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경비원이 죈가요"… 잇단 갑질·폭행에 불안감 확산 [뉴스+]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2018-11-13 19:54:46 수정 : 2018-11-13 19:54:4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입주민들에 ‘을’ 취급, 해고 암시·모욕적 언사도
#1.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김모(75)씨는 며칠 전 야간 순찰을 하다가 단지 내 놀이터에서 교복을 입은 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 10대 학생 한 무리와 맞닥뜨렸다. 그러나 김씨는 못본 척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술 취한 10대 두 명이 경비원을 때렸다는 기사를 봤다”며 “주민 민원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모르는 척 하는 편이 낫다”고 털어놨다.

#2. 경기 김포시에서 5년째 아파트 경비원 일을 한다는 박모(74)씨는 요즘 층간소음으로 인한 입주민 간 갈등 때문에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한 번은 순찰을 하러 나갔다가 층간소음 민원 연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분노의 화살이 그에게 집중된 적도 있었다. 박씨는 “아들뻘 되는 주민이 ‘월급 받고 하는 일이 뭐냐’면서 욕을 퍼붓기도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 아파트·상가 경비원들을 상대로 한 ‘갑질’이나 폭행 사건이 잇따르면서 경비원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경비원들은 대부분 고령자인데다 고용이 불안정한 탓에 부당한 일을 겪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등의 여파로 경비원들의 고용 상황이 더욱 불안해지면서 갑질·폭행 사건이 늘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1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40대 입주민이 만취 상태로 70대 경비원을 마구 때려 뇌사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얼마 전에는 지난 7월 경기 화성시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입주민이 차단기를 빨리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70대 경비원과 다투다 “개가 주인에게 짖느냐”며 막말하고, 밀쳐 넘어뜨린 사건이 알려져 공분을 샀다.

경비원 대상 갑질·폭행 사건의 대다수 가해자는 입주민이지만, 최근에는 10대 청소년들이 연루된 사건도 종종 일어난다. 지난달 28일 경기 수원시에서는 만취한 10대 두 명이 상가 건물 경비원(79)을 폭행해 치아를 부러뜨리는 등 상처를 입혔다. 꼭 폭행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 경비원에게 해고를 암시하는 발언을 하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뱉는 일도 왕왕 있다.

이처럼 경비원 대상 갑질·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는 근본 원인으로는 경비원들의 불안한 고용 상황이 꼽힌다. 경비원은 대부분 아파트나 상가 관리사무소에 직접 고용되는 게 아니라 용역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계약 해지 등의 사유로 일자리를 잃기 쉽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가 오르자 경비원 규모를 줄이거나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경비원들 사이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입주민 등에 의한 갑질·폭행 사건 증가와 무관치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 이모(72)씨는 “처음에는 월급이 오른다는 생각에 좋아했는데, 주민들은 관리비가 늘 거라는 생각에서인지 별로 달가워 하지 않더라”며 “그런 불만이 쌓여서 일종의 화풀이처럼 경비원들한테 더 막 대하는 것 같다”고 했다.

현행 경비업법은 경비원이 근무 중에 경적이나 단봉, 분사기 등을 휴대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가뜩이나 ‘을’ 입장인 경비원들이 입주민에게 이 같은 호신 장비를 사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경비원이 최소한의 보호라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 등 제도적 뒷받침을 하는 건 물론, 경비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경찰행정학)는 “경비원이 아파트나 상가를 지킨다고는 해도 결국은 민간인 신분이라 폭행 등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며 “사회적 논의를 거쳐 경비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입주민들이 경비원을 을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만큼, 인식 개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