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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보다 동거"…日 닮아가는 요즘 남녀

입력 : 2018-11-17 03:00:00 수정 : 2018-11-19 15: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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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 가족관 옅어진 2030세대
결혼에 관한 젊은 세대의 바뀐 인식이 통계청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들은 ‘형식보다 실리’를 추구하며 결혼이라는 기존 가치관에 의문을 품었다. 결혼에 뒤따르는 경제적 부담과 책임감 그리고 결혼생활에 대한 걱정이 인식변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결혼 안한다고 연애마저 안하는 건 아냐”

지난 11일 서울 모처에서 진행된 커플 이벤트에 참석한 34세 직장인 남성 A씨는 “올 겨울을 함께할 연인을 찾기 위해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결혼적령기를 맞이한 그는 얼마 전 결혼을 약속한 여성과 집 문제로 다투다 결국 이별했다. 그는 결혼 대신 “부담이 덜한 연애만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그가 이렇게 결정하게 된 것은 결혼과정에서 발생한 이견차를 좁히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A씨는 “여자친구는 서울 아파트를 원했지만 부모님이 도와줄 형편은 못 됐다”며 “수억원하는 집을 남자 혼자 떠맡아야하는 결혼에 두 손 들고 포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이벤트에 참가한 29세 직장인 여성 B씨도 연애를 바랐다.

지난해 취업에 성공했다는 B씨는 "그 전까진 취준생 신분이라 연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지만 안정을 찾게 된 후 미뤄뒀던 일(연애)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B씨는 이어 “당장 결혼을 원하는 건 아니다”고 잘라 말하면서도 “앞일은 모른다. 관계가 깊어지면 결혼도 충분히 고민할 수 있다. 35세 전엔 결혼할 생각”이라고 했다.

36세 여성 C씨는 “인연을 바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지금이 됐다”며 “(결혼)조바심은 없다. 다가오는 겨울 혼자면 더 추울 거 같다”는 생각을 전했다.

반면 “이혼 경험이 있다”고 말한 32세 여성 D씨는 “짧았던 결혼에서 많은 상처가 있었다. 두 번 결혼하긴 싫다. 다만 함께할 남자친구는 필요하다”고 했다. 최근 연인과 헤어졌다고 말한 남성 E씨의 생각도 D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의 공통 관심사는 ‘연애’였다. 참가자 모두 결혼적령기였지만 결혼을 위한 첫 단추를 꿰기 위해 만남 장소에 나온 것이 아닌 ‘연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일관되게 드러냈다.

이들에게 동거에 관한 생각을 묻자 B씨를 제외하고 ‘괜찮다’는 긍정정인 답이 돌아왔다. 이들은 “함께하면서 상대를 깊이 알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주변에 알리지 않는 등) 사생활 노출만 조심한다면 다음 번 만남에 큰 지장은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을 나타냈다.

C씨는 “주변 지인도 약 1년간의 동거기간을 거쳐 결혼했다”며 “결과가 좋으면 동거 사실은 숨길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시민 2명 중 1명 ‘결혼은 선택’, 56.4%는 ‘동거 찬성’

이들의 생각은 통계청이 지난 6일 공개한 '2018년 사회조사 결과' 보고서에도 나타난다.

통계청은 전국 만 13세 이상 시민 3만 9000명을 대상으로 가족·교육·보건·안전·환경 등 5개 부문을 조사했다.

설문 결과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2010년 64.7%, 2012년 62.7%, 2014년 56.8%로 떨어진 후 올해 ‘결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응답을 포함 49.6%로 떨어졌다.

성별로 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남성 52.8%, 여성 43.5%로 나타났다. 결혼 반대 의견은 여성 3.8%, 남성 2.2%였다.

반면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56.4%로 조사 후 처음으로 50% 포인트를 넘겼다. 특히 동거에 관한 긍정적인 생각은 20대에게서 두드러진다. 조사대상 20대의 74.4%는 ‘동거도 괜찮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동거 찬성 비율은 2010년 40.5%에서 2012년 45.9%, 2014년 46.6%, 2016년 48.0%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계약서에 들어가는 내용은 남녀가 상의해 결정한다. 사진= ATV방송화면 캡처

동거를 택한 이유로 앞서 A씨의 사례처럼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큰 원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동거 경험자 4명 중 1명은 ‘혼인 의사는 있지만 내 집 마련이나 결혼식 비용 등 경제적인 문제’로 동거를 택했다고 답했다.

이어 ‘혼인 계획은 없지만 의지하며 같이 지내고 싶어서’ 19%, ‘(임대료 등) 생활비 절약’ 18.6%, ‘혼인 의사는 있지만 같이 살아보며 상대에 대한 확신을 가지려고’ 17.4% 순으로 나타났다.

◆ 日 닮아가는 우리사회

동거와 관련한 의식 변화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앞선다.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다양한 가족 형태에 관한 연구 분석’ 중 ‘비친족 남녀의 동거’ 부분을 보면 일본은 2000년 무렵 동거하는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해 2003년 ‘쉐어하우스’ 라는 새로운 동거인 구성이 나타났다.

쉐어하우스는 단독주택 등 비교적 큰 집에 혈연관계가 없는 남녀가 모여 사는 형태를 말한다. 쉐어하우스는 방은 따로 사용하고 주방, 욕실, 거실 등을 공유하며 함께 생활한다. 기숙사와 유사한 모습이다.

비친족 동거의 등장 배경으로 1980년대 초반 버블경제가 붕괴된 후 1990년대부터 무려 20여 년간 이어진 경기침체(잃어버린 20년)가 일본 사회를 뒤덮은 것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일본은 경제에 낀 거품이 한순간에 빠지면서 수많은 이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또 자산가치가 급락한 부동산은 개인에게까지 큰 손실로 이어져 가정이 붕괴되고 이혼율이 급등하면서 미혼모‧부의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앞선 총무성 발표도 미혼모‧부와 관련한 실태를 담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근거로 앞선 주장에는 ‘경기는 추락하고 급등한 이혼율에 비싼 월세까지 더해지면서 서민들의 거주 형태와 생활방식에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 비친족 동거라는 형태가 나타나고, 이들 중 일부는 쉐어하우스를 찾았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일본은 지금 ‘계약 결혼’

이를 요약해보면 일본에서는 경제 붕괴 후 동거하는 이들이 나타났고, 우리 사회 역시 청년실업, 고용불안, 높은 집값과 생활물가 등 경제적 원인이 더해져 동거를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보다 먼저 비친족 남녀의 동거가 시작된 일본에서 동거 개념과 결혼이라는 개념을 더한 ‘계약 결혼’이라는 새로운 모습이 나타났다.

지난 10일 일본 ATV에 계약 결혼한 이들이 출연해 생활을 전했다.

방송에 따르면 계약 결혼은 혼전 상대에게 바라는 것들이나 생활규칙 등의 약속을 명기하고 이에 맞춰 생활하는 결혼을 뜻한다.

기간을 한정하는 것과 분명 다르지만, 경우에 따라 기간을 정하고 약속된 기간 부부가 되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약속은 결혼을 앞둔 두 사람의 생각이 우선시 된다. 예를 들어 남성이 ‘아침밥은 꼭 차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면 여기에 여성이 응하거나 조절 등의 과정을 거쳐 문서화 한다.

이때 문서는 생활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된다. 문서는 공증받아 부부가 나눠 보관한다. 공증받은 문서는 마찰 발생시 상대에게 약속이행을 요구하거나 안타까운 일로 법정에 서게 되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자료 사용된다고 결혼상담소 대표는 설명했다.

◆ 계약 결혼…“다양한 남녀의 동거”

이날 방송에 출연한 나카무라 미나 결혼상담소 대표는 계약 결혼은 “다양한 유형이 있다”고 했다.

그는 △ 성적 소수자 결혼을 비롯해 △우정결혼, △공동생활을 위한 공유결혼, △국적을 위한 사업혼인, △별거결혼, △주말결혼 등 개인의 사정에 따라 여러 명칭과 생활방식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중 ‘우정결혼’과 ‘공유결혼’을 주력으로 하는 그는 “연애가 아닌 형태의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이 상담하러 온다”며 “회원 중에는 성적소수자나 무성애자도 많다”고 말했다. 또 결혼에 관심 없어도 “부모를 안심시키기 위해 형식적인 결혼을 원하는 이들이 계약 결혼을 선호한다”고 했다.

즉 남녀 관계를 떠난 ‘남자 사람’, ‘여자 사람’처럼 한집에 사는 동거인과 같은 의미로 서로에게 바라는 일 등을 결혼 전 조율해 부부가 되는 것이다.

나카무라 대표는 “이들 다수는 성(性)생활 과는 무관하게 ‘독신주의지만 노후는 외롭다’는 생각 등 ‘자연스러운 관계(인간관계)’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또 우정결혼과 관련해서는 “연애(감정)와 연관 짓지 않고 ‘이야기할 상대’를 찾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간단한 의미에서 결혼을 앞둔 남녀가 생활규칙 등을 정하는 것도 계약 결혼에 포함된다.

◆ 전문가 ‘최근 한국 사회는 가족 형태 다양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변수정 연구원은 연구 보고서를 통해 “최근 가족 형태의 특징으로 다양화를 들 수 있다”며 “부모와 자녀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가족을 기준삼기에는 (지금)가족의 형태가 너무나 다양화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특히 비혼 동거가족과 같이 가족안에 법적 부부가 존재하지 않아 전형적인 가족과 비교해 가족 형성의 시작이 다른 가족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성인 남녀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택할 수 있는 것이 ‘혼인’이라는 단일 선택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혼’이라고 명명지은 것이 지금까지는 하나의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면 이제는 또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게 되면서 결혼이 현대화되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변 연구원은 “결혼을 하고자 하는 동거 커플이 계획보다 빨리 결혼 할 수 있도록 여러 지원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결혼계획을 가졌지만 여건 탓으로 일시적 동거를 하는 커플들에게는 결혼이라는 단계로 진입토록 지원하면, 그 다음 단계로의 이행도 기대 해 볼 수 있다”고 저출산 대책과도 연결된다고 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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