 기업 자산 현금화 땐 양국 관계 급랭 [심층기획 - 한·일 '지소미아 휴전' 3개월]

입력 : 2020-02-25 06:00:00 수정 : 2020-02-25 08:01:2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2019년 11월 종료 유예 후 양국 화해무드 / 잇단 공식대화에도 실무협상 답보상태 / 정부, 수출규제 조속한 철회 거듭 촉구 / 日측 강제징용 판결 연계 꿈쩍도 안해 / “규제 안풀면 지소미아 종료” 재부각 / 법원 이르면 5월 자산 현금화 가능성 / 상반기 악재로… 총선·코로나 등 변수 / 文 대통령 ‘3·1절 경축사’ 수위 주목
문재인 대통령(왼쪽), 아베 신조. 천안=이재문 기자, 도쿄=연합뉴스

지난해 말부터 가까스로 ‘휴전’ 상태를 맞고 있던 한·일 관계에 다시 전운이 드리울 조짐이다. 정부는 약 3개월 전인 지난해 11월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결정했고, 일본이 일부 품목의 수출 규제를 해제하면서 모처럼 양국 분위기가 호전됐다. 지난해 12월 한·일 정상회담은 이런 분위기에 정점을 찍었다. 이후 두 번의 양국 외교장관회담이 열렸으며 이달 초 국장급 협의도 재개됐다.

하지만 공식 대화가 이어지는 것과 달리 양국 간 실질적인 협상은 여전히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 외교가의 분석이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 3개월이 지났지만, 일본이 수출규제를 해제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정부 입장이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원고들의 피해배상 판결 관련 서류 송달을 거부하며 일본 기업들의 국내자산 ‘현금화’를 주목하고 있다. 양국은 상반기 몇 차례의 위기를 넘겨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4일 중국 청두 샹그릴라 호텔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일본기업 자산 현금화 언제?

올해 한·일 관계의 가장 큰 변수는 국내 법원의 자산 현금화 결정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달 초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한·일 관계 추이와 관련해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 시점이 관건이 되겠지만, 이는 사법 절차이기에 정부가 그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당초 지난해 말로 예상됐던 현금화 시점은 연기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24일 “상반기를 넘기지는 않을 것이고 도쿄올림픽 전에는 실현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법 절차상 지연과 외교·정무적 판단이 모두 개입돼 현금화 시점이 늦어지고 있지만 법원 재량에 달린 일이어서 마냥 늦출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한 외교소식통은 “총선 기간은 넘길 것으로 본다”고 예측했다.

강 장관은 간담회에서 “만약 현금화가 진행되면 그 이전과 이후의 협상 전략과 대응은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당국 내부에선 현금화 가능성을 고려해 이후 전략을 고민하고 있지만, 그 전 일본 정부와 강제동원 관련 타협안을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지난 6일 국장급 협의에서는 강제동원과 관련해 몇 가지 안이 테이블에 올랐지만 실제 타협을 이룰 만한 공감대를 이룬 안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안했던 이른바 ‘문희상안’은 일본 측에선 긍정적 반응이 없지 않았지만, 우리 내부의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

◆“수출규제 응답 없어”… 지소미아 재결정 있을까

강 장관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만나 일본 수출규제가 조속히 철회돼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확인하고 일본이 “가시적이고 성의 있는 조치를 조속히 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강 장관은 앞서 가진 간담회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지소미아 종료를 재가동할 권리가 있다”며 “일본은 우리가 바라는 7월 1일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이 같은 점을 모테기 외무상과 만나 강조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회담에선 지소미아 종료와 관련된 부분은 언급되지 않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지난해 지소미아 종료 유예 결정을 발표한 뒤 “일본이 수출규제와 강제동원 판결을 먼저 연계했고, 우리는 수출규제와 지소미아 종료를 연계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앞선 고리를 끊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풀지 않으면 언제든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은 청와대와 외교부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입장 중 하나다. 일본이 지난해 12월 도쿄에서 열린 산업당국 간 국장급 정책대화 때 ‘가까운 시일 내 서울에서 추가로 열자’고 합의한 정책대화가 아직 열리지 않자 일각에서 지소미아 종료설이 재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사실상 지소미아 ‘유지’로 받아들이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라도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실제로 감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양 교수는 “(지소미아 종료 가능성 재부각은) 일본 정부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마주앉은 韓·日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4일 중국 쓰촨성 청두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청두=연합뉴스

◆총선, 일본 경제난 등 변수… 상반기 위기 넘겨야

일본 정부는 사실상 강제동원 타협안이 만들어진 이후에야 수출 규제의 마지막 발을 빼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결국 이르면 5월 이후 현실화될 현금화 전 양국 정부가 타결안을 찾는 것이 현재로선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유일한 해결책인 셈이다.

하지만 협상이 진전되기 전 양국 관계에 끊임없이 장애물이 돼 온 양국의 내부 정치 상황이 올 상반기에도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외교가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경축사 수위를 주목하고 있다. 선거가 다가오면 여야 정치권 모두 대일 메시지가 강경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교가에선 최근 일본의 경제난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부실 대응, 국내정치 스캔들 등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행보도 주목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궁지에 몰리면 반한 이슈로 위기를 돌파해왔기 때문이다.

◆국민 45% “지소미아 종료해야”… 反日정서 여전

 

한·일 외교당국이 강제동원과 수출규제 관련 해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과 달리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양국 국민들은 한·일 관계에 냉소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향후 양국 관계에 각국의 국내정치가 다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국내 여론은 일단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에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 14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50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일본의 태도 변화가 없어 지소미아를 종료해야 한다’는 응답은 44.9%로 나타났다. ‘아직 종료해선 안 된다’는 응답은 37.9%로, 종료 찬성 응답(44.9%)보다 7.0%포인트 적었다. 특히 여당 지지층에서 종료 찬성 응답률이 높았다. 지난해 일본 제품 불매운동 등으로 나타났던 반일 정서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베규탄시민행동 회원들이 작년 11월 2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손팻말을 들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일본 국민들은 올해 초 여론조사에서 올해 한·일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압도적으로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NHK가 1월 첫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7%가 개선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개선될 것으로 본다는 답변은 17%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유예한 후 NHK 여론조사에서도 일본 국민 중 16%만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봤다. 62%는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원 일본연구센터장은 24일 “일본에서는 올해 한국 총선이 있는 점을 한·일 관계의 악재 중 하나로 보고 우려하는 시각이 높다”고 설명했다. 경제난과 코로나19 악재를 맞은 아베 총리가 한·일 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일본은 올해 선거가 없는 반면 선거가 있는 한국이 오히려 양국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본 내에 있다는 것이다.

 

다만 지난해 말 양국 정상이 만나 관계 개선을 다짐한 데다 긴장 고조 일변도를 걸어온 뒤 피로도가 높아진 상태여서 양국 모두 ‘관리 모드’로 들어갈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올해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메시지 역시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를 촉구하는 정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 센터장은 “현금화로 인한 일본 대응이 있기 전까지 올해 초에는 양국 관계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